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이면 밖에 나가기도 싫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 6월 21일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선>을 본 뒤로 뜨거운 햇빛 아래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중이다. 우리는 뜨거운 햇빛 아래 시원한 바다에 풍덩 빠져 수영할 수도 있고 연인의 손을 잡고 하루 종일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흔한 일상이 '뱀파이어'라 놀림 받던 한 소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었다. 케이티는 태양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낮에는 작은 창문으로 바깥 세상을 구경하거나 잠을 자고, 밤에는 집 안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아빠와 시간을 보낸다. 색소성 건피증(XP)이라는 케이티가 앓고 있는 희귀병은 햇빛에 피부가 노출되면 피부암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평생 짝사랑 했던 상대가 눈앞에

 차에서 키스를 나누는 케이티와 찰리

차에서 키스를 나누는 케이티와 찰리 ⓒ 영화 스틸컷


케이티에게는 평생 혼자 짝사랑해 온 상대 '찰리'가 있다. 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매일 케이티 집을 지나 학교를 가고 수영 연습을 다녔다. 찰리가 초등학교 때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 언제 머리를 짧게 깎았는지 케이티는 모두 알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는 찰리를 보는 것이었을 정도다.

그러다 정말로 운명처럼 두 사람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케이티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아빠에게 기차역에서 버스킹 연주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 음악을 들은 찰리가 다가왔다. 그때부터 오직 밤에서 피어나는 핑크빛 사랑이 시작됐다.

영화 <미드나잇 선>은 뻔한 슬픈 로맨스 영화다. 하지만 뻔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더 궁금하다. 뻔하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꿔봤다는 뜻이 아닐까. 모두가 꿈꾸지만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 일. 이런 극적인 사랑은 사랑에 다가갈 용기도 있고 사랑을 지킬 자신도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창문 넘어 오랜 시간 동안 한 소년만 사랑해온 케이티도 케이티의 병을 알고서도 끝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찰리에게도 감동을 받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

 고민을 이야기하는 케이티와 모건.

고민을 이야기하는 케이티와 모건. ⓒ 영화 스틸컷


케이티와 찰리는 꼭 만나야할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난 후에야 비로소 생기 있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케이티는 혼자 조용히 만들던 노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집에만 머물던 예전과 달리 밤이 되면 집을 뛰쳐나가 새로운 세상을 맛보기도 했다. 찰리는 케이티 덕분에 포기할 뻔 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했고 눈에 띄게 성격도 밝아졌다.

연인의 형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한쪽이 매달리는 사랑도 있고 서로를 괴롭히는 사랑도 둘 다 너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랑도 있다. 그중 최고는 케이티와 찰리처럼 서로를 응원하고 긍정적인 힘을 주는 사이다. 불 같이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가도 힘들 때면 모든 걸 털어놓고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그들 같은 사랑이 부러웠다.

영화는 사실 처음부터 비극을 깔고 시작한다. 케이티의 병은 일찍 죽는 경우가 허다하며, 계속해서 그녀의 죽음이 의사의 대사나 아빠의 불안감으로 암시된다. 영화는 이런 비극을 통해서 이성간의 사랑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랑을 보여준다.

모건은 모두가 케이티를 향해 뱀파이어라 놀릴 때 혼자 그녀의 집에 찾아와 친구가 되어줬다. 바깥소식을 들려줬고 순진한 케이티에게 남자 꼬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화장으로 변신도 시켜줬다. 때로는 자매 같기도 한 최고의 우정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케이티의 아빠를 보면서 먹먹했다. 케이티는 평범한 10대들과 많이 달랐다. 그 나이 때면 사춘기가 와서 부모를 싫어하거나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전혀 아니었다. 언제나 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그런 부녀를 보는 게 더 슬펐다. 저 두 사람은 왜 일반 사람들처럼 싸울 시간조차 없을까. xp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딸은 죽는 순간까지도 슬퍼할 아빠 걱정뿐이다. 아빠는 언제 딸이 떠날까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 부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주변 객석에서 하나 둘 씩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눈이 아팠다.

꿈에서도 안 나오는 환상적인 장면들

 영화 <미드나잇선>의 한 장면. 주인공 케이티와 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미드나잇선>의 한 장면. 주인공 케이티와 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영화 스틸컷


영화에는 아름다운 장면들도 많다. 오밤중 까만 바다에서 두 사람이 헤엄을 치다 키스를 하는 장면은 꿈에서도 안 나오는 환상적 모습이다. 케이티의 인생에서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은 찰리와 첫 만남을 이끌어 줬고 그에게 고백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찰리와 케이티가 기타를 매고 밤기차 여행을 떠났던 날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춤을 추면서 찰리에게 세레나데를 부르는 장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꿈 같은 화면보다도 더 짜릿한 순간들이 있다. 매일 밤 집을 나와 찰리의 차 안으로 뛰어드는 케이티의 모습이다. 어느 날은 수줍게 차에 타고 어느 날은 힘껏 달려들어 찰리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차에 탈 때 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점차 커지고 깊어갔다.

<미드나잇 선>이 남긴 것

비록 영화의 끝은 이별이었을지라도 인물들과 관객들의 삶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남은 찰리와 아빠, 모건은 케이티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옆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본 사람이 소중해진다. 햇빛을 보는 것도 지금 마주한 사람과 한마디 나눌 수 있는 것도 감사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영화 <미드나잇 선>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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