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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대학 정문 앞 카페에서 울려나오는 젊은이들의 말소리가 흐르는 개울물 소리처럼 들렸다.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으면 싶다고 하자 커피를 마시던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을 꺼내셨다. 할아버지 세대는 한문이다, 일본어다, 영어다 하면서 평생 외국어 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뒤이은 아빠 세대도 영어다, 독어다, 불어다 하면서 나아진 게 별로 없었는데, 너희 세대까지 그러냐며 가볍게 고개를 흔드신다.

그때 갑자기 가슴 저미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웬 노인 악사가 카페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 거였다. 

"어, 저건 아까 말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주제곡인데요."
"그러게. 파리 악사가 왜 독일 노랠 연주하지?"

전 세계를 울린 노래

이번엔 내가 고개를 흔든다. 한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세 남자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글루미 선데이>는 1999년 독일 감독이 만든 영화였지만, 1994년 개봉된 미국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등장하는 노래 <글루미 선데이>는 원래 헝가리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곡을 1936년 세계적인 노래로 히트시켰던 장본인은 다름 아닌 프랑스 샹송가수 다미아(Damia)였다.

원래 헝가리 노래인 <글루미 선데이>를 세계적인 노래로 히트시켰던 프랑스 샹송 가수 다미아(Damia). 세계적인 대공황의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 노래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생겨나자 프랑스 방송국은 노래를 들은 청취자들의 심리조사를 실시하고, 영국 BBC나 미국 방송국들은 이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했다.
▲ 본명이 마리 루이즈 다미앙이었던 샹송가수 다미아 원래 헝가리 노래인 <글루미 선데이>를 세계적인 노래로 히트시켰던 프랑스 샹송 가수 다미아(Damia). 세계적인 대공황의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 노래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생겨나자 프랑스 방송국은 노래를 들은 청취자들의 심리조사를 실시하고, 영국 BBC나 미국 방송국들은 이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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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일요일 Sombre dimanche
한 아름 꽃을 안고 Les bras tout chargés de fleurs
난 지친 마음으로 Je suis entré dans notre chambre
우리 방에 들어갔지 le cœur las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Car je savais déjà
네가 안 오리란 걸 que tu ne viendrais pas
그래서 사랑과 괴로움의 Et j'ai chanté des mots
노래를 부르며 d'amour et de douleur
혼자 남은 난 Je suis resté tout seul
소리죽여 울었지 et j'ai pleuré tout bas
겨울이 울부짖는 En écoutant hurler
비명소릴 들으면서 la plainte des frimas
어두운 일요일 Sombre dimanche

고통이 너무 심해 Je mourrai un dimanche
난 일요일에 죽을 거야 où j'aurai trop souffert
네가 돌아와도 Alors tu reviendras,
난 이미 없겠지만... mais je serai parti...


C단조의 뇌쇄적인 이 노래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헝가리에서뿐 아니라 파리에서, 런던에서, 뉴욕에서 발생했다. 세계적인 대공황의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그 숫자가 수십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프랑스 방송국은 노래를 들은 청취자들의 심리조사를 실시했다. 영국 BBC나 미국 방송국들은 이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자살가(Suicide Song)'란 별명을 얻은 이 노래는 나라마다 제목이 조금씩 달랐다. 2005년에 와서 한국 가수 자우림이 부르기도 하는 1930년대의 이 노래는 불어 제목이 <어두운 일요일(Sombre dimanche)>인데, 영어 제목은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 독어 제목은 <외로운 일요일(Einsamer Sonntag)>, 스페인어 제목은 <슬픈 일요일(Triste domingo)>이었다.

"어둡고 우울하고 외롭고 슬픈...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쩌겠느냐? 살아야지."
"묘해요. 염세는 전염성이 강한 건데..."
"염세는 무슨. 여로에 만난 우연이다! 다음 행선지는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지?"

파리에서 배운 '문화존중의 정신'

아빠가 딱 자르고 화제를 돌리시는 바람에 나도 얼른 내 몸에 번지고 있던 우울을 카페에 떨구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메트로를 타고 간 곳은 13구의 비블리오테크 프랑수아 미테랑(Bibliothèque François Mitterant)역이었다. 지상에 올라가 센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책을 형상화한 ㄱ자 건물 4동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웅장하다.

루이 11세가 1480년에 창설한 왕실도서관의 소장본을 물려받았다는 이 도서관을 당시 돈 12억 유로(1조 5천억 원)를 들여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도서관'으로 재정비한 것이 미테랑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미테랑도서관'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높이 79m의 대형건물 4동과 그 4동을 연결하는 열람실 한가운데는 독서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해주는 거대한 인공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면적 7.5 헥타르, 광장 6만㎡의 방대한 도서관 규모는 과연 문화강국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불릴 만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빠는 안에 들어가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유감이라고 하시면서도 애초 보고 싶으셨던 건 도서관이 아니라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Passerelle Simone de Beauvoir)였다고 하신다.

책을 형상화한 ㄱ자 건물 4동의 한가운데서 시작되는 보부아르 인도교는 파리 센강에 37번째로 놓인 사람과 자전거 전용도로다.
▲ 보부아르인도교(Passerelle Simone de Beauvoir) 책을 형상화한 ㄱ자 건물 4동의 한가운데서 시작되는 보부아르 인도교는 파리 센강에 37번째로 놓인 사람과 자전거 전용도로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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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에 37번째로 놓인 사람과 자전거 전용도로다. 2개의 곡선 다리가 서로 교차하도록 되어 있는 전장 305m의 이 아름다운 다리는 유리로 지어진 국립도서관 건물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센강 너머 베르시 공원으로 이어진다. 우아하게 휘어진 구름다리의 널빤지 길을 걷기 시작한 내게 아빠가 물어보신다.

"왜 이 다리에 여류작가 보부아르의 이름을 붙였을까?"
"글쎄요. 공헌도가 높았던 모양이죠?"
"공헌도? 사실은 남녀를 통틀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이 보부아르였다는 거야. 그래서 이 아름다운 다리에 그 여자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어. 재미있잖니?" 

"팡테옹 지하무덤에 작가들의 관을 안치한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문화존중의."
"그래. 파리에 와서 이제 우린 한 가지를 확인한 셈이다. 문화존중의 정신. 다음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파리시 그 자체다. 대체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리로 찾아온 걸까?"
"관광객?"
"아니, 예술가나 지식인들 말이야. 생각해봐라."

시기는 다르지만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에서, 자코메티는 스위스에서,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에서,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수아즈 말레-조리스는 벨기에에서, 에밀 시오랑은 루마니아에서,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츠베탕 토도로프는 불가리아에서, 하인리히 하이네는 독일에서 왔다. 헤밍웨이 등 미국 작가들이 떼로 몰려와 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빠의 결론.

"파리의 매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리가 처음부터 매력 있는 도시였을까? 이제부턴 그 점을 확인해보기로 하자."
"네, 근데 지금은 배가 출출해요. 아빠도 무얼 좀 드셔야죠?"
"그래, 하긴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어디가 좋을까?"

레스토랑 찾기는 아빠로부터 '미식가'란 놀림을 받아온 내 몫이기도 했다. 웹서핑을 거쳐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제6구에 있는 '폴리도르(Polidor)' 레스토랑이었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레스토랑

헤밍웨이의 단골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파리의 간이식당 폴리도르.
▲ 레스토랑 폴리도르(Polidor) 헤밍웨이의 단골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파리의 간이식당 폴리도르.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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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허름해도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17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이오네스코가 자주 드나들던 식당으로 유명하고, 헨리 밀러와 헤밍웨이의 단골식당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빠는 헤밍웨이 이름이 나오자 눈을 크게 뜨며 좋아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 안쪽에 설치된 바에는 '폴리도르 1845'란 표식이 두어군데 붙어 있었다. 또 다른 벽에 걸린 벽화는 우리를 19세기로 인도한다. 실내장식도 테이블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간이식당(crémerie restaurant)이므로 여행복 차림의 우리는 우선 마음이 놓였다. 안을 둘러보던 아빠가 눈짓하셔서 보니 허공에 매달린 칠판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폴리도르는 1845년부터 신용카드를 받지 않습니다.(Le Polidor n'accepte plus les cartes de crédit depuis 1845)"

“폴리도르는 1845년부터 크레딧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 레스토랑 폴리도르(Polidor)의 천장에 달린 안내문 “폴리도르는 1845년부터 크레딧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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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가 있네요."
"프랑스답지."

그 발언 다음에 붉은 체크무늬의 테이블보 위에 놓인 메뉴판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져야 했다. 실은 프랑스 요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메뉴판에 캐비어(caviar), 서양송로(truffe)와 함께 세계 3대 진미의 하나로 알려진 푸아그라(foie gras)가 들어 있었다.

거위나 오리를 살찌게 하여 그 간으로 요리한 것이라지만 '비대한 간' '기름진 간' 아니, 조금 돌려 번역하면 '부은 간'이 될 수도 있는 푸아그라의 글자 뜻이 싫었고, 이전에 먹어봤지만 입안에서 흐물거리는 식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에 보이는 에스카르고(escargots)를 언급했더니 아빠가 반색하셨다.

"어, 달팽이 요리? 그거 좋지."
"메인디시(주요리)는 비프(쇠고기)가 좋을 것 같은데 아빤?"
"같은 거로 하자."

식사 전에 시킨 레드와인은 미국에서 '버건디(Burgundy)'라 부르는 부르고뉴 와인(Vin de Bourgogne)이었다. 쨍하고 글래스를 마주친 시작은 근사했다. 이윽고 쟁반에 나온 달팽이 요리는 집게와 작은 포크를 사용해 껍질 안의 살을 끄집어내야 했다. 처음엔 프랑스식 버터 향 소스가 곁들여진 약간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잠자던 미각을 일깨워주는 것도 같았다.

레스토랑 폴리도르의 달팽이 요리 '부르고뉴 에스카르고 (Escargots de Bourgogne)'.
▲ 에스카르고 레스토랑 폴리도르의 달팽이 요리 '부르고뉴 에스카르고 (Escargots de Bourgo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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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글쎄다. 버터가 너무 많은가?"

아빠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셨다.

뒤이어 으깬 감자와 함께 메인디시로 나온 '부르고뉴 비프(Boeuf Bourguignon)'는 그 모양이 한국 갈비찜 같았다. 각종 양념 재료와 함께 찜을 했기 때문에 맛있을 것 같아 잔뜩 기대했으나 막상 입에 넣으니 별로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쇠고기는 좀 질긴 것 같다. 다른 식당에서 먹어본 스테이크도 좀 질겼다. 그래서 부르고뉴 비프처럼 푹 찐 형태가 많은 모양이지만 이게 또 내 구미엔 맞지 않았다.

한국의 갈비찜처럼 보이는 폴리도르 레스토랑의 쇠고기 요리.
▲ 부르고뉴 비프(Boeuf Bourguignon) 한국의 갈비찜처럼 보이는 폴리도르 레스토랑의 쇠고기 요리.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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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가 자주 찾은 식당이었다는 인터넷 설명에 혹해서 찾아왔지만 결론은 피아스코(fiasco)였다. 비추천! 아빠는 각국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몰려든 것은 '파리의 매력' 때문이었다고 해석하시지만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프랑스 음식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 요리의 명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식사가 끝난 뒤 핸드백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려는데 지폐를 미리 꺼내신 아빠가 허공을 가리키시기에 눈길을 돌렸더니 아까 본 바로 그 칠판이었다.

"폴리도르는 1845년부터 신용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태그:#파리여행, #강재인, #보부아르인도교, #프랑스국립도서관, #글루미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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