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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상주에 있는 우복 종택
 경북 상주에 있는 우복 종택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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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조판서와 대제학 벼슬을 지낸 진주정씨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의 생전에 조성된 초기 건묵물과 사후에 조성된 종택인 상주 '우복 종택'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우복 종택은 경북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으며 우복 선생이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후 38세 때 입향하여 남은 대부분의 여생을 지낸 곳으로 '우복동천'으로도 불린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13일 상주 우복 종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우복 선생은 서애 류성용의 수제자로 경전에 밝았으며 특히 예가에 조예가 깊었다. 정조 때 대제학을 지냈고 1598년에는 의료기관인 존애원을 세워 사람들의 병을 무료로 진료하였으며 상주에 도남서원을 창건해 후학들을 위한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우복 선생은 1602년에 초당(훗날 대산루)을 짓고 1603년에는 별서 기능을 가진 '계정(정자의 일종)'인 청간정을 지었으며 나중에 대산루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후 5대손인 정주원(1686~1756)이 조선 21대 왕 영조가 내린 사패지인 우산리 일대에 종택을 지으면서 진주 정씨 종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우복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자리하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이 튼구(口)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환기와 통풍에 유리하고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배치법이다.

안채는 'ㄴ'자형으로 겹집과 홑집으로 혼상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ㅡ'자형으로 2중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서편의 가묘에 우복 선생을 비롯한 5대 신위를 모시고 있고 남쪽 담장 밖 사당에는 정종로 선생을 모셨다.

종택보다 먼저 건립된 대산루는 정(丁)자 형의 평면 구성으로 오른편 온돌방 외벽에서 정자 형태로 연결된 누각의 윗부분까지 연결되는 계단이 설치된 특이한 구조로 영남지방 반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민속학적 가치가 있다.

특히 이곳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하사한 시문판이 소장되어 있고 기제사와 묘제 등 조선시대 제례문화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어 역사적·학술적·민속적 가치를 지닌 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을 예고한 우복 종택에 대해 30일간 예고기간을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한편 우복 선생의 15대 종손인 정춘목씨가 25세 때인 지난 1991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우복 종택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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