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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도 흙을 가려서 자신의 영역을 만든다
▲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풀도 흙을 가려서 자신의 영역을 만든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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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아이고'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땡볕을 등에 지고 농작물을 돌보면 얼음 녹듯이 온 몸으로 흘러내리는 땀줄기에 소름 돋듯이 시원할 때도 있다. 어쩌다 지나가는 바람이 땀에 젖은 얼굴을 씻어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목덜미를 젖혀서 파란 하늘을 본다. 고개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초록으로 일렁이는 풀들의 한여름 생존전략이 궁금해진다.

'엥엥엥' 거리는 엔진소리가 농장 인근에서 자주 들린다. 석유를 쓰는 농기계를 유일하게 사용할 줄 아는 예초기에 시동을 걸어야 하는 요즘이다. 지금부터는 손과 낫으로 상대하기 힘들 만큼 풀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들불처럼 번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안전을 위해 고무장화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방수앞치마를 두르고 얼굴을 가리는 보호구를 갖춘다. 예초기의 쇠날은 위험해서 나일론줄을 주로 사용하지만,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항상 긴장해야 한다. 풀이 쓰러지면서 놀란 곤충들이 대피할 시간을 갖도록 속도를 늦추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풀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들에게는 대재앙이 아닐수 없다.

움직일 수 없는 풀의 생존전략 

움직일 수 없는 풀도 외부의 위험을 감지한다. 줄기가 잘리면 생존본능으로 더 빠르게 성장을 하고 씨앗을 키운다. 뿌리가 뽑혀도 씨앗을 남기려는 본능으로 줄기와 잎과 뿌리에 남아있는 물과 양분을 씨앗으로 보낸다. 동물의 모성애 같은 희생이 식물에게도 있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속담처럼 풀도 흙을 가려서 자신의 영역을 만든다. 물빠짐(배수)이 안 좋은 흙에서는 갈대처럼 키가 큰 풀들이 자리를 잡는다. 키 작은 풀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가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가뭄에도 짓밣혀도 살아남는 쇠비름(왼쪽) 과 질경이
▲ 풀의 생존전략 가뭄에도 짓밣혀도 살아남는 쇠비름(왼쪽) 과 질경이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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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하고 메마른 흙에서는 키가 작은 풀이 자리를 잡는다. 더위와 가뭄에도 생생하게 폭풍성장을 하는 쇠비름이 대표적이다. 농장의 고추밭에 쇠비름이 많은 것은 건조한 토양의 성질을 갖고 있어서다. 쇠비름은 뿌리가 뽑혀서 떙볕에 있더라도 일주일 이상 견딜 만큼 수분을 많이 갖고 있으며, 비가 내리면 뿌리를 다시 흙속으로 뻗으며 살아난다.

쇠비름은 위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작물의 광합성 방해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 뻗어가면서 겉흙을 덮어 지온상승을 막고 수분을 유지한다. 그리고 다른 풀이 쉽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주기 때문에 농장에서는 작물과 함께 살아가도록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쇠비름이 한여름에도 건조한 흙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른 식물과 반대로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에는 기공을 닫아 수분을 유지하면서 저장해 둔 이산화탄소로 광합성을 하는 생존방식으로 진화했다.

밭으로 들어가는 농로와 발길이 많은 길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풀이 있다. 지금 한창 세력을 넓히고 있는 질경이는 무수한 발길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생존방식으로 진화했다.

잎을 바닥에 길게 눕힌것도 다른 풀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으로 작물과 공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밭 안에서 눈에 잘 안 띄는 것은 다른 풀과의 경쟁을 피해서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에 그들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 같다.

줄기의 수많은 가시로 뻗어가는 환삼덩굴(왼쪽)과 줄기의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뻗어가는 바랭이
▲ 풀의 생존전략 줄기의 수많은 가시로 뻗어가는 환삼덩굴(왼쪽)과 줄기의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뻗어가는 바랭이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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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대한 모성애를 가진 풀

키는 작아도 작물의 광합성과 생육을 방해하는 풀도 있다. 자리를 잡고 세력을 넓히기 전에 미리 기(氣)를 꺾어 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는 환삼덩굴과 바랭이다. 불가사리처럼 생긴 넓은 잎을 가진 환삼덩굴은 줄기에 작은 가시가 무수히 돋아나서 무엇이든지 끌어안고 덮어버린다.

바랭이는 줄기를 바닥에 붙여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며 영역을 넓혀간다. 흙속의 뿌리는 그물을 펼친 것처럼 뻗어가면서 작물의 생육을 방해한다. 어릴 때 뽑지 못하면 뿌리가 뽑히지 않을 만큼 강하게 성장한다.

바랭이는 줄기를 뻗치기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 것이 쉽지 않지만, 흙을 경계로 줄기밑둥과 뿌리부분을 쳐내면 생장점을 꺾을 수 있다. 환삼덩굴은 줄기와 잎을 예초기나 낫으로 쳐낸 다음 줄기 밑둥을 당기면 뿌리는 쉽게 뽑힌다.

농사에서 성가신 존재로만 바라보는 풀들의 생존전략을 들여다보면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뽑거나 잘라도 그 자리에서 다른 풀이 또 올라온다. 풀이 흙을 품는 것은 본능이고 모성애를 가진 것이 틀림없다.



태그:#쇠비름, #질경이, #환삼덩굴, #바랭이, #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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