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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자연이라는 한 권의 위대한 책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작품은 이미 인쇄된 책이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조적인 건축세계를 펼쳤다는 평을 받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년~1926년)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거기서 영감을 얻은 가우디에게 스승이 있었다면 오로지 자연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예술적인 정열로 독창적인 건축물들을 남겼습니다.

우리 일행은 안토니 가우디 최후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도착합니다. 한 예술가의 영혼이 투영된 거대한 작품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위용. 동쪽 탄생의 파사드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위용. 동쪽 탄생의 파사드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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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보고 걷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렇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그건 사람의 손이 아닌 신의 손으로 창조해낸 예술품이 내 앞에 있다는 착각이 들지 않을까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가 그의 나이 31세인 1883년에 설계하고, 건축을 담당하여 짓다 1926년 교통사고로 운명하는 바람에 미완에 그친 로마 가톨릭성당입니다. 가우디가 사망한 후 그의 혼을 이어받은 건축가들에 의해 지금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또는 성스러운 뜻이고,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합니다. 사그리마 파밀리아 성당은 예수, 마리아 그리고 요셉에게 바치는 성 가족성당인 것입니다.

옥수수 모양의 첨탑, 여기에 담긴 예술

가우디는 성 가족성당을 건축하면서 구조와 기능, 상징을 하나로 묶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는 후세 건축가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들. 지금도 건축 중임을 대형 크레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들. 지금도 건축 중임을 대형 크레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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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성당 앞,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첨탑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보, 첨탑에서 옥수수 모양이 연상된다는데, 좀 더 가까이 보니 정말 그러네! 자연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가우디의 건축세계는 첨탑에서도 나타난 것 같아요!"

아내가 첨탑을 올려보면서 책에서 본 이야기를 확인합니다. 첨탑은 십자가 아래가 마치 거대한 옥수수 모양을 하며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실제로 구멍이 뚫려 있는 첨탑은 종소리가 잘 울려 퍼지게 하는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인간의 작품은 신을 넘어설 수 없다' 하여 첨탑 최고의 높이를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보다 낮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자연보다 앞서가지 않으려는 그의 신념이 아닐까요?

첨탑은 3개 파사드에 4개씩 세워지면 모두 12개가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합니다. 12제자 첨탑 뒤에는 신약의 4복음서를 나타내는 4개의 탑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성 가족성당 파사드에서는 성서를 읽는 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3개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이를 각각 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라 합니다.

"자, 주목하세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성당 동쪽은 탄생의 파사드입니다. 가우디가 예수 탄생을 주제로 직접 제작한 거구요, 성서 속의 장면을 담고 있는 조각품들입니다. 파사드 조각품을 보면 마치 성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의 영광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점토로 빚는다고 해도 쉽지 않았을 조각품들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탄생의 파사드의 조각상들. 성서 속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탄생의 파사드의 조각상들. 성서 속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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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 중앙에는 아기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있고, 높이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예수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탄생의 파사드에서 가우디는 예수님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을 조각했습니다. 조각 속의 인물들을 보면 표정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가우디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조각상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탄생의 파사드에 담긴 수많은 조각품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 일행은 성당 서쪽, 수난의 파사드로 이동합니다. 여기는 예수 최후의 날과 죽음을 주제로 조각하였습니다.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죽은 이후, 모던니즘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에 의해 1976년 완성되었습니다. 

수난의 파사드.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조각상을 남겨 놓았습니다.
 수난의 파사드.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조각상을 남겨 놓았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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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파사드는 동쪽 파사드와 사뭇 다릅니다. 두 파사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 다른 건축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가우디가 섬세하고 자연에 가깝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수비라치는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것을 절묘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탄생의 파사드가 곡선적이라면 수난의 파사드는 직선의 느낌이 강합니다.

수난의 파사드에 나타난 조각상들.
 수난의 파사드에 나타난 조각상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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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파사드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을 묘사하였습니다.

"수비라치는 가우디에 대한 조각상 하나를 파사드에 남겼습니다. 저기 정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 조각상 있는 맨 왼쪽이 가우디의 상입니다."

가이드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자 가우디로 보이는 조각상이 보입니다. 수비라치는 수난의 파사드를 건축하면서 가우디를 성자로 여기며, 옆모습을 본 딴 조각상을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가우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비라치가 완성한 수난의 파사드가 공개되었을 때 비난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나신(裸身) 때문이었습니다. 전신이 노출된 예수님의 그림이나 조각은 나도 여기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성당 안에다 거대한 숲을 옮겨 놓았다

마치 숲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
 마치 숲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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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당 내부관람입니다. 넓고 볼 게 참 많습니다. 눈여겨 봐야할 곳은 그때그때 설명할 것이니 수신기로 잘 들으세요."

우리는 드디어 성당 내부 관람을 시작합니다. 성당에 들어서자 높은 천장과 수직으로 길게 상승하는 구조물, 창문을 투과해 들어오는 빛과 오색 빛으로 채색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습니다. 성당의 기둥과 천정은 거목이 늘어선 숲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 허공에 매달린 예수님의 상,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마치 태양처럼 빛나 보이지 않나요?"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 상.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 상.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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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천정 한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곳에서 나오는 금빛은 성령이 빛이 되어 예수님을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보이는 동물문양 장식, 기하학적인 천장 무늬, 그리고 천장으로 뻗은 거대한 기둥 등에서 나타난 곡선은 분명 가우디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신기 너머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설명이 들립니다.

"가우디는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성당의 경건함을 한층 고양시켰다고 합니다. 동쪽 푸른색은 희망과 탄생, 서쪽 붉은색은 죽음과 순교를 의미한다고 해요. 서쪽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순교 성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니셜 'A, KIM'이 새겨있습니다. 꼭 찾아보세요. 그리고 주기도문이 50개 언어로 되어있는 곳에선 '주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로 된 글씨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니셜도 순교 성인들의 이름 속에 새겨있습니다.
 우리나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니셜도 순교 성인들의 이름 속에 새겨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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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기도문 속의 우리 한글, '오늘 우리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구절을 찾았습니다.
 아내가 주기도문 속의 우리 한글, '오늘 우리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구절을 찾았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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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를 기리는 이니셜이 유서 깊은 성당에 새겨 있다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주기도문에 우리말로 된 것을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줄 지어 서있는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 지하에 있는 박물관과 승강기를 타고 성당 첨탑에 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영광의 파사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영광의 파사드.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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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성당의 주 출입구가 될 영광의 파사드는 지금 건축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가우디 사망 100년이 되는 2026년에 가로 150m, 세로 70m의 거대하고 웅장한 성당이 완공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170m의 중앙 돔과 함께 모두 완성될 것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수도사처럼 성당 건축에만 몰두한 안토니 가우디는 1926년 전차에 치이는 불의의 사고로 74세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사고 당시 허름한 옷차림의 가우디를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운명하며 마지막 한 말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었다 합니다. 완성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가 그토록 성당 건축에 몰두한 이유를 그의 깊은 신앙심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손가락을 꼽아봅니다.

"여보, 우리 2026년 이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지금처럼 건강하면 꼬옥! 맞죠?"


태그:#바르셀로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 #수비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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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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