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메인포스터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메인포스터

▲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메인포스터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메인포스터 ⓒ 싸이더스


01.

영국은 지금도 끊임없이 뛰어난 음악가들을 탄생시키는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더 스미스(The Smiths)는 그 어떤 뮤지션보다 더 많은 영향을 불러 일으킨 밴드였다. 1980년대 영국의 인디 음악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밴드였음은 물론, 인디 락 밴드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비틀즈의 거대함에 비견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땠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못했다.

모리세이와 조니 마가 의기투합해 결성한 밴드 더 스미스는 1984년 정식 데뷔와 함께 주목을 받지만, 1987년 네 번째 정식 앨범 < Strangeways, Here we come >를 작업하던 중 기타리스트 조니 마의 이탈로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홀로 남은 보컬 모리세이가 고군분투 해 보지만, 밴드의 중심이자 내외적인 모든 업무를 책임져 왔던 이물이 바로 조니 마였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던 탓이다.

마크 길 감독의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인 모리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 역시 밴드의 보컬이자 작사가인 모리세이다. 그의 천재성과 노력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의 데뷔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선재물을 통해 이 작품이 밴드 더 스미스의 탄생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 보면 그렇지는 않다. 진짜 밴드의 탄생 비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법하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 싸이더스


02.

영화 속 주인공인 모리세이(잭 로던 분)는 인생이 보잘 것 없이 따분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청년이다. 세무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떤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세상에서 홀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저 소속되어 있는 느낌이다. 지각은 일상이고 기분이 내키지 않는 날엔 결근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 그에게도 마음이 끌리는 일이 있다.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맨체스터 어귀의 작은 락클럽에서 열리는 밴드 공연을 보러 가서도, 근무 시간 중에도 그는 글 쓰는 일을 놓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신문의 독자란에 기고한 자신의 글을 보고 감상을 적어 보낸 독자 린더(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분)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운명이 바뀌어 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어둡다'는 것이다. 장르적으로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잘 알려진 밴드 더 스미스가 성공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데뷔를 하기까지의 준비과정에서 있었지만 그동안 팬들이 몰랐던 일들을 조명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류의 작품들이 탄생 이후 성공 가도를 달리는 시절을 들여다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카메라는 오로지 미래에 밴드의 보컬이 될 모리세이의 삶만을 조명하며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소심하고 우울한 면을 비추고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려 할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니 마(로리 키나스턴 역)와 조우하며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은 애초에 밴드 더 스미스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이 드러난다.

03.

알려진 바에 따르면, 더 스미스의 활동에 가장 깊게 관여했던 것은 실제로 기타리스트인 조니 마였고 그의 이탈 이후에 모리세이는 그 어떤 상황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니 영화 속에 표현된 모리세이의 모습은 실제와 상당히 유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감에 가득 찬 인물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는 러닝타임 내내 수동적인 인물이다. 빌리(조디 코머 분)와 가까워지게 된 것도 곁에 린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런던 공연이 좌절된 이후에 극심한 우울증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곁에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천재성과 별개로 그것을 발현시킬 수 있는 행동력이 수반되는 인물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남는 것이다.

그런 그의 나약한 면을 더욱 부각하는 인물은 바로 린더다. 자신의 꿈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모리세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두 사람이 음악적으로 교감을 나누고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밴드 노즈블리드에 공석이 생겨 런던 공연에 합류하게 될 기회를 얻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기회를 놓치게 되고 난 후 두 사람이 나누는 통화 장면은 이 지점의 차이를 가장 크게 드러낸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스틸컷 ⓒ 싸이더스


04.

언제나 흐린 맨체스터 지역의 전경과 함께 어두운 시절의 모리세이가 함께하면서 형성되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지점의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감독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그중에서도 세무서에서 만나게 되는 크리스틴(조디 코머 역)은 모리세이의 대쪽 같은 창작 욕구에 밀려 소외되는 역할로 자주 활용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녀의 존재로 인해 모리세이가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음이 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면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예술적으로는 큰 자양분이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실생활에 있어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 부분에서도 린더와의 비교를 통해, 모리세이의 그것이 극단적으로 심각한 정도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05.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는 이 영화가 유사한 종류의 다른 작품들처럼 어떤 교훈이나 큰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이 작품 속 모리세이의 모습을 통해서는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라던가, '포기하지 않는 이가 성공한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작품이 지금 담고 있는 지점 이후의 이야기, 그러니까 마지막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조니 마와의 만남 이후의 모습들을 그려냈더라면 차라리 더 교훈적인 메시지를 보여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그랬기 때문에 한 인간의 삶에 대해 더욱 깊이 보여줄 수 있었던 부분은 분명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우상화하고 신성시하는 과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과 무력함, 우울함들이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과정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이 작품에는 확실히 존재한다. 단 한번의 공연만으로도 지역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높은 재능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도 성공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다.


영화 무비 잉글랜드이즈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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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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