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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기 아쉬워 거꾸로 걷는다
끝을 아는 내 발길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걷는다
돌아서기 아쉬워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걷는다
돌아서기 아쉬워 거꾸로 걷는다
- 어반 자카파 <거꾸로 걷는다> 노랫말 중에서


맨해튼 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내가 지금 바로 걷고 있는 건지 거꾸로 걷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에비뉴와 스트리트의 이름들이 내 머릿속에 있는 지도와 합쳐지지 않아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대로 걸어가면 록펠러 센터가 있다고 하니 맨해튼 허리를 가로 질러 걷는 셈이다.

맨해튼의 직교형 도로를 걷는데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건물이 나왔다. 거의 모든 건물들이 에비뉴와 스트리트가 만들어 놓은 네모난 블럭 안에 꼭 맞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내 앞을 가로막고 선 건물을 맞닥뜨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건물을 따라 빙그르르 돌면 괜히 방향을 잃을 것 같고 또 사람들이 우루루루 건물 안으로 들어가길래 쫄래쫄래 따라 들어갔다.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난 곳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었다. 맨해튼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곳이 바로 여기다. 실제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역이고 연간 1억 명이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도 왔겠지. '1억 명 중에 저도 한 명 추가해주세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손을 잡고 뛰어다녔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손을 잡고 뛰어다녔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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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여기서 만났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클레멘타인의 손을 잡고 이리 저리 달리던 조엘이 저 아래에 있었다. 지금까지 이터널 선샤인을 몇 번쯤 보았을까. 열 손가락은 부족할 것 같고, 영화를 보았다는 기억도 점점 잊히고 있다.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그 마음과 도망칠 수 없는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그 마음이 막연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떠오르면 마음이 아픈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억제하여 참는 것이 힘들어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해리(Dissociation)'라고 한다.

혼자 주섬주섬 짐을 싸고 배낭을 둘러매고 '이번에는 어디를 가볼까...' 하는 마음도 결국은 도망가려는 것이 아닐까. 작가 김형경은 <사람 풍경>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는 자신의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인 방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수업 준비를 하며 읽었던 그 문장이 자꾸 생선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있었는데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 눈앞에 나타나니 갑자기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거대한 인파를 앞에 두고 갑자기 오래된 우물의 뚜껑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얼른 다시 걷는 것이 좋겠다.

터미널에서 록펠러 센터까지는 다섯 블럭인데 그 사이에 또 방향을 잃고 ㄹ자로 길을 걸었다. 사실 지도를 보면 맨해튼에서 길을 헤맨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지만, 여행자가 되어서 직선으로 뻗은 그 길을 걷다보면 자꾸 여기저기 눈이 팔려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블럭을 따라 돌게 된다.

록펠러 센터를 가려고 했지만 눈 앞에 버클리 대학교가 있었고, 북쪽으로 가야 했지만 남쪽에 뉴욕 공립 도서관이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이번에는 길가 쇼윈도에서 마크 로스코를 만났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과 마크 로스코 그리고 파티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과 마크 로스코 그리고 파티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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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목적지로 정한 또 다른 이유가 마크 로스코 때문이었다.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의 그 거대한 색면을 모니터 앞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을 가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길가의 쇼윈도에 마크 로스코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내가 걷는 길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이었던 것이다. 그저 인쇄된 거대한 광고물을 본 것 뿐인데 마치 동네 친구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뉴욕에 오기 전에 너무 많이 보고 또 읽어서 마크 로스코가 무덤에서 일어나면 하이 파이브를 할만큼 친해진 것 같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로스코가 나온다는 건가. 누군가는 이런 그림을 거실에 걸어 놓고 매일 보고 싶어하나보다. 물론 거래할 때마다 생기는 금전적 이익도 어마어마하겠지. 마침 크리스티 경매장 2층에는 파티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홀 안을 오가고 있었다.

나는 책으로만 읽었던 찰스 사치 같은 콜렉터들이 저렇게 모여서 파티를 하고 예술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일까? 뉴욕이라는 도시가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면서 동시에 영화 속을 걷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리창 속에 걸린 인쇄된 마크 로스코를 보며 들떠 있는 나와 그 위에서 샴페인을 부딪히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위치에 공존하고 있는 부조리극 같았다.

록펠러 센터는 크리스티 경매장 맞은 편에 있었다. 록펠러 센터를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이유도 그림 때문인데, 그림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있던 자리가 보고 싶다는 이상한 이유였다. 디에고 리베라가 록펠러 재단을 위해 그렸던 '교차로에 선 남자' 벽화는 지워졌지만 어떤 그림이 있었는지는 멕시코에 '우주를 지배하는 인간'이란 제목의 같은 벽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록펠러 재단의 돈을 받아 벽화를 그리면서 레닌을 그려 넣은 디에고 리베라의 넘치는 기개가 있던 그 자리가 보고 싶었다. 당시 뉴욕 예술계는 이 벽화 하나 때문에 난리 법석이었고 디에로 리베라를 지지했던 사람 중에는 마크 로스코도 있었다. 로스코 역시 이후에 포시즌 벽화 사건 때문에 비슷한 난리 법석을 치렀던 것을 보면 이들의 마음과 신념은 평생 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록펠러 센터의 컴캐스트 빌딩 로비에 있는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American Progress'
 록펠러 센터의 컴캐스트 빌딩 로비에 있는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America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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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센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벽화들
 록펠러 센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벽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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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센터 19개 빌딩군 가운데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그려졌던 건물은 그 중 가장 높은 컴캐스트 빌딩이다. 록펠러 센터랑 같은 이름으로 사용되니까 굳이 따로 알아놓을 필요는 없다.

디에로 리베라의 그림이 지워진 자리에 있는 벽화는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American Progress'다. 레닌이 있던 자리에 호세 마리아 세르트는 링컨을 그려 놓았다. 록펠러 재단과 미국의 발전은 맥도널드 세트 메뉴처럼 잘 어울린다. 천정의 그림은 'Time'이다. 위대한 나라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걸음을 걸었는지 위대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 잘 어울려서일까? 록펠러 센터의 벽화를 검색하면 호세 마리아 세르트 보다 디에고 리베라가 훨씬 많이 나온다. 이 자리에 리베라의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1930년대에는 대중의 비난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리베라의 벽화가 남아있었다면 록펠러에 대한 평가가 지금과는 또 다른 의미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컴캐스트 빌딩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호세 마리아 세르트의 벽화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위에서 내려다보며 윽박지르는 벽화에 금방 염증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록펠러 센터 컴캐스트 빌딩과 서머 가든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
 록펠러 센터 컴캐스트 빌딩과 서머 가든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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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센터 컴캐스트 빌딩 앞에 있는 서머 가든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을 관광객들이 둘러 싸고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사진 찍고 있었다. 유명하고 예쁜 곳이긴 하지만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서 관광객들에게 둘러 싸여 인증샷의 배경이 된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 역시 그들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이야기를 등뒤에 달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가족 여행을 온 사람들, 지금 막 처음 만난 남자와 여자, 갖고 싶은 장난감을 앞에 두고도 엄마에게 사달라고 떼쓰지 않는 아이까지.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레고(LEGO) 매장이 있었다. 알록달록 레고 블럭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형상 속에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스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는 제품도 있었지만 특정 색깔의 블럭들을 컵 단위로 판매하고 있기도 했다.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장면이었는데 레고가 생활 속에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판매 방식이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동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레고를 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 아이는 주변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동도 없이 움직이는 레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출 시간을 길게 두고 사진을 찍으면 뭔가 작품 사진이 나올 장면 같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그 아이의 뒷모습이 슬퍼보였다.

레고 매장에서 블럭을 색깔별로 그릇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
 레고 매장에서 블럭을 색깔별로 그릇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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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것이 분명한 아이의 뒷모습이 내게는 쓸쓸해 보였다.
 행복할 것이 분명한 아이의 뒷모습이 내게는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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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쌩쌩 움직이는 레고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실제로 슬프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레고 블럭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뉴욕을 걷고 있는 내 모습 같다는 마음이 들었고, 내 마음에 있는 쓸쓸한 마음이 아이의 뒷모습에 투사되었을 것이다.

사실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를 천천히 걷는 마음이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았다. 갈 곳을 몰라 이리저리 걷는 내 모습이 초대 받지 못한 파티에 억지를 부려 겨우 들어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혼자였기 때문인지, 주머니 사정 때문인지, 낯섦이 주는 위화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또 걷는 것이다. 뚜껑을 열어 우물 안을 바라보더라도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 것. 혼자 타박타박 걸으며 여행할 때 명심해야 할 주의사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타박타박아홉걸음세계일주, #배낭여행,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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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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