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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상으로 매년 공공서비스, 탐사보도, 해설, 속보, 사진 등 14개 언론 부문에서 탁월한(distinguished) 보도에 수여하는 상이다. 2014년 퓰리처상의 대상 격인 공공서비스 부문 수상자로는 미국 정부의 도·감청 실태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WP)>와 영국 <가디언>이 선정되었다. 두 신문은 미국 정부가 전자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을 통해 수백만 명의 전화통화 내역과 e메일 정보를 수집한 실태를 공개해 국익보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언론 본연에 충실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처럼 정치 권력의 남용과 사회적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기능을 가리켜 파수견(watchdog)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퓰리처상의 창시자인 저널리스트 조지 퓰리처는 언론의 기능을 "다리 위에서 국가라는 배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즉, 올바른 언론이란 권력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알게 모르게 부정부패를 키워가고 있지는 않는지 지켜보고 폭로하는 파수견, 감시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동시에 언론에게 부여된 표현의 자유를 의미한다.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만 하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헌법에 언론의 자유를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서 의회가 언론을 억압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언론 관련 규제가 최소한으로 제한되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여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17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80개 국가 중 63위를 차지하였으며, 또 다른 국제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언론자유도 조사에서 대한민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30위를 기록해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됐다. 이들은 대표적인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형사상 명예훼손죄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 과정을 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현행 형법은 허위사실은 물론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여, 최대 2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인정될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판단은 법원의 영역이기에 다른 국가들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사실 보도에 앞서 언론이 자기 검열하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반국가활동을 규제하여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북한과 관계에 대한 공공토론을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가 이를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감시함으로써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폐지된다고 하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이로 인해 언론의 파수견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차원의 이유 이외에도 분명히 언론의 보도 경향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보도에 있어서 언론은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 보도하기보다는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인물 중심, 이미지 중심의 보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특히 선거에 있어서 후보들의 공약, 정책, 도덕성 등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사소한 일이나 피상적인 이미지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들의 아들, 딸의 미모가 계속하여 기사화되어 '국민 사위', '국민 며느리'라는 애칭을 얻고 국민들이 이에 현혹된 것도 이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 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안줏거리를 던져 주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대사들을 단순히 웃음거리로만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이미 몸소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사실 언론은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파수견이라기보다는 권력에 아부하는 애완견에 더 가까웠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을 계기로 이제서야 애완견에서 벗어나 파수견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언론은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독자적인 인식과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감정과 사리사욕이 아닌 진정성 어린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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