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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동굴에서 실종됐던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의 구조 완료를 보도하는 영국 BBC 뉴스 갈무리.
 태국 동굴에서 실종됐던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의 구조 완료를 보도하는 영국 BBC 뉴스 갈무리.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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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호 안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재난 영화 <터널> 속 대사와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가 외쳤던 외침은 같았다. 그곳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절박한 외침.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저 한 문장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줬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재난의 현장에 구조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간 우리는 자칫 잊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지난 10일 밤 축구팀 코치였던 엑까본 찬띠웡(25)을 마지막으로 동굴에 갇혔던 태국 유소년 축구팀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 세계인들은 자기 일인양 환호를 보냈다. 자칫 골든타임을 놓쳤다 여겨질 수 있는 17일 동안 그들은 동굴에 갇혀 있었고, 언제 비가 내릴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황 속에서 '기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작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장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구조작전 속에서 전원구조는 '기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동굴소년 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과정에 있어 '기적'보다는 '필연'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격적인 구조 작전이 시작되고 전 세계인들이 하나둘 구조되는 소년들에 이목을 쏟고 있을 때, 태국 당국은 구조된 소년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이제 막 구조된 소년 앞에 수백 대의 카메라가 놓여 있고, 생환한 생존자의 얼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것. 우리에게는 일면 자연스러운 모양새였겠지만, 태국 동굴 소년 구조작전에서 이런 장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장면은 구조된 소년을 태운 구급차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을 담은 반복 영상뿐이었다.

태국 당국의 상식적인 자세... 우리는 부끄럽다

이에 대한 태국 당국은 '아직 구조되지 않은 소년들의 부모님을 배려한다'는 원칙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이 상식적인 자세에 취재 열기에 타올랐던 언론도, 어논이 전하는 속보를 기다렸던 우리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재난 상황에서 언론의 권리, 국민의 알 권리,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권리다. 구조에 필요한 인력 외에는 모두 이곳을 떠나달라는 요구에도 취재 열기로 북적였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를 차례로 떠올려 볼 때 언론이 그동안 이 당연한 명제를 얼마나 오래 잊고 있었는가를 우린 알 수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구조된 유소년 축구팀 코치 엑까본 찬띠웡(25)은 또 어떤가. 리더로서 보여준 그의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그 역시 소년들과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25세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자신의 식량을 소년들에게 모두 양보해가며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자신을 가장 마지막에 구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계속해서 했던 이야기는 '동굴로 아이들을 데려와서 미안하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한 팀의 코치로서, 자신을 믿고 따라온 아이들에 대해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죄책감은 아이들을 끝까지 동굴에서 지켜내야겠다는 헌신으로 이어졌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어린 소년들과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코치의 아름다운 마음, 인간이기에 같은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책임과 헌신이 눈부시게 빛났다. 참사야 인간이 막을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지만 누구하나 사죄하거나 책임을 지려는 이가 없었던 그간의 재난 현장에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청년코치의 희생은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언론보도를 보니, 지난 구조기간에는 악조건이 많았다고 한다. 이미 열흘을 굶은 소년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고 동굴까지 가는 길목의 수심도 깊었다고 한다. 비까지 오는 날엔 통로가 물에 잠겨 자원봉사자들마저 위험해질 우려가 있었다. 실제 구조작업 중 자발적으로 지원해 동굴을 찾은 한 봉사자가 산소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전 세계가 안타까운 마음을 모으는 동안 그 누구도 '장기화 되는 구조작업' 이라던가 '비용' 또는 '생존 가능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계에서 구호물자들이 쏟아졌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투입되길 원하는 봉사자들은 날마다 동굴을 찾았다고 하니 말이다.

동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돕고자 했던 '사람'들은 어떤 계산도 없이 본능적으로 헌신했다. 신념과 이해관계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온전히 가슴 아파야 할 재난 앞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고 시체장사라는 저속한 말까지 오갔던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적처럼 보이는 동굴 소년들의 생환은 사실 '동굴 안에 사람이 있다'는 작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동굴 안에 사람이 있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한 걸음 물러서 예의를 지켰고 누군가는 끝까지 그 자리에서 책임을 다했다. 인간에 대한 모든 예의가 갖춰진 그곳에서 소년들은 건강히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이들의 생환 이야기가 단지 기적과 천운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재난 속엔 없었고 이들의 귀환 속엔 있었던 '그것'은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더욱 철저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재난 현장 속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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