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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나는 문을 꼭꼭 닫고 공기청정기만 켜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공기청정기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거의 필수 가전이 되어버렸다. 유명 생수병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수돗물에서 환경호르몬과 발암물질이 검출되었고 끓일수록 농축된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는 절망했다.

수돗물을 끓여먹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정수기를 들이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최악이 아닌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먹을 물을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고민을 거듭해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결과가 어찌 또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폭우처럼 쏟아져 오염된 강물의 농도를 좀 옅게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생존에 가장 기본인 공기와 물이 오염되어 우리를 위협하는데 그냥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개인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환경에 대한 이러한 고민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나 하나 쯤 바뀐다고 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하는 회의가 컸다. 이 오염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니 죄책감이 안들 수가 없다. 동네 엄마들은 이런 세상에 아이들을 내놓은 게 죄스럽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나는 음식쓰레기를 버릴 때 죄책감이 제일 컸다. 요즘은 일회용 봉투에 담아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마음의 짐을 덜고자 양푼이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았다 버리는데 근처를 지나던 경비 아저씨가 "요즘은 그릇에 담아 버리는 사람 잘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신다. 음식쓰레기가 되도록 나오지 않게 먹을 만큼 조리하는 것도 중요하고, 재료를 필요 이상으로 구입해서 상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다.

<노 임팩트 맨> 표지
 <노 임팩트 맨> 표지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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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은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다. 저자는 1년 동안 자신이 쓰레기를 얼마나 적게 방출했냐는 결과치보다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공개선언을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야말로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다. '주변사람들이 바뀐 것(도 개인적인 실천의 보이지 않는 결과이다)도 또 하나의 수확'이며,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바꾸면 주변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회용품과 포장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등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1단계였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교통수단만 이용하는 것이 2단계였다. 음식을 고를 때 환경에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3단계였다. 그런 다음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소비재, 난방이나 전기와 같은 가정용 에너지, 생활용수 사용과 수질오염 등 여러 분야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한도로 줄일 것이다. 아무래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때마다 점점 힘들어질 것 같은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통해 상쇄하기로 했다. 허드슨 강의 오물을 청소한다든지, 새로 심은 나무 가꾸기를 돕는다든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식의 적극적인 환경운동을 통해서 말이다. (…) 마이너스 임팩트 + 플러스 임팩트 = 노 임팩트. (33쪽)


프랑스의 마트에서는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유상지급이 아니라 프랑스처럼 아예 모든 마트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면 어떨까.

프랑스 사람들에게 장바구니 사용은 자연스런 일상이고 케이크를 포장할 때도 두껍고 질 좋은 종이 상자가 아니라 바게트 빵의 포장용지 같이 얇은 종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들어 간소하게 포장해서 판매한다. 이러한 사실은 <프랑스인의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포장이 너무 과하다. 아이들이 먹는 과자만 해도 포장이 이중, 삼중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내가 일회용품을 처분하는 순간, 내가 누린 편의가 전인류에게 민폐가 된다'고 했다. 어쩌면 인간이 생존하는 것 자체가 환경오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환경에 피해를 덜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구에게 덜 미안해 할 수 있다. 손수건과 유리병,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 첫 발을 내딛는 일이다.

우리 몸에는 50년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공업용 화학물질이 최고 100가지나, 그것도 검사하면 나올 정도의 분량으로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 우리 집 쓰레기봉투를 채운 그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느라 축적된 화학물질이다. 예를 들어 깡통 안쪽에 쓰이고, 일회용 물통을 비롯한 기타 단단한 플라스틱 용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혼합물인 비스페톨 A의 경우 호르몬 체계를 어지럽혀 몇몇 암의 발병률을 높이고, 불임을 유발하고, 과다행동장애와 같은 아동질환의 원인을 제공한다. 흔히 말하길 먹는 대로 된다고들 하는데, 우리가 버린 비닐봉지를 바다거북들만 먹는 게 아니다. 이 별에 사는 야생동물들이 겪은 일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일찌감치 경고하는 전조이다. (82~83쪽)


이미 일회용품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 용기며 음식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비닐용지, 아이들이 먹는 과자봉지 등 마트에서 간식 하나 음료 하나 사 먹어도 다 쓰레기를 양산하게 되는 구조다. 소비하지 않으면 그나마 쓰레기를 덜 배출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기부나 투표 말고,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하더라도 현실적이고 특별하며 (그리고 상징적이며) 뭐가 되었건 나름의 보상이 따르는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육식을 포기하면 탄소 배출량을 4분의 1이나 줄일 수 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일주일에 하루씩 경제활동을 완전히 금하고 쇼핑도, 운전도, 전기 사용도 자제하는 것이다. 아니면 직접 먹거리를 길러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306쪽)


생활 속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환경에도 좋고 내 몸을 생각해서 대안 달거리대(생리대-편집자 주) 사용하기,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 사용하기, 생수 구입 대신 물병을 들고 다니고 용변 후 전기 건조기나 휴지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커피를 즐기는 이들은 일회용 용기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 장바구니를 늘 가방에 넣어 다니고 흙 묻은 채소를 담기 위해 천 주머니 이용하기 등등이 있겠다. 더 나아가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일도 환경에 좋은 밑거름이 될 터이다.

매일매일 돌리는 세탁기를 며칠에 한 번으로 줄이고, 우리들이 입는 옷의 재질도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합성섬유보다는 면이나 마 같은 천연섬유의 옷으로 바꿔 입자. 세탁한 물을 통해 빠져 나가는 섬유조각이 바로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치약 속 알갱이나 스크럽제 속의 알갱이가 미세플라스틱이란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요즘 광풍이 부는 미니멀 라이프도 환경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는 일이 곧 쓰레기를 덜 버리는 일과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노 임팩트 맨>과 같은 시도야 말로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 길이다. 완벽하게 안 쓸 수 없지만 거의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는 바람직하고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노 임팩트 맨'이 되기 위한 7단계 프로젝트를 요약해 일러주었다. '이 세상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구원받아 마땅한 곳이길' 희망하면서 말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기, 우리 고장에서 난 로컬 푸드를 먹기, 쓸데없이 소비하지 않기, 집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줄이기, 물을 아끼고 오염시키지 않기, 사회에 환원하기

이제 우리는 참여하는 시민의식의 새로운 모델을 찾고, 각자의 생활 방식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고 확고하게 다질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참여 민주주의'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줄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책임감 있게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체제의 노예가 아니라 주도자로 활약하는 세상에서 충만하게 사는 만족감이다. 그곳은 물려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세상이다.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다니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우리 운명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296쪽)

<노 임팩트 맨>은 환경오염에 관심이 없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안겨 준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 지루하지 않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저자는 날로 환경이 오염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삶을 예전으로 되돌리기도 힘들다. 저자는 가능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 보라고 읊조린다.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내가 바뀌면 주위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임팩트 맨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북하우스(2010)


태그:#환경, #비닐봉지, #미니멀라이프, #제로웨이스트, #노임팩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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