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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촌에는 1944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일대에는 일본군 전투 비행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대구 동촌에는 1944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일대에는 일본군 전투 비행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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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몇 명이나 될까? 여성가족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총수는 최소 3만에서 최대 40만 명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며 연구자마다 많은 차이를 보인다"라고 말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도 일본 우익 학자 2만, 중국 연구자 40만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숫자가 연구자마다 차이가 심한 것은 일본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44년 8월 23일 일본은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공포, 12세부터 40세 사이의 우리나라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이전부터 저질러오던 행위를 마침내 법적 정책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법제화를 근거로 일제는 강제 징집에 저항하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투옥했다. 결국 끌려간 여성들은 낮에는 탄약 운반 등 중노동을 하고, 밤에는 '위안부(military sexual slavery)'로 혹사당했다.

'위안부' 강제 수용소, 국내에도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일본, 만주,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평양의 섬들 등지로 끌려갔다. 일본군은 우리나라 여성들을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군수품처럼 취급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외딴 섬에 버리고, 자살을 강요하고, 집단 학살했다. 생존한 일부도 귀국 후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국내에도 '위안부'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 당시 대구 동구 검사동에는 일본 전투 비행단이 주둔했다. 일제는 군부대 인근의 2층 건물에 '위안부' 수용소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여성들을 감금했다.

2012년 8월 12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이던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제 '위안부' 만행의 현장이 남아 있는 대구에 역사관을 건립해야 한다면서 '대구 시민 걷기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드디어 역사관이 건립되었다. 역사관은 1919년 대구만세운동 시위 군중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짖으며 행진했던 서문로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관에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희움은 '희망을 모아 꽃을 피운다'는 의미이다.

만세운동로에 세워진 '위안부' 역사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한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배한동 상임대표와 이대영 사무처장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한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배한동 상임대표와 이대영 사무처장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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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8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대구 만세운동 참가자들은 서문시장을 출발하여 시내 중심부로 진입했다.

시위대는 대구경찰서(현 중부경찰서)와 식산은행 대구지점(현 대구근대역사관) 사이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종로로 나아갔다.

지금 그 길을 걸어보면 중부경찰서 서쪽에 종로초등학교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서문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종로초등학교는 교문 안 담벽에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그림, 사진, 안내문 등을 대대적으로 게시해 놓아 교육기관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다.

제일교회 대문채에서 출발한 대남 소학교가 희도 국민학교라는 이름표를 달고 현재 위치로 온 때는 1954년이다. 희도 국민학교는 1955년 종로 국민학교가 되었고, 1996년 종로 초등학교가 되었다. 1941년부터 시작된 일본 교명 '국민'이 '초등'으로 바뀌는 데 무려 55년이나 걸렸다. 일제 잔재 청산이 왜 이렇게 더딘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통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문제해결 위해 노력

희움은 2015년에 문을 열었다. 희움의 누리집은 "희움 일본군 '위안부'역사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간입니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을 통해 평화와 여성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하는 역사관'입니다"라고 부언한다.

김순악 할머니가 2005년 11월에 그린 <평화>(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안에 게시되어 있는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김순악 할머니가 2005년 11월에 그린 <평화>(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안에 게시되어 있는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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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오랜 활동을 밑거름으로 2009년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2010년 고(故) 김순악 할머니께서 "내가 죽어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라는 유언과 함께 5천여 만 원을 기탁하셨고, 다른 할머니들께서도 뜻을 함께해 주셔서 역사관 건립을 위한 씨앗기금이 마련되었다.

시민모임은 역사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많은 시민들이 뜻을 모아 주었다. 지역의 예술가와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도 재능기부를 통해 동참했고, 2012년 발매한 시민모임의 브랜드 '희움'을 통해서도 많은 분들이 역사관 건립에 동참했다.

많은 청소년들도 희움 제품의 공동구매에 참여하여 수익금을 전달해 주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해 주었다. 이처럼 시민모임의 노력과 다양한 시민들의 성원이 결실을 맺어 2015년 12월 5일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드디어 개관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희움

희움은 지하, 1층,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는 벙커로, 1920년대 중반의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을 희움으로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현재는 지역 작가 혹은 젊은 작가가 평화의 메시지를 새기고, 장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1층은 맞이방, 상설 전시실, 영상실로 구성되어 있다. '맞이방'은 관람권 구매 및 각종 문의를 할 수 있는 안내 공간이 있고, 희움의 건립 이야기와 만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희움 스토어'에서 브랜드 '희움'의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전시실 1은 상설 전시 공간이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생존자들의 기억,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운동사를 볼 수 있다. 영상실은 영상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외 안뜰도 있다. 안뜰은 1920년대 이전부터 자라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일락 나무가 꽃피는 공간이다. 휴식과 담소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심달연 할머니가 2007년 4월 23일에 그린 <내가 새가 된다면 날아가고 싶다, 천리만리> (홍보물에 수록되어 있는 인쇄물을 재촬영한 사진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심달연 할머니가 2007년 4월 23일에 그린 <내가 새가 된다면 날아가고 싶다, 천리만리> (홍보물에 수록되어 있는 인쇄물을 재촬영한 사진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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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갤러리 평화', 전시실 2, 교육관, '공간 희움', 복도,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다. '갤러리 평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고 심달연의 원예 압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2는 평화와 여성 인권에 대한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교육관은 세미나와 모임 등을 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대구·경북 지역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과 이야기,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 희움'은 라일락 나무를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야외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복도에서는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걸어온 시간과 함께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수장고에는 대구·경북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자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비롯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운동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화-토요일 개관, 초등학생까지는 무료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관장 이인순)은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개관한다.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는 입장료를 받지 않으며, 청소년은 1,000원, 일반은 2,0 00원을 받는다. 관람료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운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운동에 사용된다.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50(서문로1가 79-1)에 있는 희움의 전화는 053)254-1431이다.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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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희움, #일본군 '위안부', #이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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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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