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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년 만에 아내의 낯선 모습을 발견했다. 어느 날 아내의 돈 세는 모습을 보다 깜짝 놀랐다. 아내는 분명 그동안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도 썼다. 당연히 오른손잡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왼손으로 돈을 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어라? 여보는 돈을 왼손으로 세네?"
"응. 나는 돈만 왼손으로 세요. 그냥 자연스럽게 돈은 왼손으로 세는 게 편하더라고요."
"오, 신기하네. 돈을 왼손으로 세면 잘 산다고 하던데."
"근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요? 엄마는 왼손잡이인데 돈만 오른손으로 세요."

우리는 크게 웃었다. 그런데 과연 '돈을 왼손으로 세면 잘 산다'라는 말이 사실일까? 데이비드 올먼은 그의 저서 <호모레프트, 왼손잡이가 세상을 바꾼다>에서 왼손잡이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통계가 사실이라고 밝혔다. 왼손잡이는 '우뇌형 사고'에 능해 타인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오른손잡이로 불편함 없이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왼손잡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세상은 왼손잡이에게 상당히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컴퓨터의 마우스, 지하철 개찰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글씨 방향, 오른손잡이를 위해 제작된 현악기 등 헤아릴 수 없다.

  왼손잡이 소년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어느 손이면 어떤가. 듣는 사람에게는 똑같다. 비록 사진이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다.
 왼손잡이 소년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어느 손이면 어떤가. 듣는 사람에게는 똑같다. 비록 사진이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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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자율배식을 하는 구내식당이라 가장 앞에 줄 서있던 나는 음식이 담긴 식판을 들고 빈 테이블을 찾았다. 나는 뒷사람을 생각해 가장 구석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동료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는 자신이 왼손잡이라 식사할 때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왼쪽 가장자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의 배려심에 한 번, 왼손잡이의 고충에 한 번 더 놀랐었다.

한국갤럽의 설문 결과 우리나라의 93%가 오른손잡이였다. 반면 단 5%만 왼손잡이로 나타났다. 전 세계의 왼손잡이는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오른쪽이 올바른 쪽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다수인 오른손잡이를 정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옳은 쪽'이라는 의미를 담은 '오른쪽'이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이런 인식은 영어 단어 'Right'에서도 드러난다. Right는 '옳다'와 '오른쪽'의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왼쪽'이란 단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왼쪽은 '그르다'의 옛말인 '외다'에서 파생되었다. '옳은(오른) 쪽'의 반대말로 '그른(왼) 쪽'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어 단어 'Left'도 '쓸모없다'라는 뜻인 'Lyft'에서 파생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른손잡이가 절대적인 기득권임을 알 수 있다.

아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인도 여행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인도'하면 많은 인구와 힌두교, 불교와 성자를 비롯해 카레, 게임 속 캐릭터인 '달심'까지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진짜 오른손으로 밥 먹고 왼손으로 밑을 닦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아내는 나의 원초적인 질문에 웃으며 그런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지 식사 문화로 인한 이질감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신이 뉴델리로 갔기 때문에 현대화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시골에 가면 아직도 손을 쓰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글쎄요. 갠지스강도 가보고 다른 곳도 가봤었는데 손으로 밥 먹는 데는 없던데요. 길거리에는 소가 많아 신기했고 날씨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웠어요."


우리는 모두 손으로 먹는다

  인도의 갠지스강 풍경
 인도의 갠지스강 풍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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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본 걸 못 봤다고 할 리도 없기에 인도에 대한 호기심은 이쯤에서 접어야 했다. 그러다 한 매체에서 이광수 교수의 인도 유학 경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당연코 그 사람들은 왜 손으로 밥을 먹고 손으로 밑을 닦느냐는 것이었다"라고 회고하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많은 동지들을 얻은 듯 반가운 마음으로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그는 무한 반복되는 우문을 한 마디 현답으로 무찔렀다고 했다.

"너는 상추쌈을 숟가락 젓가락으로 먹냐? 손으로 안 먹고? 또 너는 똥을 발로 닦냐? 손으로 안 닦고? 네가 화장지를 손으로 사용해 닦듯 그 사람들도 물을 이용해 손으로 닦는 거란 말이다."

이어서 이광수 교수는 "인도인 역시 오른쪽이 바른쪽이라는 인식이 있어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으로 밑을 닦는다"라며 "어떤 사람이 왼손으로 돈을 주면 안 받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왼손을 써서 밥을 먹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 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 패닉의 <왼손잡이> 가사 중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다. 예수는 신과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친절을 베푸는 자들을 비판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왼손이 앞 뒤 없이 이 구절만 들었다면 많이 서운해하지 않았을까?

오른쪽만 옳은 쪽이 아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정의 구현을 위해 올바르게 나아가는 쪽이 옳은 것이다. 양 손으로 따스하게 사회적 약자를 어루만지고 양 손 모아 뜨겁게 기도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감이 진정 올바른 길이다. 예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살짝 표현을 바꿔보면 어떨까?

"오른손과 왼손이 더불어 더욱 선한 일에 힘쓰라!"

  양 손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 손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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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 주위에는 '사회적 왼손잡이'가 많다. 소수라는 이유로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약자라는 이유로 소외와 무시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그들을 불편한 존재로 여긴다. 편리함을 해치는 장애물로 여긴다. 비열한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다. 나도 분명 알게 모르게 그 이기심에 일조했다. 깊이 반성한다.

불편하다고 해서 그른 것이 아니며 편리하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다. 숨고 싶은 뙤약볕 아래 과일은 단내를 물씬 풍긴다. 피하고 싶은 태풍은 바닷물을 순환시켜 새 생명을 공급한다. 우리는 불편한 만큼 성숙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단내를 풍기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정치인들이 욕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편법으로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 탈세하며, 사리사욕만 채우기 때문 아닌가. 자기들 편한 길만 찾아 편법에 편승하기 때문 아닌가.

편리함만 추구하다 단 한 치도 자라지 못한 추악한 늙은이들을 볼 수 있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은 삶으로 말한다. 불편하다고 해서 그른 것이 아니며 편리하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태그:#왼손잡이, #어른의삶, #오른손잡이, #소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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