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기사 수정 : 11월 25일 오전 11시 42분]

"고모님(차보석 지사)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마치 고모님을 만난 듯 감동스럽습니다. 고모님께서 2016년 8월 15일,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사실도 저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하마터면 국가보훈처 책상 서랍 속에서 마냥 잠자고 있을 고모님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난 3일, 경기남부보훈지청(지청장 구남신)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차보석 지사의 조카인 차영조 선생이 고모의 훈장을 받아든 소감이다.

차보석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장관)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선생의 여동생으로 1892년 평안남도 맹산 함종(咸從)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고베(神戶)가사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귀국한 뒤 1912년 대구신명여학교에서 4년간 교단에 서면서 재직 동안 교가(校歌)를 만드는 등 초창기 교풍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차보석 지사는 23세 되던 해에 대구신명여학교를 떠나 평양으로 가서 오라버니인 차리석 선생과 교육사업을 펼치다가 3·1만세운동 직후 오라버니와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에서 흥사단에 참가하는 한편, 1921년에는 재상해유일학생회(在上海留日學生會)를 맡아 활약했다.

그 뒤 차보석 지사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30세 때인 1922년으로 미국에서도 조국독립을 위한 눈부신 활약은 끊이질 않았다. 그 활동을 보면 1925년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을 거쳐 1926에서 1928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맡아 활약했다.

차보석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의김마리아 지사와 차보석 지사(오른쪽)
▲ 차보석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의김마리아 지사와 차보석 지사(오른쪽)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이듬해인 1929년에는 이 단체의 서기, 재무 등을 맡아 헌신했다. 이 기간(1925~1928)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어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포 자녀들에게 한국 혼을 심는 데 주력했으며 1931년에는 국어학교 재무 일을 도맡았다.

1931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 입회해 1932년 3·1절 기념식 준비위원 등으로 활약했으며 1925년부터 1932년 3월 21일 숨을 거두기까지 고국에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조국 독립의 기틀을 다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향년 40세로 먼 이국땅에서 후손 없이 숨을 거두기까지 차보석 지사는 교육가요,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다. 이러한 차보석 지사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2016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문제는 유일한 피붙이인 차영조 선생(이 구절에 대해서는 외손자 유기방씨가 이의 제기를 해왔습니다. 유기방씨는 차리석 선생의 본처인 강리성씨 사이의 따님인 차영희씨의 아드님으로 이 구절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어 밝혀둡니다)이 대리수령 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이다.

훈장증 차보석 지사의 훈장증
▲ 훈장증 차보석 지사의 훈장증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차보석 지사가 훈장 받은 사실을 안 조카 차영조 선생은 보훈처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고모의 훈장을 대신 수령할 수 있는지 보훈처에 질의했다(2018년 2월 5일, 국민신문고에 질의). 그러자 보훈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독립운동가 고 차보석(2016 애족장)의 후손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고 귀하께서 친족으로 확인되는 것도 사실로 확인됩니다. 다만 직계 후손이 없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직계 후손이 있는 지 확인한 뒤 (해외 자료 검토 및 확인 등에 3개월 소요) 후손이 없다고 판단되면 귀하께 훈장 대리 수령 여부를 검토하여 별도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3개월 정도 걸린다던 차보석 지사의 후손 확인 여부는 세 달이 지나고도 다시 두 달이 지난 뒤에서야 결론이 났다. 국가보훈처는 "후손 없음"을 확인해 3일 조카 차영조 선생에게 훈장을 전했다.

차영조 꿈에도 그리던 고모님의 훈장증을 대신 받아든 조카 차영조 선생(오른쪽)과 구남신 경기남부보훈지청장(2018.7.3)
▲ 차영조 꿈에도 그리던 고모님의 훈장증을 대신 받아든 조카 차영조 선생(오른쪽)과 구남신 경기남부보훈지청장(2018.7.3)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국가보훈처의 훈장 수령에 대한 철저한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만일 기자가 차영조 선생에게 고모님인 차보석 지사의 서훈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차영조 선생은 영영 고모님의 서훈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에서 숨진 차보석 지사의 후손 여부를 미리 알아보지 않고 조카인 차영조 선생이 '훈장증 대리 수령'을 질의한 뒤에서야 미국에 후손 여부를 알아본다며 5개월가량의 시간을 소비한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분들은 살아생전에 훈장을 받지 못하고 사후에 추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가능한 한 빨리 후손을 찾아 훈장을 전달하는 게 고인에 대한 예의요,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참에 국가보훈처에 묻고 싶다. 국가보훈처에는 차보석 지사처럼 수령되지 않고 잠자고 있는 훈장증이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아울러 직계 후손이 없는 경우 차영조 선생처럼 꿈에도 그리던 고모님을 만난 듯 '훈장증' 이나마 대리 수령할 수 있는 기간을 단축하고 그 절차도 간편하게 해 줄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74세의 조카가 후손 없이 돌아가신 고모의 훈장증을 대리 수령하기 위해 복잡한 민원서류를 내고 5개월씩 그 답을 기다리는 것은 무척 고되고 지치는 일이라는 걸 국가보훈처는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8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