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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나기 전쯤, 아는 형에게 여름방학 동안 대학생 기자단이나 서포터즈 같은 대외활동을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 그 형은 내 말을 듣자마자 "그런 거 할 시간 없어. 방학 기간 동안 계속 알바해야 해"라고 말했다.

알바하고 남는 시간에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하자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알바를 하게 될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 형은 "학자금 대출 갚는 거랑 2학기 개강 이후의 생활비를 벌려면 여름방학 내내 알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서 형을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보려던 찰나 그 형이 한 말이 아직까지도 머리 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나는 알바 하느라 그런 거 못해. 그런 것도 여유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

나는 몰랐다. 아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하는 서포터즈나 기자단 같은 대외활동들이 여유있고 집안 형편이 풍족한, 좀 사는 집 애들이나 하는 거란 걸. 그런데, 그 형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 형과 나의 상황을 볼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학생들이 하고 싶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대학생들이 하고 싶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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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학재단에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1분위부터 10분위까지 소득분위를 매기는데, 그 형은 4분위였고 나는 높은 소득 계층에 해당되는 분위였다. 그 형의 말을 들으니 대외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특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외활동도 여유 있는 대학생이나 할 수 있다'는 그 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이 알바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 때, 여유있는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하면서 미래의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 벌려나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당장 내 주변에서도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내 친구들의 대외활동 또는 학교 공모전 수상기록을 보면 고작 한두 개 정도 있는 것이 고작이고 오히려 수상 실적이 아예 없는 경우도 훨씬 더 많다. 그런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여러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누군가는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그런 격차가 생긴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대외활동과 공모전 실적에 격차가 생기는 것에 부모님의 경제력도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부모님의 경제력 때문이라는 말은 아니다.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 됨에도 본인이 게을러서 아무런 스펙도 없는 학생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모의 경제력이 대학생의 스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다.

공모전을 할 여건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대체로 부모님의 소득 수준에서 판가름난다. 나는 부모님께 받는 용돈으로 대외활동을 하러 돌아다니지만 내 친구들 중 대부분은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나와 내 친구들부터 스펙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이 SNS에 '스펙에서 보이는 양극화로 인해 박탈감이 심하다'는 글을 올렸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이라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중요한 건 처지가 아니고 의지'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말을 한 것 같다. 제대로 된 알바를 해본 적도 없고 그들의 고민에 신경조차 쓰지 않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취업 컨설팅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대외활동과 공모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대학교에서 부여하는 학점은 기업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며, 어학성적도 회사에서 제시한 일정 수준만 넘어서면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취업을 판가름하는 것은 대부분 대외활동과 공모전이다.

이제 대학생들에게 발생하는 스펙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기업이 나서야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 지급이나 학비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나 기업의 일회성 장학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태그:#대외활동, #대학생,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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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역사문화학을 전공한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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