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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지역돌봄활동가가 다문화가정 자녀 혜선(가명)이와 클레이 놀이를 하고 있다.
 김수자 지역돌봄활동가가 다문화가정 자녀 혜선(가명)이와 클레이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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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선생님과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할 수 있어요."

9살 다문화가정 자녀 혜선(가명)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빠가 새벽에 일을 나가면 혜선이는 혼자 학교에 가고 또 혼자 집에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어린 혜선이는 늘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혜선이는 제가 옆에 가만히 있어 주기만 해도 좋아해요. 엄마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라 제가 주는 작은 사랑에도 혜선이는 크게 반응해요."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에 혜선이를 돌보는 김수자 활동가는 "개인적인 일이 많아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혜선이를 보면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 등에서 부모 없이 방치되는 아이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아이돌봄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도심 외 농촌 지역이나 사회복지 기반이 전무한 지역에서는 이용할 방법이 없다.

일부 다문화가정과 같이 소득이 높지 않은 가정은 소외 지역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고 또 방치되는 아이들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며 다양한 어려움에 처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제가 새벽 5시쯤 집에서 나가는데 아이가 깨지 않으면 일을 나갈 수 있어요. 근데 혜선이가 잠에서 깨면 아직 밤이라 무서우니까 '가지 말라'고 웁니다. 아이 우는 모습을 보다가 일을 나가지 못한 날이 많습니다."

다문화가정 아내와 이혼 소송 중인 혜선이 아빠는 노동일을 하며 하루를 사는데 혜선이가 가장 큰 걱정이다. 가족이 없는 방에서 늘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위해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이현주)가 색다른 처방에 나섰다. 같은 동네에 거주하며 봉사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모집해 지역사회 다문화가정 자녀를 돌보는 '우리 동네, 빅마마'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사례 관리를 진행하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족관계, 돌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다문화가정이 적지 않았어요. 그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서행동특성평가를 해보면 고위험군으로 나옵니다. 가정에서 방치되다 보니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해 학교에서 또래관계를 형성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어요. 이 아이들을 지역 안에서 먼저 돌보면 어떨까, 지역의 엄마들이 다문화가정에 가서 엄마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 고민하다 빅마마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빅마마 프로그램을 위해 지난 3월 화성시 서부권과 북부권에서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은 50~60대 양육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지역돌봄활동가 교육을 실시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다문화가정 자녀 돌봄 활동에 나서 ▲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족 발굴 ▲ 자녀 돌봄 서비스 ▲ 심리 정서지원 및 학습지도 ▲ 다문화가족 및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다문화가정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매일 방문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안정감을 찾고 두려움을 없애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집에 방문하는 것이 혜선이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평소 학습지도를 잘 못 하는데 선생님이 와서 미술과 놀이, 공부 등을 함께 해 주니까 좋죠. 혜선이도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에 자주 연락하며 의지하는 것 같아요."   

가족갈등, 자녀양육, 생계 등으로 어깨가 무거운 혜선이 아빠가 미소를 지었다.

6명의 '빅마마들'은 현재 다양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10명을 돌보고 있다. 현장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직접 만난 '빅마마들'의 생각은 어떨까?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우리 동네, 빅마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 왼쪽부터 최원희, 차은숙, 김수자 활동가.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우리 동네, 빅마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 왼쪽부터 최원희, 차은숙, 김수자 활동가.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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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희 돌봄활동가 :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엄마와 아이가 단둘이 사는 집에는 곰팡이가 많이 퍼져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났어요.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사람이 사는 환경으로 볼 수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놀라웠죠. 공부를 가르쳐보니 2학년 아이가 한글을 읽지 못해서 또 한 번 놀랐어요. 지금은 많이 놀아주고 공부도 조금씩 가르치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최원희 돌봄활동가가 맡은 그 집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곰팡이를 없애고 도배를 새로 할 수 있었다.

차은숙 돌봄활동가 : "제가 돌보는 아이는 저와 노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을 2시간 동안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기만 하면 돼요. '아, 이 아이에게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어요. 또 다른 아이는 함께 놀이터에 가면 시소 타는 것을 좋아해요. 혼자가 아닌 둘이서 탈 수 있는 시소를 타면서 웃어요. 놀이터에 혼자 오는 것이 싫었나 봐요. 그 아이는 놀이터에 놀러 오는 다른 아이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말을 걸지 못해요. 가슴 아픈 일이 많습니다."

차은숙 돌봄활동가는 아이들 얘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연아 사례관리사 : "방문학습지도 가지 않는 농촌과 소외 지역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지금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어요. 20가정 이상이 도움이 필요한데 겨우 10가정에 지역돌봄활동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하며 방임을 경험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에요. 빅마마가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빅마마 프로그램을 만든 조연아 사례관리사도 함께 빅마마들과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다문화가정 자녀, #화성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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