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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침. 일명 '계란후라이'.
 달걀부침. 일명 '계란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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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혹은 달걀. 참 추억 많은 음식입니다. 밥 위에 달걀부침(일명 '계란후라이') 하나만 올라와도 그 도시락은 고급(?) 도시락이 됐지요. 달걀말이는 멸치볶음과 더불어 고급(?) 도시락 반찬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달걀부침을 놓고 형제들이 싸웠던 기억도 있을 것이고 백반집 주인은 단골이 오거나 맛있는 반찬이 떨어지면 달걀부침으로 친근함과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죠. 달걀말이는 인심좋은 백반집의 대표 반찬이기도 했고요.

삶은 달걀은 어떤가요? 사이다와 더불어 기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고 소풍날 한두알 가져와서 먹는 맛도 좋았습니다. 요즘에는 맛있는 간식거리를 파는 카트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카트가 지나가면 반드시 사게 되는 게 삶은 달걀이죠. 집에서 먹는 것보다 기차에서 먹는 맛이 더 좋았습니다. 목 메일 때 먹는 사이다 한 모금은 꿀맛이죠.

분식집은 달걀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밀가루 반죽에도 달걀이 필요하고 돈까스를 튀길 때도 달걀물을 묻혀야합니다. 라면에는 달걀이 들어가고 김밥에도 달걀 지단이 들어가고 냉면에는 삶은 달걀 반쪽이, 김치볶음밥은 달걀부침을 올려줍니다. 달걀이 없다면 분식집도 없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겠지요?

한편으론 달걀만큼 위세가 왔다갔다한 음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흔해보이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느 순간에는 가장 귀한 음식이 되기도 하거든요. 최근에 달걀 값이 폭등하자 달걀 음식 값 역시 폭등한 적이 있습니다.

떡볶이집에서 3천 원에 팔던 달걀말이를 갑자기 5천원으로 올렸을 때의 섬뜩함(?)이 떠오르네요. 라면에 달걀을 넣으면 값을 더 받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나도 삶은 달걀"

아마 달걀하면 이 말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저씨, 계란 드실라우?"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소녀 옥희가 좋아하는 음식이 삶은 달걀이었죠.

사랑방에 든 아저씨는 옥희가 자신이 점심을 먹는 모습을 구경하자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라고 물어봅니다. 옥희가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하자 아저씨는 식탁에 있던 삶은 달걀을 옥희에게 건네죠. 그리고 묻습니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나도 삶은 달걀."

그 말로 인해 옥희는 달걀을 실컷 먹게 됩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소녀의 시각에서 본, 아저씨와 어머니의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연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남편을 잃은 몸이자 여전히 '남녀칠세부동석'을 유지하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죠. 결국 아저씨가 떠나고 여느 때처럼 달걀장수 노파가 오자 어머니는 말합니다.

"이제 오지 마세요. 달걀 먹는 사람이 없어요"

<태백산맥>의 달걀은 어떤가요? 공산당 활동을 하던 정하섭은 무당 소화의 집에 숨어있기로 합니다. 소화는 정하섭을 연모해왔고 정하섭도 소화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죠. 둘은 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 아침상을 짓기 위해 부엌에 간 소화에게 있는 것은 달걀 한 개였습니다. 고기나 생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꼬막 한 접시라도 차리고 싶었던 소화는 울상이 되지요.

그렇지만 아쉬움 속에서 소화는 달걀 한 개를 가지고 달걀찜을 만듭니다. 밥솥에 천을 놓고 계란을 깨서 놓고 새우젓을 조금 넣어 밥과 함께 익히는 게 달걀찜이죠. 소화의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긴 달걀찜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친구들의 집을 찾으며 내민 '달걀 한 판'

돈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가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담배와 한 잔의 위스키가 유일한 낙이었던 '미소'. 그런 그에게 날아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담뱃값 인상. 여기에 방값까지 오르게 되는 사면초가에서 미소의 선택은 바로 집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자신과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친구들의 집을 찾게 되죠.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서 미소(이솜 분)는 친구의 집을 찾을 때마다 달걀 한 판을 들고 옵니다. 일종의 '방세'죠. 친구들도 역시 힘이 듭니다. 이직을 위해 링거액까지 맞으며 일해야하고, 음식 솜씨 때문에 시댁 식구들에게 무시당하며, 여전히 부모에게 얹혀살아야 하고, 대출금에 허덕이며, 부자 남편을 만났지만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삶이 이들의 삶입니다.

<소공녀>의 미소(이솜 분)는 친구집에 올 때마다 달걀 한 판을 가지고 옵니다. 그 달걀이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집니다.
 <소공녀>의 미소(이솜 분)는 친구집에 올 때마다 달걀 한 판을 가지고 옵니다. 그 달걀이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집니다.
ⓒ 광화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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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미소는 달걀을 보냅니다. 반찬 솜씨 때문에 타박받는 친구에게 달걀 장조림을 만들어주고, 외톨이로 살려하는 친구에게는 달걀말이를 해 줍니다. 달걀은 '방세'의 개념에서 '구원'의 개념으로 승격하게 되죠. 그렇게 달걀 한 판의 사랑을 남기고 미소는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연정의 매개체로, 아쉬움의 매개체로, 구원의 매개체로 쓰여졌던 달걀. 고급과 보통을 왔다갔다한,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의 추억에 더 남아있는 달걀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여기서 글을 맺어야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언부언, 글이 엄청 길어질 수 있으니까요.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달걀이 '매개체'가 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인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달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태백산맥, #소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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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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