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24년 만에,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월드컵 8강 무대를 밟는다.

야네 안데르손 감독이 이끄는 스웨덴 축구 대표팀은 3일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에밀 포르스베리(RB라이프치히)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 이후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서 유럽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던 스웨덴은 12년 만에 나선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24년 만에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7월 3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위스와 스웨덴의 경기. 스위스의 발론 베라미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와 공을 다투고 있다.

7월 3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위스와 스웨덴의 경기. 스위스의 발론 베라미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와 공을 다투고 있다. ⓒ AP/연합뉴스


스웨덴은 지난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이자 FIFA랭킹 1위 독일, 그리고 6연속 16강에 빛나는 멕시코와 한 조에 편성됐다. 당시만 해도 스웨덴은 8강은커녕 조별리그 통과도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까지 4경기 중 3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는 탄탄한 수비와 역습 축구를 앞세워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라르손-융베리-즐라탄도 이루지 못한 '월드컵 8강'의 벽

스웨덴은 195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우승 이후 1974년 서독 월드컵(8강)을 제외하면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던 1994년 스웨덴은 미국 월드컵에서 마르틴 달린과 파트리크 안데르손이라는 걸출한 스타 듀오를 앞세워 4강에 오르는 호성적을 올렸다. 비록 스웨덴은 브라질과의 준결승에서 호마리우에게 헤더골을 허용하며 패했지만 3-4위전에서 또 다른 돌풍의 팀 불가리아를 4-0으로 꺾는 저력을 과시했다.

비록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웨덴 축구에는 달린과 안데르손에 못지 않은 강력한 콤비가 등장했다. 유럽 대항전에서만 통산 106경기에서 59골을 기록한 헨릭 라르손과 아스날의 왕조 시절을 이끈 주역 프레드리크 융베리였다. 라르손과 융베리는 2000년대 스웨덴 대표팀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 유로 2004 8강을 이끌었다.

라르손과 융베리 콤비의 자리를 물려 받은 스웨덴의 슈퍼스타는 '축구계의 이단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LA갤럭시)였다. 즐라탄은 네덜란드의 아약스 시절부터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인터밀란, AC밀란,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본인이 속한 모든 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긴 선수로 유명하다. 물론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넣은 62골도 스웨덴의 역대 A매치 최다골 기록이다.

 지난 14일(한국 시각), 유로 2016 조별리그 아일랜드전에 출전한 스웨덴 축구 대표팀의 주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조별리그 E조에 속한 스웨덴은 1무 2패(승점 1점)를 기록하며 조 꼴찌로 탈락했다. 즐라탄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 2016년 6월 14일(한국 시각), 유로 2016 조별리그 아일랜드전에 출전한 스웨덴 축구 대표팀의 주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조별리그 E조에 속한 스웨덴은 1무 2패(승점 1점)를 기록하며 조 꼴찌로 탈락했다. 당시 즐라탄은 이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 연합뉴스/EPA


하지만 즐라탄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하면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썩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2 한일 월드컵부터 교체 멤버로 월드컵 무대에 등장했던 즐라탄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부진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스웨덴이 포르투갈,덴마크와 한 조에 묶이면서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하며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 크리스티안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포르투갈이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폴란드처럼 즐라탄의 스웨덴 역시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를 보좌할 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했다. 결국 원맨팀의 한계를 느낀 즐라탄은 유로2016 조별리그 탈락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각국 언론들은 즐라탄을 이을 만한 구심점이 없었던 스웨덴 축구에 꽤 긴 어둠의 터널이 찾아올 거라고 입은 모았다.

한국-멕시코-스위스를 차례로 침몰시킨 스웨덴의 역습축구

스웨덴은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네덜란드 같은 강호들과 한조에 묶였다. 예선탈락이 유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스웨덴은 6승 1무 3패의 호성적으로 네덜란드를 골득실차로 누르고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월드컵 통산 4회 우승에 빛나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 하지만 스웨덴은 끈질긴 수비축구로 이탈리아를 60년 만에 예선탈락 시키며 12년 만에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스웨덴의 안데르손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대표팀에 재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즐라탄을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스웨덴은 대회 전 독일과 멕시코는 물론 F조 최약체로 꼽히는 한국에게도 1승 제물로 지목되는 굴욕 아닌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스웨덴은 본인들의 장기인 뛰어난 수비 조직력과 역습 축구를 앞세워 1994년 미국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2차전, 독일과 스웨덴의 경기 모습. 독일의 토마스 뮐러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 선수를 상대로 공을 몰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2차전, 독일과 스웨덴의 경기 모습. 독일의 토마스 뮐러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 선수를 상대로 공을 몰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별리그 첫 경기 한국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할 때만 해도 스웨덴의 선전보다 한국의 졸전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았다. 한 명이 퇴장 당한 독일을 상대로 역전패를 당했을 땐 스웨덴 축구의 한계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앞선 두 경기에서 연승을 기록한 멕시코를 상대로 후반에만 세 골을 몰아치며 3-0 대승을 거뒀다. 조 1위의 기쁨은 물론 16강에서 강호 브라질을 피하는 수확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스웨덴은 스위스와의 16강전을 통해 자신들이 F조를 1위로 통과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스웨덴은 90분 동안 스위스에게 18개의 슈팅을 허용하고 볼 점유율도 37%-63%로 크게 뒤졌지만 빅토르 렌델로프(맨유)와 안드레아스 그란크비스트(크라스노다르)를 중심으로 촘촘한 수비를 펼치며 스위스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 20분 포르스베리의 슛이 스위스 수비에 맞고 굴절되면서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물론 멕시코전 3-0 승리도 있었지만 스웨덴은 이번 대회 4경기에서 2실점만을 기록하는 수비 위주의 축구를 펼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은 한국과의 첫 경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상대에게 볼 점유율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바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라르손-융베리 시대에도, 즐라탄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 월드컵 8강의 꿈을 달성했다. 다양한 색깔의 축구가 공존하기에 축구팬들은 월드컵에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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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웨덴 스위스 에밀 포르스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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