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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부터 사자. 밥 해 먹자."

짐을 풀기도 전에 남편은 성화다. 한국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집밥이 그리운가 보다. 밥하고 청소하는 집안일에서 벗어났나 했는데 또 그 노릇을 해야 하나. 잠시 짜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밥을 먹고 싶었다. 고추장을 한 숟갈 떠 넣고 밥을 비벼 푹푹 떠먹고 싶었다.

달랏에 온 지 4일째, 드디어 집을 얻어 이사했다. 며칠간 지낸 호텔은 깨끗하고 편리했지만 갑갑했다. 더구나 들척지근한 낯선 음식만 먹었더니 우리나라 밥 생각이 굴뚝같이 났다. 고추장 한 숟갈 떠 넣고 밥을 비벼먹었으면 이 텁텁함이 싹 씻겨 내려갈 것 같았다.
  
 쌀 1킬로그램에 베트남 돈으로 1만1천동에서 1만7천동 정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쌀 1킬로그램에 2천원 정도 합니다.
 쌀 1킬로그램에 베트남 돈으로 1만1천동에서 1만7천동 정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쌀 1킬로그램에 2천원 정도 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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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한국

고추장을 가져오길 잘했다. 여행을 떠날 때 이웃들은 밑반찬을 챙겨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고추장과 된장만 조금 담아왔다. 속이 니글거리고 텁텁할 때 된장국 끓여 한 모금 마시면 싹 씻겨 내려갈 것이다. 고추장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고 우리 집이 아니겠는가. 남편도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서둘러 배낭을 내려놓았다.

집 뒤에 골목시장이 있었다. 때마침 점심시간 무렵이라서 그랬는지 달랏대학교 학생일 듯해 보이는 여학생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자취생이리라. 그들에게서 먼 옛날의 내가 보였다.

중학교는 십 리 안에 있어 집에서 다닐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내내 자취를 했다. 방 한 칸 얻어서 하는 자취생활은 소꿉장난처럼 재미도 있었지만 내 손으로 밥 해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이었다. 석유곤로에 냄비 밥을 해서 엄마가 해준 김치와 밑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그때 그렇게 부모님을 떠난 우리는 그렇게 혼자의 길을 걸어갔다. 

 밥에 각종 야채를 넣고 고추장을 얹어 비빕니다. 고추장만 있으면 한국의 맛이 따라옵니다.
 밥에 각종 야채를 넣고 고추장을 얹어 비빕니다. 고추장만 있으면 한국의 맛이 따라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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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대학교 근처 골목시장의 저 청년들도 그 옛날의 나와 같은 자취생이 아닐까. 아끼고 아껴도 늘 돈이 모자랐던 그 옛날의 우리들처럼 그들의 주머니도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체구가 왜소해서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학생들이 장을 보는 그사이에 끼어 우리도 쌀을 사고 채소도 골랐다.
     
우리나라 밥맛을 내는 쌀을 사야 된다. 어떤 게 우리나라 쌀과 비슷한 밥맛을 낼까? 한국 식당 사장님은 가장 값이 싼 쌀이 우리 입에 맞다고 했는데,  값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1킬로그램에 11000동에서 17000동 정도니 우리 돈으로 치면 600원에서 9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쌀국수 한 그릇에 25000동에서 30000동 정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쌀값이 정말 싸다.  

쌀값이 헐한 것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마찬가지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쌀값은 비싸지 않다. 20킬로 한 포대에 대략 45000원 정도 하니 1킬로그램에 2,000원이 조금 넘는다. 작은 되로 쌀 한 되는 0.8킬로그램 정도라고 하니 한 됫박에 2000원도 안 한다는 소리다. 쌀 한 되로 밥을 하면 15공기 정도 나온다고 하던데, 그러면 밥 한 공기에 도대체 얼마 치인다는 말인가? 밥 한 공기에 200원도 채 안 된다니 정말 쌀값이 싸고도 싸구나.

농부의 딸이었던 나는 농산물의 가격에 조금은 민감하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도 이 돈이면 공깃밥이 20그릇도 넘는데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밥 한 그릇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갔는지도 생각한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면 저절로 공양게송을 읊게 된다.

 베트남 달랏대학교 근처 식당의 점심 반찬들. 손님이 선택한 반찬을 접시에 담은 밥 위에 얹어줍니다.
 베트남 달랏대학교 근처 식당의 점심 반찬들. 손님이 선택한 반찬을 접시에 담은 밥 위에 얹어줍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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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공양게송을 밥을 먹을 때마다 사람들이 읊는다면 아마도 음식물을 함부로 대하거나 남겨서 버리는 일은 없을 듯하다.


쌀을 조금 사고 오이며 배추 등등 우리 눈에 익숙한 채소들도 샀다. 비빔밥에는 당연히 달걀부침이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달걀도 몇 알 샀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부쳐야 되니 식용유도 한 병 샀다. 밥 한 번 해먹는데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구나. 이러니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냥 사먹고 마는가 보다.

내 몸이 기억하는 내 나라의 

감자와 당근을 볶고 계란도 부쳤다. 양상추와 채 썬 오이를 밥 위에 얹고 그 위에 고추장까지 한 숟갈 올리고 보니 바로 한국이 찾아왔다. 된장국을 한술 떠서 입맛을 돋운 다음 우리는 맹렬하게 밥을 비벼 입이 터져라 비빔밥을 먹었다. 
  
내 몸이 기억하는 그 맛, 내 입이 찾는 그 맛은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나라의 맛이고 내 산천의 냄새이기도 하다. 모천을 찾아오는 연어의 회귀처럼 우리의 입맛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나를 내 나라 내 고향으로 데려가 버린다. 비빔밥은 우리를 한국으로 순간 이동시켜 주었다.

 낫짱(나트랑)의 시장 모습. 낫짱은 해안에 형성된 도시라 시장에 가면 갓 잡은 해산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낫짱(나트랑)의 시장 모습. 낫짱은 해안에 형성된 도시라 시장에 가면 갓 잡은 해산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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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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