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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조심'하란 이야기를 언제 처음 들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던 때부터 밤길을 걷는 것은 늘 두려움과 불안을 억눌러야 하는 일이었다.
 '밤길 조심'하란 이야기를 언제 처음 들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던 때부터 밤길을 걷는 것은 늘 두려움과 불안을 억눌러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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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조심'하란 이야기를 언제 처음 들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던 때부터 밤길을 걷는 것은 늘 두려움과 불안을 억눌러야 하는 일이었다. 반려견과 밤 산책을 하다가도 반려견이 허공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빨리 가자." 재촉하며 서두르는 내 발걸음에는 뭔가 무서운 일을 피하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하지만은 않은 어떤 감각이 존재한다.

최근 난민과 관련해서 그들이 밤이 되면 동네에, 도시에 무리 지어 다니며 여성들에게, 아이들에게 해를 가할 것이니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밤'에 등장하여 나의 딸들과 나 자신을 해할 것이라는 그 서사 속에서 난민들은 여성이 다니는 길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공간을 장악한다. 그 이미지 속에서 여성은 '선량한 도시민'의 위치에, 그리고 난민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위치에 상정된다.

그런데 이 서사에는 중요한 논증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난민은 자유롭게 도시를 활주할 수 있는 존재들인가'라는 부분이다. '밤이 되면 난민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여성들을 강간한다'는 이 서사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이민출입국이고, 그 이후에도 언제든 본국으로 강제송환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 심사를 받는 6개월간 매달 최소로 지급되는 돈(43만 원)에 의지한 채 일 할 자격도 없이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2017년 전체 난민 신청자 1만 3295명 중 3.2%인 436명만이 생계비를 받았다는 것(BBC코리아, 2018.06.28)과 같은 부분들을 논의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16년도 넘게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 채 난민신청자로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허핑턴포스트, 2018.06.21), 우여곡절 끝에 1.5%라는 극히 저조한 확률을 뚫고(2017년 기준, JTBC NEWS, 2018.06.19) 난민 지위를 획득하더라도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출입국의 외국인지원센터에 거주하며 한국 내 체류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마저도 난민들의 정착을 위한 지원센터가 '혐오시설'로 낙인찍혀져 있기 때문에 건설이 용이하지 않은(한겨레21, 2013. 10.09) 현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번 예멘 난민 신청자의 경우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들과 달리 생계비를 받은 난민신청자는 6월 28일 기준 한 명도 없었다(BBC 코리아, 2018.06.28). 법무부는 제한된 예산을 이유로 내세우며 난민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대신 오히려 한국인이 꺼리는 일인 어업과 양식 업종에 난민을 취업하게 하는 것으로 미봉책을 세웠다. 그러나 어업에 취업한 지 일주일 만에 돌아온 난민 중 한 명은 자신이 이전에 어선을 타본 경험이 없었으며, 하루에 7번에 이르는 뱃멀미에 가만히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BBC코리아, 2018.06.28).

이처럼 제대로 된 난민 정책의 부재 속에서 정부는 내국인들이 꺼리는 업종에 난민들을 투입해 땜빵하고, 여론이 난민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으니 예멘 난민이 제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출도 제한'을 하고, 더 나아가 예멘인들의 제주 무비자 입국을 금지했다(이는 난민의 이동의 자유를 위배하는 조치이다). 내국인이 꺼리는 작업실들, 어선과 양식장, 혹은 공장기숙사와 같은 한정된 공간에 할당되는 그들에게, 그리고 언제든 정부의 지침이라는 이름 하에 이동권을 제약당할 수 있는 그들에게 도시와 동네를 '무리지어 다닐' 권력이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것일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래, 예멘 난민들이 온 국토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이 제주도에 머물게 된 건 확실하니 일을 끝내고 제주도 시가지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출도제한이 끝나면 육지로 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벌써 출도제한을 없애 달라고 소송을 넣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우리는 도시를 혼란으로부터 구하고 우리 여성과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난민이 돌아다니는 걸 막아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정말 출도제한이 끝나고 사회로 나오면 난민들은 어디든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될까?

우려와 달리 한국은 그렇게 타자화된 존재에게 쉽게 자유로운 이동권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든 시설로 끌려갈 수 있는 수용시설의 섬들(carceral archipelagos) 사이에서 살아가게 한다.

낙인찍히고 추방당한 사람들

가혹한 폭력에 시달렸던 형제복지원 원생들.
 가혹한 폭력에 시달렸던 형제복지원 원생들.
ⓒ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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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한에는 수많은 보육원과 고아원, 복지시설이 지어졌다. 그 명분은 도시에 신원도 확인되지 않는 위험한 사람들, 즉 '부랑자'가 떠돌아다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명분 속에서 지어진 시설 중 하나가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밝혀진 부산의 형제복지원이었다. 그리고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이후 부산에는 한동안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사람들 때문에 도시치안이 위협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경향신문, 1988.07.30).

마치 부산의 치안이 이들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뉘앙스였지만 많은 경우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은 도시에 발을 디뎌보기도 전에 또 다른 보건시설이나 요양시설로 옮겨졌다. 그도 아니면 돈도 거의 받지 못 하는 농사일이나 공장일에 묶여 몇 년을 일하고도 돈을 떼이고, '형제복지원생'이었다는 낙인에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 하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혹은 폭력의 트라우마 속에서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역시 인권 유린으로 문제가 되었던 선감학원 생존자의 이야기가 보여주듯(비마이너, 2017.12.31), 수용시설에서 나오더라도 도시를 '자유롭게 무리 지어다니'기 보다 폭력과 죽음이 난무했던 그 공간에 길들여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수용시설이나 감옥 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부랑자'에 대한 서사만이 그러한가? '조현병'에 대한 서사를 한번 떠올려 보자. 종종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미친 가족'의 일탈적인 소행처럼 그려지곤 하는 '강제입원'은 사실 1995년 지정된 정신보건법을 통해 가능해진 '지극히 합법적인 행위'이다. 이 정신보건법은 1995년 제정된 이후 강제입원을 용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되어 왔고, 2017년 5월 30일, 강제입원과 관련하여 문제가 됐던 조항이 일부 개정된다.

개정될 당시 의료계와 일부 미디어는 장기 입원환자를 비롯한 조현병 환자들을 병원에서 나오게 하면 도시가 혼란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메디컬타임즈, 2017.09.22), 그 서사는 1969년, 보건사회부(현재의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대도시에 정신의료시설과 기기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하며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시민들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던 서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오염된 정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 속에서 '미친 사람'들을 가두는 복지/의료시설 건설은 정당성을 얻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장애인 복지 예산에서 두 번째로 많이 할당된 복지금은 활동보조비도, 지역 내 장애인 지원 비용도 아닌 시설 건설비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정신 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겹겹이 쌓여 정신요양소와 폐쇄병동은이 한국 땅에 끊임없이 건설되어 왔다. 발달장애인학교가 들어서면 장애인이 동네에 많아져 치안이 문제가 되고 '땅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 학군이 망쳐질 것이라는 생각, '통제할 수 없는 저능아'가 내 딸과 아들에게 해를 가할 것이라는 생각은 발달장애인을 도시로부터 격리하고 가두고 죽이는 시설을 짓는 정당성을 뒷받침해 왔다.

그렇게 시설을 짓는 토건 사업과 장애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재단들, 의료계가 돈을 벌 동안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은 병원에, 정신요양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리고 설사 시설에서 나오더라도 다시 시설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을 늘 가지고 산다. 정신장애인 중 어떤 이는 일상적으로 '화를 내는 것'조차 정신병의 징후로 여겨져 반복적으로 정신병원에 처박히고, 그곳에서 주입된 강도 높은 약들의 후유증 때문에 사회에 돌아와서도 거리를 걷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몸의 기능이 떨어져 가서 때로는 말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처럼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인 '부랑자'로, '정신병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시설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도시 어디든 마음대로 누빌 수 있는 권력이 자동적으로 생기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도시 내외에 존재하는 수용시설의 섬들 사이에서 언제든 다시 수용시설에 끌려갈 불안정한 삶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도시 공동체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우리의 도시'는 얼마나 배타적인가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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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그럼에도 인종과 종교, 문화가 다른 무슬림 난민은 '부랑자', '정신장애인'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1991년부터였다는 것, 그리고 근 30년이 되어가는 그 이주/이민의 역사 속에서도 한국은 내국인을 중심으로 인종화된 도시공간을 굳건히 유지해왔다는 것을 떠올려 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주/이민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서울의 홍대와 같은 지역에서 그들이 서울의 온갖 도심지역을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휩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이주노동자의 자리는 내국인들이 꺼리는 서울 근교의 공장기숙사와 같은 공간이었다, 마치 지금 제주도에서 난민들이 한국인이 꺼려하는 작업장에 배치되고 있듯이.

미국처럼 법적인 인종분리정책(racial segregation)은 없었지만, 우리는 '선량한 도시민'으로 우리의 위치를 상정하며 적극적으로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특정한 지역에 묶고 경계 지으며 살아왔다. 그 상상, 정작 그들의 발을 묶어왔던 우리가 '선량한 도시민'일 것이라는 상상. 사실 '우리의 도시'라는 그 말부터 우리는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도시에 난민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은, 도시에 경계가 없어지고 혼란이 도래할 것이라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은 지금 그 경계가 한국의 도시 공간에 너무나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청하고 싶다. '밤마다 무리 지어 다니는 무슬림 난민'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들을 쉽게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난민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그들을 어떻게 수용시설의 섬들 사이로 밀어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도시를 얼마나 더 배타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우리, 함께 생각해 보자고.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8.07.30, "부랑인 대책 없나", https://bit.ly/2MA9IG8
메디컬타임즈, 2017.09.22, "개정 정신보건법시행 4개월…폭탄 안고 사는 꼴", http://www.medicaltimes.com/News/1114018
비마이너, 2017.12.31, "불시착한 삶,독방을 나가다: 소년, 섬에 갇히다– 선감학원 피해자의 이야기⑦-2",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1736&thread=02r20
한겨레21, 2013.10.09, "혐오시설된 난민지원센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5506.html
허핑턴포스트, 2018.06.21, "16년째 난민신청…"고향 정치적 박해보다 더 상처"",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refugee_kr_5b2aef85e4b0040e273f5ff0
BBC 코리아, 2018.06.28, "제주 예멘: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의 현실", https://www.bbc.com/korean/news-44632261
JTBC NEWS, 2018.06.19, "[팩트체크] 예멘 난민신청자, 월 138만 원 지원받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6iqQ47HqavM


덧붙이는 글 | 필자 김현철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정치지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도시 내 타자화된 존재들, 수용시설의 계보, 도시 학살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없는 페미니즘'에 올라간 글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이다.



태그:#난민혐오, #여성주의지리학, #타자화 ,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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