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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6 19:4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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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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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석아. 엄마 좀 데리러 와라. 엄마 취했다"
초등학교 5학년. 엄마를 데리러 오는 일은 일상이었다. 창피하지는 않았다. 그저 귀찮았다. 신발은 신고 집밖으로 나선다. 컴컴한 내리막을 걸으며 엄마 단골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안에 4명정도 들어갈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커튼에 가려져 있다. 돈가스 이모가 커튼을 젖히고 날 부른다. 레스토랑 주인이다. 올때마다 돈가스를 줘서 돈가스 이모다.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에는 생맥주와 골뱅이가 있다. 엄마가 날 쳐다본다. 눈이 풀렸다. 대충 눈인사를 하고 엄마 옆자리에 앉는다.

"어머. 언니 영석이 왔네~" 돈가스이 이모가 말한다.
"아이고 우리 아들. 엄마 데리러 왔어?"
엄마가 내 입술과 볼에 뽀뽀한다. 뜨거운 침이 느껴진다. 닦고 싶다. 바로 닦으면 '엄마가 더러운거지 너?'라며 섭섭해한다. 안볼때 닦아야지.
"뭐 먹고 싶어 영석이? 돈가스 해줄까"
돈가스 이모가 동그란 눈으로 묻는다. 안먹고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간다고 하면 이모 표정이 안좋아 질 것 같아 돈가스를 선택했다.
엄마는 입꼬리가 끝까지 올라갔다. 예뻐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야! 우리 아들 너무 예쁘지? 아이고 내 아들"
날 보고 있지만 이모를 겨냥해서 말했다. 이모는 아이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받아친다. 우쭈쭈해주는 느낌이다. 엄만 갑자기 시선을 밑으로 내린 후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너 돈가스 이모한테 인사했어! 똑바로 해 알았어? 너 그러면 안돼. 내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흑흑"
운다. 우는데 눈물이 안보인다. 실제로 울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는 척이다. 엄마는 취하면 패턴이 있다. 초반에는 웃는다. 갑자기 화를 내고, 그 다음 운다. 3년전만 해도 "울지마 엄마"라며 같이 울었다. 지금은 통곡해도 눈하나 깜빡안한다.

돈가스가 나왔다. 평소에는 엄마가 썰어준다. 지금은 평소가 아니니깐 내가 썰어 먹는다. 왼손이 포크고 오른손이 나이프. 포크로 고정하고 나이프로 썬다. 힘을 강하게 주려다 포크와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이모가 포크를 갖다주며 대신 썰어준다.
돈가스를 다 먹고 엄마를 쳐다봤다.
"아들 들어가. 엄마는 오백하나 더 먹고 갈테니까"
아이씨. 장난하나.
"들어가야지 언니. 우리집 문 닫을 시간 다 됐어. 영석아. 엄마 잘 부탁한다"
네. 대답 후 엄마 팔을 잡고 들어올린다. 엄마는 뿌리친후 오백 내놓으라고 하며 돈가스 이모쪽을 쳐다본다.
언니 들어가야지. 하며 이모가 같이 도와준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아기가 되어버린다. 나보다도 어려지는 것 같다. 엄마를 부축하느라 이모를 쳐다보지 못하고 말로만 안녕히계세요라고 인사했다.

"아들, 엄마가 사랑하는거 알지?"
집에 가는 길. 이 말을 천번정도 들었다.
"어"
난 천번정도 대답했다. '엄마를 부축하고 집까지 도착하기' 미션이 시작됐다. '엄마 오줌 마려워, 너 그러면 안돼, 내 탓하지마, 아빠 집에 왔어?'등 똑같은 말을 4년째 반복한다. 100번정도 대답해주다보면 어느새 집 앞이다.
고등학교때까지 엄마를 데리러 갔다. 대학교 이후에는 잘 데리러가지 못했다. 나도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가끔 아침에 엄마와 만나서 들어가기도 했다.

"영석아. 혹시 올 수 있니? 엄마 취했어"
15년 후. 엄마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네 갈게요"
예의상 부드럽게 말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왜 하는 건지. 언제까지 내가 데리러가야하는 건지. 밖에 나가 담배를 한대 피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호프집으로 간다. 날 부른 엄마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표정이 굳어진다.
"영석아 미안해. 엄마가 너무 취해서..."
난 짧게 대답 후 눈을 피했다. 안에 있는 엄마에게로 간다. 엄마가 날 쳐다본다. 놀란 눈으로 묻는다.
"너 왜 왔어?"
"빨리 일어나 가게"
난 팔을 잡고 말한다. 엄마를 강하게 일으켰다.
엄마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 친구는 실수했나라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영석아 불러서 미안해"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혼잣말로 미안해, 미안해라고 하고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예전같지 않았다. 서로 눈 마주치는 게 불편해졌고, 난 엄마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할정도로 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커졌다. 이유는 내가 군대전역하고 나서의 일이다.

군대 전역후 물류센터에서 한달정도 일했다. 그 날도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7시에 눈이 떠졌다. 씻고 출근해야 한다. 직장에서 무거운 것을 못들었을때 남자 새끼가 힘도 없다며 소리치던 상사. 손이 느리다고 내 발을 발로 걷어찬 상사. 나의 실수는 지구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뭐라고 하던 상사가 다른 직원의 실수에는 누구보다 관대하게 넘어갈 때. 뒤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일하는 나 자신.
어떻게해야 그들에게 잘보일수 있을까. 친해지려고 담배 심부름도 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공책에 정리도 해보고, 10분전에 미리 출근하고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할일이 없는지 상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날 보는 표정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내가 말시킬때 그들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있었다.
침대에서 5분만 누워있다가 가자고 생각했다.

8시 40분. 깜빡 잠들었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휴대폰을 들고 주소록에 상사이름을 검색한다.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해야한다. 안그러면 직장에서 엄청나게 혼난다. 통화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통화버튼에 손이 쉽사리 가지 않는다. 전화하면 지구가 위험에 빠진것처럼 화를 낼 거다. 통화버튼 옆에 있는 빨간색 종료버튼을 3~4초간 길게 눌렀다. '전원을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나왔다고 나는 '예'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이불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영석아. 자니? 출근 안해?"
난 조용히 있었다.
엄마는 들어왔다.
"영석아. 최소한 전화라도 해라. 이게 뭐하는거니. 아이고 정말 어떻게 하려고 하니"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듣는 순간 내 온몸이 달아올랐다. 등뒤에 땀이나고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날 못마땅해했다.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이불안에서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더 이상 상처주지 마세요라고 몸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 엄마는 내게 계속 물어봤다. 너 직장은 구하고 있는거지? 혹은 면접봤는데 붙었어?등등. 모든 질문이 내가 일을 하고 있나 안하고 있나 뿐이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엄마는 내 상처를 조금씩 찌르고 있었다.

'아들. 넌 엄마 생각도 안하니. 연락해라'
집을 나왔다. 엄마와 2년넘게 연락을 안하고 있다. 엄마는 내가 중요하지 않았다. 연락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저 싫은 거다. 내가 왜 연락을 안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같은 것들은 관심 없다. 여유가 없는 엄마는 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도 연락하는 이유는 뭘까. 만나도 서로 불편하기만 했다. 난 알수 없었다.

엄마는 갈등자체를 싫어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웃어넘겼지만,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일은 손을 떼버리거나 되려 내게 화를 냈다. 아빠는 화가나면 물건을 부쉈다. 그런 아빠를 엄마는 항상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바람도 안피고, 직장도 착실히 다니고. 너같은 아빠 어디에도 없다고.
내가 성인이 되고 부모는 이혼했다. 이혼후에도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아빠 많이 변하고 있다고, 화도 내지 않고 본인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만 강조했다. 무언가를 덮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직장에 적응 못할 때. 중학교때 가출할때, 군대에서 사고칠때 엄마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빨리 상황이 종료되고 그전의 아무일 없던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가출할때도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만 울면서 애원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가 면회간 이들에게 묻는다. 왜 그랬냐고. 어쩌면 케인은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내 입장에서는) 단 한번도 케인이 왜 그런짓을 저지른지에 대하여 묻지 않고 평범한 가족으로 살기위해서 그 문제들을 덮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내게 왜 그런일을 저질렀냐고 아직 묻지 않았다.

이제 더는 엄마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죽을때까지 왜라고 물어보지 않을 것이고, 전화해서 안받으면 엄마는 연락하라고 제발 나 좀 힘들게하지말라고 문자를 보낼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를 바꾸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을 찾는 것. 못찾았으면 나라도 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혹은 나와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 그것은 책일수도 있고 영화일수도 있고 음악일수도 있다. 난 계속 찾고 있다. 나를 공감해줄 사람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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