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크로아티아의 결승전에 난입한 관중들은 러시아 펑크 록 밴드 푸시 라이엇(Pussy Riot)의 멤버들이었다. 후반 7분께 2-1로 뒤지고 있던 크로아티아가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네 명의 인원들은 재빠르게 스타디움 중앙으로 달려 나왔다. 이 중 한 명은 프랑스 공격수 킬리앙 음바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여유 있어 보였지만 남성 멤버는 공격 기회를 놓친 크로아티아 수비수 데얀 로브렌에게 멱살을 잡혔다.

경찰 제복을 입고 월드컵 결승전에 난입한 이들

 2018년 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경기. 경기 도중 난입한 여성이 프랑스의 음바페에게 접근하고 있다.

2018년 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경기. 경기 도중 난입한 여성이 프랑스의 음바페에게 접근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경기 관리 요원들에 의해 제압당한 후 푸시 라이엇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경찰이 경기에 난입하다"라고 명명된 '퍼포먼스'가 본인들의 행위였다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그들은 구 소련 시절 체제에 저항했던 러시아 시인 드미트리 프리고프의 사망 11주기를 기리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일상을 침범할 수 있는 러시아 경찰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알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추가로 이들은 러시아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수감된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 올렉 센소프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그들은 경찰에 '정치범 석방, 좋아요를 위한 구금 금지, 시위 불법 체포 금지, 정치적 경쟁 허용, 범죄 날조 및 근거 없는 구금 반대' 등을 요구했다. 스포츠에 정치적 개입을 금하는 국제 축구연맹(FIFA)이 유튜브 영상을 차단하고 경찰은 변호사와의 접견을 금하고 있지만, 여전히 SNS 채널을 통해 결승전 난입 사건을 홍보하고 있는 푸시 라이엇이다.

푸시 라이엇은 2011년 모스크바에서 10명 정도의 여성들로 결성된 펑크 록 그룹이자 행위 예술 집단이다. 이들은 모스크바 지하철 광장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붉은 광장, 건물 옥상 등 공공장소에서의 게릴라 공연과 기습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공식 음원 발매 대신 유튜브 채널을 애용했고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항상 복면을 쓰고 별명으로만 서로를 지칭한다.

이들은 여성 인권, LGBT 인권을 주로 노래함과 동시에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그들의 노래 제목만 봐도 '감옥에 죽음을, 저항가들에게 자유를' '푸틴 자살(Putin Zassal - 푸틴이 두려워하다라는 뜻)' '푸틴이 불을 지폈네' 등 저항의 정서가 가득하다.

푸시라이엇, 멍청이들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유

 관중 난입 후 푸시 라이엇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찰이 경기에 난입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해 퍼포먼스 의도와 요구 조건을 알렸다.

관중 난입 후 푸시 라이엇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찰이 경기에 난입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해 퍼포먼스 의도와 요구 조건을 알렸다. ⓒ 푸시 라이엇 유튜브


그야말로 소수 투쟁이었던 이들은 2012년 2월 모스크바 정교회 교회 제단에 난입해 '펑크 록 기도: 성모시여 푸틴을 몰아내 주소서'를 노래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곧바로 체포된 이들은 '종교적 증오에서 비롯된 난동 행위'라는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인해 과한 형을 선고받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마돈나와 폴 매카트니 등 유명 아티스트들부터 국제사면위원회 및 여러 단체들까지 푸시 라이엇 멤버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마돈나에게 "나이 든 창녀들은 도덕 강의를 하려 든다"는 망언을 내뱉는 등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푸틴의 사면 지시로 인해 감옥에서는 풀려났으나 푸시 라이엇은 퍼포먼스를 그치지 않았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 반대하다 줄줄이 구속되었고, 러시아 소치에서 거리 공연을 하던 이들에게 경찰이 채찍질과 폭행을 가하는 장면도 녹화됐다.

월드컵 결승 무대 난입 전까지 숱한 기습 공연을 통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러시아 사회와 삼엄한 경찰국가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 의사를 퍼포먼스로 보여준 푸시 라이엇의 연대기는 2013년 다큐멘터리 <푸시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로도 알려진 바 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결승전 무대가 관중 난입으로 얼룩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경기장에 난입한 푸시 라이엇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장 올해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76.6% 지지율로 당선되며 19년째 통치를 이어가는 블라디미르 푸틴은 사실상 독재자이며, 그에 반대하는 이들은 인권 유린과 권위주의적 정책에 고통받고 있다. 화려한 월드컵 이면에 숨겨진 독재 국가의 이면, 푸시 라이엇의 난입을 단순히 '멍청한 짓'이라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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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21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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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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