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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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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핵심 관련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업무용 컴퓨터가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훼손(디가우징)됐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하드디스크를 달라고 요청하자 대법원이 줄 수 없는 이유를 털어놓으면서다.

복구 불능이 되어버린 하드디스크는 사법농단의 윗선을 밝힐 핵심 물증으로 꼽혔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법원 자체 조사단은 최고 윗선에 접근조차 못하고 해산했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은 조사에 불응했고, 박 전 처장에게는 서신 답변만 얻었을 뿐이다. 둘 다 사태에 관여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심의관들이 상부 지시 없이 해당 문건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다는 가설도, 그럴 만한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결국 두 사람이 사용했던 컴퓨터를 확보해 관련 문건들을 보고 받거나, 최소한 인지했는지 단서를 찾는 게 중요했다. 이런 기초 수사는 시도조차 못하고 불가능해졌다.

진짜 답해야 할 한 가지 

'증거인멸'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퇴임 후 디가우징 하는 게 규정이자 통상 절차"라고 해명했다. 비공개가 원칙인 판결 합의 과정 등 민감한 파일이 존재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최초로 내놓은 관련 규정은 디가우징의 근거로 명확하지 않았다. 민감한 시기에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했다는 논란이 가시지 않자 대법원은 사흘째 각종 의혹에 해명을 내놓는 중이다.

끊임없이 내놓은 해명에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2014년에 디가우저를 대량 구매한 이유를 두고 대법원은 "보다 높은 수준의 정보 보안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왜 하필 그때, 보다 높은 수준의 정보 보안이 필요했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또 디가우징으로 해당 컴퓨터에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삭제가 마땅한 문건이었는지, 삭제를 하면 안 되는 문건이었는지도 영원히 모른다. 대법원 해명처럼 디가우저가 정보보안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는지 판단할 최소한의 근거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비공개 자료라도 이관한 뒤 보안을 유지해 보관한다는 공공기록물 일반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그간 불거진 의혹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밝힌 입장을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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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언제 처음 도입했는가?
"디가우징 장비는 분당 전산정보센터에 2008년 도입되어 있었고, 2014년 12월에 분당센터 장비 노후로 교체하면서 대법원(서초)과 각 고등법원단위로도 디가우저가 필요해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7대를 도입하여 분당에 1대, 대법원(서초)에 1대, 각 고등법원 단위(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에 1대씩을 배정하였습니다."

② 도입한 이유가 뭔가?
"디가우징 장비는 국가정보보안 기본지침(국정원 지침) 제48조(전자정보 저장매체 불용처리)에 따라 전자정보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폐기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입니다." (관련기사: 양승태 PC '디가우징' 근거 불분명, '증거인멸' 논란)

③ 2014년 전산정보센터 노후 기계를 교체하면서 대법원과 고등법원에까지 디가우저를 도입한 이유가 뭔가?
"대법원이나 각급법원에서 유지관리하고 있는 컴퓨터 등 전자정보 저장매체에 저장된 정보 등에 대하여도 확실하게 폐기하는 등 보다 높은 수준의 정보보안을 하기 위하여 대법원과 고등법원 단위에 우선 도입한 것입니다."

④ 대법관 PC를 디가우징한 근거가 무엇인가?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컴퓨터는 그 직무의 특성상 임의로 재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제27조에 따라 사용할 수 없는 장비로서, 제30조에 따라 불용사유가 발생하였으므로, 제31조에 따라 완전히 소거조치를 하기 위하여 디가우징을 한 것입니다. 종전 퇴임 대법관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의 경우에도 디가우징의 방법으로 완전히 소거조치를 했습니다."

⑤ 처리 절차를 밝혀 달라. 
"대법관 이상의 경우 퇴직시 하드디스크는 폐기처분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법관실로부터 폐기를 요청을 받은 전산담당자는 이를 폐기하여야 합니다. 해당 대법원장실과 대법관실에서 퇴임 시에 직접 처리를 지시하므로 폐기 여부 결정에 대한 법원행정처 내에 별도의 결재 과정은 없습니다.

법원행정처 각 실국 등에서 폐기하기로 정하는 경우 실국에서 직접 폐기하는 경우도 있고 디가우저 장비가 있는 대법원 전산정보국 분실로 보내 전산담당자와 전산장비관리 외주업체 직원이 회수하여 폐기처분을 하기도 하는데 주로 후자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⑥ 디가우징을 하기 전 저장된 파일 목록을 만들고 중요 문건을 분류·이관하는 절차는 없었는가?
"디가우징은 하드디스크 실물을 디가우저에 넣고 강력한 자기장으로 자료를 파괴하는 것으로 하드디스크 안에 있는 문서 내용을 보고 선별적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⑦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지시했는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디가우징은 대법원장실 지시로 조치된 것이고,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이미 퇴임해 당장) 확인할 수 없습니다."

⑧ 대법관 퇴임 외에도 업무용 컴퓨터를 디가우징 하는 경우가 있는가?
"인사실이나 윤감실(윤리감사실)의 경우 실 자체로 대외비 문서가 있어 자체적으로 폐기처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⑨ 핵심 관련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김민수 전 심의관의 컴퓨터도 디가우징 된 적 있는가?
"임종헌 전 차장, 김민수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해서 디가우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⑩ 김소영·고영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에서 물러날 때는 디가우징 했는가?
"처장에서 대법관실로 이동한 것이므로 디가우징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태그:#양승태, #디가우징, #사법농단, #증거인멸,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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