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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마세요."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구체적 차별경험 앞에서는 고민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차별 경험 역시 그러합니다. 나이가 어려 아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능력에 따른 성적부여가 당연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 그러나 과연 이러한 사유가 정말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6월 평등UP은 이와 관련해 청소년 활동가들의 고민을 담은 두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 기자말

청소년은 차별받아도 되는 인간인가
 청소년은 차별받아도 되는 인간인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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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의견수렴 과정의 일환으로, 교육부에서 학생부 기재항목 간소화 관련 '시민정책참여단'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참여단에 지급되는 수고비가 나이에 따라 다르다. 성인에게는 2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반면, 청소년에게는 6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준다. 이것은 차별일까? 이처럼 청소년을 다르게 대우하는 행위는 만연한데 대개는 차별로 여겨지지 않는다.

청소년은 차별받아도 되는 인간인가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소통하지 못하는 십대와 부모를 위한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았고, 자녀로 인해 고민하는 부모를 위한 서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십대와 성인이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십대는 외계인에 비유된다. 성인은 지구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주인이라고 선언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청소년은 그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은 어른들이고 청소년은 아직 인간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공직선거에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이 의미하는 바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이 성별과 인종에 따른 열등성을 입증해내려고 애썼다면, 21세기의 과학자들은 청소년의 뇌와 호르몬을 연구한다. 그리고 청소년이 성인에 비해 열등하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설령 과학자들에게 별다른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발견이 사회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은 청소년에게 불리하다.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따라서 권리를 제한당해도 된다는, 또는 차별받아도 된다는 근거가 되는 방식이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 곧 어느 한쪽의 열등함과 다른 한쪽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전체를 동질화해서 그 안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것도 문제고, 드러난 차이를 확대해석해서 성인에게 있는 것이 청소년에게는 전혀 없다는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다. 생물학적 차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종종 사회적으로 구성된 차이임이 드러난다. 청소년의 신체와 행위를 '미성숙함'이라는 가치판단으로 읽어내는 것은 사회적 해석이다.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그것이 시효 있는 차별이며, 그러므로 차별을 해도 평등하다는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선거' 원칙이 '일정한 나이에 이른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란 의미인 것이 그 예이다. 장애나 성별, 인종, 성정체성 등이 '영구한 정체성'으로 간주되는 반면 미성년이라는 지위는 시효가 있기에 어떠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더라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혹자들은 청소년이라고 받는 차별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것이기에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청소년기에 고통받았으니, 너도 평등하게 고통받으라고.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20살이 되면 평등한 사회보단 날 때부터 평등한 사회가 낫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과 자신의 다른 정체성들 때문에 받게 되는 차별이 혼합되어 끔찍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급기야 목숨을 끊게 되는 청소년들이 있다.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것에 왜 20년씩이나 익숙해져야 하는가? 왜 남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스스로의 인격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만 '성장' 할 수 있는가. 흔히 차별은 특정한 소수자 집단이 겪는 문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차별의 해소는 그 집단만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청소년기를 살 수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삶 전반이 다를 것이다. 나이에 따른 차별을 줄여나가는 과정은 이 사회의 잠재능력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물론 나이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여타의 차별을 해소하는 일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청소년 서프러제트
 우리는 청소년 서프러제트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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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고 싶다

'성숙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른스럽다'이다. '유치하다'에는 뜻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것이다. 차별이 가장 심한 상태는 차별이 차별로 여겨지지 않는 상태이다. 청소년에 대한 차별은 차별이 아닌 구분으로, 합리적 차별로 여겨지고, 동시에 청소년 스스로를 위한 것(보호)으로 정당화된다.

차별을 포착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처우를 받게 되는 요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은 애초에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공간과 성인의 공간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성인은 청소년을 교육·보호하는 직업의 종사자이거나 청소년 자녀를 둔 사람들에 한정된다. 청소년을 동료나 친구로 만날 수 있는 성인은 드물다. 이는 바꿔 말하면 청소년 입장에서는 보호자-피보호자라는 수직적 관계를 통해서만 성인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다른 대우를 받는 상황이라면 차별을 발견하기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놓이는 상황은 애초에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꿔 말하자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가장 불안정한 근로형태인 아르바이트로밖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차별이다. 청소년 노동자에게만 요구되는 '보호자 동의서'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 또는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어서 불법 노동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 차별의 결과다.

헌법적 권리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 압수나 수색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청소년의 삶을 쉽게 비켜 간다. 공공기관인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소지품을 뒤지고 압수하는 일이나 집회 참여 및 의사표현을 처벌하는 행위, 서약서와 반성문 작성을 강요하는 행태는 너무 흔하다. 학칙으로 이러한 인권침해를 공식 허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경찰도 정부도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

학교만의 문제인가. 과거에는 정부가 나서서 청소년들이 계좌 개설을 하도록 유도했지만, 대포통장이 문제가 되자 가장 발 빠르게 계좌 개설이 차단되기 시작한 것도 청소년들이었다. 보호자의 동의나 동행이 없으면 통장 하나 만들기도 어렵고 온라인 중고서점에 책을 팔지도 못하며 밤늦은 시간 몸 누울 숙소를 이용할 수도 없다. 심지어 범죄 피해를 당해 경찰에 신고하려 할 때조차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신고를 받아주려 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성인이 청소년에게 행한 폭력은 '사회상규상 허용되는 훈육'이라며 무죄 판결을 받거나 불기소 처분되는 경우도 흔하다.

청소년의 인권 문제는 대개 '인도적인 대우' 차원으로만 제기되고, 청소년과 성인 간의 나이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는 문제로는 잘 여겨지지 않는다. 청소년이 받는 차별이라고 하면 청소년 간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잦은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청소년 인권 문제를 반차별과 평등의 관점으로 바라본 경험이 적다는 의미다.

차별을 해결하려는 관점 없이 인도적 대우만을 강조한다면 시혜적 태도가 되기 쉽고 시혜의 결과는 당사자들의 욕구를 비켜 나가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인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서라도 평등은 필요하다. 제도적·사회문화적 차별로 인해 공동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면 인도적인 대우를 받을 가능성 또한 적어지기 때문이다. 존중은 너와 내가 평등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행위다. 청소년을 차별함으로써 그들을 폭력으로 내몰았던 역사를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오래 겪었다.

평등한 사회를 상상하는 움직임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차별금지법안의 자체 내용보다도 그 법안을 통해 평등한 사회를 그려나가는 흐름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청소년 차별을 발견하고 언어화하고 드러내고 문제 삼는 목소리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함께 탄생할 수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쥬리님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입니다. 평등UP 기고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청소년차별, #청소년인권,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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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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