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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보고 있는 4살 윤호와 어준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보고 있는 4살 윤호와 어준이.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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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집에서 뭉그적거렸다. 퇴직을 한 그를 위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지만 일 년도 안 되어서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시세끼 밥을 신경 써야 했고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일이 아닌 일들도 남편이 합류하니 일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 지내다보니 저녁이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를 낭비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왜 아무것도 한 게 없을까마는 눈에 보이게 똑 부러지게 한 게 없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퇴직, 내겐 새 일의 시작
 
남편이 직장에 다녔던 지난 삼십삼 년간은 우리 둘 모두 각자의 생활이 있었다. 남편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가 퇴근할 때까지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그랬는데 그의 퇴직으로 오랜 생활 패턴을 바꾸어야 했다.

출근에 대한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대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궁리해야 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일이었고, 남편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나는 나태해졌고 별 의미 없이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꿈꾸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렸고 해야 할 일들도 자꾸 뒤로 미루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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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는 간절하게 원하면 지금 당장 움직이라고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행동하는 사람만이 배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이 말을 봤을 때 '과연' 하면서 무릎을 쳤다. 가만히 있다고 주어지지 않는다. 바라고 원하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배움의 기회가 온다. 그래서 나는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노트북과 읽을 책 한 권을 챙겨서 집 근처에 있는 '자람도서관'으로 갔다.

간절히 원하면 지금 움직여야

자람도서관은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사설도서관이다. 도서관을 만들어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꿈꾸던 한 사람의 소망이 결실을 보아 2012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오가기에 편하도록 학교 근처의 건물을 빌려 도서관을 열었다. 그게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시골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지만 하는 일은 많다. 그곳은 인근 초중등학생들의 쉼터이자 공부방이기도 하고 어른들의 성장과 연대를 돕는 교육터이다.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여럿 운영되고 있고 어른들의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책을 통한 놀이와 교육이 일상인 곳, 바로 자람도서관이다. 그것은 자원 봉사자들과 후원회원들의 관심과 헌신이 있어 가능했다.

누나가 세 명이나 있는 어준이, 누나를 닮고 싶었는지 치마를 입고 춤을 춘다.
 누나가 세 명이나 있는 어준이, 누나를 닮고 싶었는지 치마를 입고 춤을 춘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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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곳인데도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재고 또 재어가며 해야 한다. 십시일반으로 후원해주는 돈으로 운영비를 대지만 주머니는 늘 가볍기만 하다.

봄가을에는 돈 들 일이 그래도 많지 않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냉난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비가 꽤 든다. 그럴 때는 바자회나 영화 모임 등의 각종 행사를 기획해서 연다. 그리고 주먹밥이나 토스트, 음료 등을 팔아 돈을 만든다.

쉼터이자 공부방인 도서관, 소통과 연대의 장소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자원 봉사자 두 분이 반겨준다. 점심 때가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하는데도 벌써 주방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엔 수제비가 제격이라며, 반죽을 많이 했으니 같이 먹자고 권했다.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의논중인 도서관 운영진들.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의논중인 도서관 운영진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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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짜리 두 친구가 놀고 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다. 발레복처럼 생긴 치마를 입은 꼬마가 있다. 제 누나들이 입던 옷을 꺼내 입고 온 '어준'이는 음악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그러더니 팔을 활짝 벌려 뱅글뱅글 돌기까지 한다. 팽그르르 돌 때마다 펴지는 치마가 신기하고 좋은지 활짝 웃는다. 영화 속의 '빌리 엘리어트'가 여기 강화도에도 자라고 있었구나.

도서관은 새로운 활력을 얻는 곳이기도

몸을 움직여 행동하기를 잘 했다. 집에서 뭉그적댔더라면 강화의 '빌리 엘리어트'를 어찌 만날 수 있었을까. 자람도서관은 일상의 무료함에 젖어가던 내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가져갔던 책은 얼마 읽지 못했지만 대신 아이들의 웃음과 춤을 읽었던 하루였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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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람도서관, #빌리 엘리어트, #강화도자람도서관,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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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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