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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 촉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서는 합헌, 대체 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 촉구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서는 합헌, 대체 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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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헌재는 1년 6개월 뒤인 2019년 12월 31일을 병역법의 개정 시한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담은 개정 병역법을 통과시킨다 해도,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과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한국처럼 분단과 냉전을 겪은 서독의 사례를 보면, 병역법 개정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전망을 피할 수 없다. 서독은 1949년 9월 21일 독일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수립됐다. 이 나라는 국가 수립 4개월 전인 5월 23일, 기본법(헌법)을 제정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했다. 기본법 제4조 3항은 이렇게 규정됐다.

"누구도 자기 양심에 반하여,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에 복무하도록 강요되지 않는다. 구체적 사항은 연방 법률로 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이다. 내용상으로는 훌륭하지만, 이것이 헌법 제1조라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하다. 국민 혹은 인간의 문제보다 국가의 문제를 더 우선시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제1장 총강(총론) 편에서 국가에 관한 개괄적 사항을 다룬 다음,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편에서 기본권이나 인권을 다룬다. 이에 비해 서독 기본법은 제1장에서부터 기본권을 다뤘다. 기본법 제1조 제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않는다'이다. 국가의 문제보다 인간의 문제를 우선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우리 헌법 총강에 들어간 사항은, 서독 기본법에서는 제2장 '연방 및 주' 편에 담겨 있다. 그리고 기본법 제1장 기본권 편에는 총 19개 조항이 있다. 그중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 제2조는 인격권 및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 제3조는 평등권이다. 그런 다음, 제4조 제3항에서 규정한 게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다. 이 같은 조문 배치는 서독 기본법이 인권을 얼마나 중시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는지 보여준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숨은 뜻

 제2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독일 군인들.
 제2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독일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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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언뜻 보면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을 파고들어가 보면, 사실은 인간 대 국가, 국민 대 국가의 문제와 더 깊이 관련돼 있다. 

왕조시대 국가들은 관할 지역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규정한 뒤 강제로 징세하고 징병했다. 왕실과 귀족의 이익을 위해 다수 백성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일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전쟁에 동원된 두 나라 민중들은 아무런 개인적 원한도 없이 오로지 각각의 지배층을 위해 무기를 들고 서로 싸워야 했다. 그러다 죽으면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사전에 의식화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1776년 미국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왕조체제에 대한 민중의 도전이 강해지면서, 징세뿐 아니라 징병에 대해서도 저항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런 속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확산됐다. 지배층을 위한 전쟁에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않겠다는 서민 대중의 각성의 표현이었다. 교통·통신 발달로 피지배 '인간'들의 단결이 원거리 차원에서 가능해지면서 이런 현상까지 나타나게 됐다.

인간의 힘이 국가를 능가할 정도라면 그냥 '병역거부'라고 했겠지만, 아직은 국가의 힘이 무서우므로 '양심적'이란 단서를 달아 병역거부자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는 피지배 민중이 그만큼 강해졌음을 반영하는 증표였다.

징병 거부가 '인간'의 강력화, 즉 민주주의와 관련된다는 점은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미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싹텄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동국대 법대 교수 시절에 쓴 '양심적 집총거부권 - 병역기피의 빌미인가 양심의 자유의 구성요소인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양심적 집총 거부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된 최초의 사례는 17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헌법이다. (중략) 이러한 입장은 1777년 버몬트주 헌법(제9조), 1776년 델라웨어주 헌법(제10조), 1784년 뉴햄프셔주 헌법(제13조) 등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2001년 발행한 <민주법학> 제20호 중

왕정체제 몰락과 민주주의 전파에 힘입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으로 인한 전쟁 혐오증 확산과 맞물려 유럽에서도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자극받은 영국 평화주의자의 투쟁의 결과, 1916년 유럽 최초의 대체복무법이 영국에서 제정된 이후 1920~30년대에 걸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최초의 법안이 의회에서 제정된다." - 위 논문 중

 디트리히 본 회퍼.
 디트리히 본 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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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기본법 제4조의 양심적 병역거부 조항은 이런 흐름과 궤를 맞추는 것이었다. 2009년에 <역사와 문화> 제17권 제17호에 실린 경희대 문수현 연구원의 논문 '전후 서독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에 따르면, 그런 세계적 흐름에 더해 히틀러의 악랄한 전쟁에 대한 혐오감, 군대도 민주화돼야 한다는 사회적 욕구, 히틀러 정권에 맞서 병역거부를 실천한 디트리히 본회퍼 루터교 목사나 여호와의 증인들을 대단한 사람들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기본법 제4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논문에 따르면, 승전국들에 대한 공포심도 한몫했다. 패전 뒤로 군대 해체를 겪은 서독 국민들을 상대로 승전국들이 강제징집을 실시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있었다. 그런 강제징집에 대비해 서독 국민들이 병역을 거부할 명분을 만들어두려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기본법에 규정한 측면도 있었다. 

[서독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를 방해한 여러 가지 방법

그런데 기본법에 양심적 거부를 규정해두는 게 문제의 종결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1949년 건국 당시 서독에는 군대가 없었다. 재무장이 허용된 것은 1956년이다. 이에 따라 징병을 위한 병역법이 제정되면서 논란이 점화됐다. 국가권력의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기본법 제4조를 무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기독교민주당)과 국방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소련의 위협 및 동독과의 긴장관계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의 축소를 주장했다. 기본법에서 인정한 병역거부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적용범위의 축소를 주장했던 것이다. 소련·동독과의 관계 외에 이들이 제시한 명분이 더 있었다.

"시민단체와 사민당의 경우 개인의 자유와 양심의 문제에 집중했던 반면, 국방부·기민련 등은 양심적 병역거부 조항의 악용 가능성, 형평성의 문제에만 천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 위 문수현의 논문 중에서

기본법에서 허용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두고 악용 가능성과 형평성까지 거론하면서 논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독이 분단과 냉전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법에서 양심적 거부를 인정했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법적으로 제도화되기는 힘들었다. 논란 끝에 1956년 병역법은 이렇게 규정됐다. 

"양심상의 이유로 국가 간의 모든 무기 사용에 반대하고, 무기를 갖고 전쟁에 복무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병역의무 대신, 연방군 밖에서 대체복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는 연방군 내에서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방식의 복무를 신청할 수 있었다."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조항이 병역법에 들어갔지만, 이 역시 논쟁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대체복무를 반대하거나 축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국방부와 기민당이 이런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사회적 논란이 쉽게 종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 및 법률 조문에도 양심상 병역거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국방부의 심사 단계에서 기각 판정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위 문수현의 논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오랫동안 전체 징병 대상자의 1% 이하에 머물렀던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다"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입법화된 지 20년이 넘은 1970년대까지도 '병역거부법 조항이 존재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거나 '대체복무는 10년 이상인 것으로 알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을 정도로 병역거부는 당시 사회에서 알려지지 않은 장에 속하였다. 이러한 무지 뒤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국방부가 병역거부자 단체에 대한 광고를 싣는 잡지의 경우, 공익광고를 할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도 하다."

대체복무 반대 세력은 양심적 병역거부 조항이 대중한테 알려지는 것을 방해했다. 또 대체복무 기간을 부풀려 선전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도록 유도했다. 위 논문에서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를 홍보하는 잡지사를 국방부가 차별하는 일도 있었다.

또 병역거부자를 심사 단계에서 떨어트릴 목적으로 신청자의 인상을 심사 항목에 넣는 일도 많았다. 위 논문에서는 "'솔직하고 선량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준다든가 혹은 반대로 '열정적이지 못한 성품' '그의 태도와 성품에 비추어볼 때'처럼 대단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들을" 근거로 신청자를 탈락시키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한다. '인상이 좋지 않은 걸로 봐서, 군대 가기 싫어 저럴 거'라는 식으로 기각하는 사례들도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논의, 이제 시작이다

 서독 군인들.
 서독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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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8세기 후반 이후로 세계사의 대세는 '민주주의의 확산'이다. 거기다가 1968년 유럽에서 발생한 자유주의적 68혁명의 열기가 확산되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는 대체복무 반대론이 서독에서 현저히 힘을 잃었다. 1977년에는,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심사 없이 신청만으로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법률이 나왔을 정도다.

"1977년 한 해 동안 신청만으로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법안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곧 위헌 판결을 받게 되었다. 결국 1984년부터는 국방부가 아니라 청소년·가족부 산하인 대체복무국이 신설되어 서류 심사만으로 대체복무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대체복무는 군 복무보다 1개월에서 많게는 6개월 정도 더 긴 기간으로 상정되어 있었지만, 2004년부터는 군 복무와 대체복무 모두 9개월로 조율되었다." - 문수현의 논문 중에서

이처럼 1949년 기본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1956년 병역법으로 대체복무를 인정한 서독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오랫동안 정착되지 못했다. 군 복무와 대체복무의 기간이 같아진 것은 동서독 분단이 극복된 지 14년이 지난 뒤였다. 분단 및 냉전 구조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결정적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서독 상황이 한국에서 그대로 재연되지는 않겠지만, 서독처럼 분단과 냉전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개정만으로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 것이다. 북미수교로 냉전이 해소되고 한반도 통일로 분단이 종식되기 전까지는 이 논쟁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도발한 사실에서 잘 나타나듯이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을 무기로 국가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의 투쟁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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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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