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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은 한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작은 땅에 집을 올리다 보니 한 층에 방 2개를 만드는 게 무리였지만 반지하와 1층은 작은 방을 2개 만들어 세를 주고 우리는 3층에 안방, 4층에 작은 방 2개를 만들어 두 층을 다 사용했다.

단점이라면 3층과 4층이 실외 계단으로 이어진다는 거였다. 실내 계단으로 만들지 못한 이유가 설계 문제인지 땅덩어리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불편한 구조에서도 우리 가족은 20년을 살았다. 한옥집까지 세어보면 27년 정도를 한 자리에서 살았다.

기억할 수 있는 연령부터는 결혼해 집을 나오기 전까지 나는 이사 경험이 없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에 맨 몸으로 올라온 부모님이 강북 산동네라도 집을 마련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까지는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그 덕에 안정적인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걸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결혼 생활 7년 동안 이사만 5번

부모님이 사는 집에서 살다 결혼 이후 주거 문제를 겪은 나와 달리 대학 시절부터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많다
 부모님이 사는 집에서 살다 결혼 이후 주거 문제를 겪은 나와 달리 대학 시절부터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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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때 학교에서 공부 중이었던 남편과 나는 주말 부부였다. 남편 졸업 후 거취가 유동적일 수도 있고 당시 내가 기숙사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라 우리 부부는 무리해서 전세를 구하지 않고 원룸에서 시작했다. 물론 다세대 주택이라도 전세로 들어갈 수 없는 경제적 형편도 한몫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나 이런 걸 이용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우린 원룸을 선택했다.

원룸에서 겨울을 난 우리 부부는 얼마 안 있다 투룸으로 이사했다. 새로 지은 원룸이었지만 단열 공사가 잘 안 됐는지 곰팡이가 피어서 신경이 쓰인 데다 생각보다 원룸이 불편했다. 마침 3천만 원을 더하면 투룸으로 갈 수 있기에 대출을 받아 이사를 했다.

모든 세간이 세팅된 원룸에서 투룸으로 이사하는 거라 이삿집 센터를 안 부르고 남편 후배들 몇 명만 동원해서 이사했다. 이 이사를 시작으로 우린 아이 갖는 걸 대비해 빌라로, 남편 직장 따라 경기도로 그곳에서 다시 다른 아파트로 4번 더 이사를 했다. 결혼 생활 7년 동안 총 5번 이사를 했다. 그 중 전세 만기를 채우고 이사 한 건 2번이고 그 외는 곰팡이나 집의 문제로 만기 전 이사가 3번이었다.

세간이 단출해 이사비용이 얼마 들지 않아 원룸과 투룸 시기에 이사를 쉽게 결정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매번 이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서러웠던 건 아이를 낳고 빌라에 살 때였다.

낡은 페인트 문짝에선 페인트가 떨어져 날렸고, 주변 전원 주택에서 침투한 개미 때문에 아이를 바닥에 놓지도 침대에 놓지도 못하고 불안했다. 위생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신생아기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정말 사채를 써서라도 아파트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아파트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건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 착각이었다
 아파트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건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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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건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 착각이었다. 또, 주거 문제는 위생만 해결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면 보내야할 학교가 근거리에 있는지도 생각해야 했고 갈수록 머리가 더 아파졌다.

거기에 무리해서 아파트로 전세를 가면서 전세금과 매매금이 2천만 원 밖에 차이 안 나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2년 만기 후 2천만원을 무리라도 해서 매매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같은 시기 전세를 얻은 우리와 달리 신혼부부 생애 첫 주택마련 대출을 이용해 집을 구입한 남동생은 2년 사이 집값이 1억 가까이 올랐다. 부동산 투기가 왜 생기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이 사는 집에서 살다 결혼 이후 주거 문제를 겪은 나와 달리 대학 시절부터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많다. <나의 주거 투쟁>은 30대 후반 두 아이 아빠인 김동하 기자가 대학 시절부터 겪은 주거 이력을 통한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쓴 책이다.

책에는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식당 옆 단칸방 집부터 대학 시절 하숙, 자취, 더부살이 등 다양한 주거와 결혼 후 주거까지 저자가 겪은 주거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1부에서는 30대, 20대, 10대 각 시기별 저자가 겪은 주거 형태에 따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주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그 중 저자가 취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면서 부부 두 사람만의 돈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집을 마련한 이야기와 아이 때문에 집을 이사하는 에피소드가 가장 공감갔다. 무리해서 대출을 받기 보단 자신들 경제 사정에 맞는 반지하 전세를 얻어 신혼을 시작한 저자는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며 이사를 결정한다.

비염 탈출을 위해 햇빛 잘 들고 공기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큰 아이가 유치원을 가게 되면서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이때 정해진 돈에서 자연과 유치원이 가까운 아파트를 고르기 위해 애썼던 노력을 보며 신혼부부의 주거 선택 기준에 공감했다.

우리 부부도 아이가 유치원 가기 직전에 집을 이사했다. 결로로 곰팡이가 심했던 아파트를 탈출하기 위한 이사였지만 아이가 곧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도 가야 했으므로 주거지 선택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이전에는 깨끗한 아파트기만 하면 됐던 조건에서 갖춰야 할 조건이 늘었다.

늘 그렇듯 경제 사정이 넉넉하면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 조건을 맞추려니 힘들었다. 집 보러 다니면서 막막했던 당시 심정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났다.

지금, 내 집 마련 때문에 애타고 있다면

<나의 주거 투쟁>
 <나의 주거 투쟁>
ⓒ 궁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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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나의 주거 투쟁>에는 저자가 20대와 10대를 거치면서 경험한 주거와 그에 따른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중 20대 대학 생활을 타지에서 하면서 겪은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대학을 다녔고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그러했던지라 대학생,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 대한 간접 경험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게 많았다.

고시원, 하숙, 달동네 월세, 다세대 주택에서 방만 빌려쓰는 형태 등 다양한 주거를 겪은 저자의 경험을 보며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저 '어렵겠거니'하고 막연하게 짐작하던 일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불확실한 주거 형태와 미래를 가진 20대를 유동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가진 것 없이도 떳떳할 수 있는 청춘을 이야기하며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 자만하거나 경제력 없음을 비탄하는 못난 놈도 비웃어 줄 수 있다고 한다.

"금수저, 은수저가 명확한 사회에서 출발선을 조정하기는 어렵더라도 각각의 출발선에서 어느 만치 도약했는지를 성패를 평가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생각은 청년들 주거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힘든 마음을 위로해준다.

저자의 주거 이력을 읽으며 '주거 문제=생존=삶의 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저자는 책을 통해 주거 문제가 아닌 우리 삶의 문제, 우리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각각의 주거에서 갖게 된 저자의 생각이 관련된 문학 책이나 인문학 등 다양한 책 인용구와 함께 제시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하다.

<나의 주거 투쟁>은 개인사를 통한 우리 사회 주거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내가 살아온 집과 그 안에서의 삶을 회상하고 앞으로 살아갈 집과 삶을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사회구조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멀고 막막하게 느껴졌던 주거 문제가 내 일과 이웃의 일로 다가오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 이사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면, 내 집 마련 때문에 애타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나의 주거 투쟁 - 주거 이력서로 바라본 나의 성장 이야기

김동하 지음, 궁리(2018)


태그:#주거투쟁, #주거이력서, #청년주거문제, #신혼부부주택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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