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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있었던 지방선거는 여론조사와 큰 차이 없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는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은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제주도지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승리했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철옹성같이 지키던 지역들을 기초부터 잃었다. 바른미래당은 한 곳의 기초자치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맥이 빠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선거가 있었다. 바로 제1의 도시 서울시장 선거다. 안철수 후보와 김문수 후보는 지지율이 낮아 당선권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3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선거운동을 하는 대신 비교적 민주당에 어려운 험지의 구청장을 당선시키는데 주력했다.

예상대로 민주당은 서울을 싹쓸이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자녀의 학위 수여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장진영 전 바른미래당 동작구청장 후보가 안철수 전 대표의 미국행을 비판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YTN에 따르면 안철수 전 대표는 27일 사무처 당직자들과 만나 초심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밝혔다고 한다. 바른미래당은 천여명의 지방선거 후보 중에서 고작 이십여명을 당선시키는데 그쳐서 극한의 상황에 치달았다. 안철수 전 대표가 초심을 통해 당을 추스리고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안철수 전 대표가 초심을 말하기에는, 그는 지금 정치에 참여하면서 말했던 초심과는 거리가 먼 곳에 와버린 것 같다.

2011년으로 돌아가보면, 안철수는 슈퍼스타였다. 그는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상태였다. 이후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했던 토크콘서트는 많은 청년들의 환호를 받았고, 그는 아무런 정치경력 없이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명박 정부의 실망한 이들과 새로운 인물을 기대한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의 정치적 지향은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보수의 차기 주자로 완벽한 입지를 굳히고 있기도 했고, 정치인 안철수의 이미지는 새누리당보다는 훨씬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이었다. 물론 민주당과는 사안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검사였지만 한겨레 신문 기고 이후 사직했던 금태섭, 민변에서 활동했던 송호창 변호사같은 이들이 그와 함께한 점에서도 그가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캠프에서 활동했던 박선숙 의원도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출신이었다.

또한 그는 참신한 사람이었다. 기업인 안철수, 청년과 함께하는 강연자 안철수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청년이 있는 곳이라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다.

정치 데뷔 초기의 안철수는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비교적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이었던 입지와 사업가이자 강연자로서의 참신함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기 좋은 특징을 모두 겸비한 사람이었다. 이후 있었던 수많은 비판들은 그 당시에는 수면 아래에 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안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안철수는 정치에 데뷔했던 시기의 자산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 데뷔 이후 끊임없이 우클릭을 시도했다.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중도가 되었다가, 이후에는 다시 우클릭을 통해 바른정당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판하며 김문수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2011년, 안철수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면을 좋아했던 사람은 그가 7년 후 김문수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며 그 지지층을 노릴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합쳐도 당선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김문수 후보도 당연히 사퇴를 하지 않아 안철수 후보는 3위에 그쳤다.

안철수 전 대표가 활동했던 지난 7년간, 그의 참신했던 이미지는 점점 깎여나갔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국민의당에서도 그는 당을 깨고 나가는 길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기존 정당 지지층들에게 갈등의 이미지를 남겼다. 반면 새롭고 혁신적인 길로 자신의 참신함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지는 못했다.

더 참담한 사실은,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 데뷔시기에 가지고 있었던 자산을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도전으로 정치적 자산을 얻기도 더 힘들어졌다. 한때 녹색 돌풍의 시작점이었던 호남은 더 이상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다.

안철수 대표가 있었던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호남에서 대패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북에서 2곳, 전남에서 1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를 전부 호남에 내주었다. 그리고 호남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전 대표에게 95만 표를 주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승리,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호남을 거점으로 하는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탈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가 강한 상황에서 조직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바른미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 명의 호남 지방자치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바른미래당을 따라간 몇 안되는 호남 의원(권은희, 김관영, 주승용 의원 등)들의 지역구에서도 나쁜 성적표를 받았다. 민주평화당이 선거 내내 높은 정부 지지율과 압도적인 여당의 기세에 눌려있었음에도 호남지역에서 5명의 기초단체장 당선자를 배출한 결과와 비교하면 참담하다.

이제는 초심을 말해도 국민들이 그 말을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안철수 전 대표가 초심을 말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2012년 안철수의 참신했던 이미지와 대안으로서의 입지를 떠올리기엔 너무 멀리 오고 만 것이다.

정치 신인 안철수는 '새정치'로 기억되는 참신함을 무기로 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에 안정적인 조직을 갖추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했던 의원들과 지나치게 빠른 시일 후에 반목하고, 끊임없는 우클릭을 보인 사람에게 국민들이 큰 신뢰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에도 초심을 말하며 자신을 쇄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한 시대를 풍미할 뻔 했던 대권 후보의 씁쓸한 추락이다.


태그:#안철수, #바른미래당, #초심, #정치, #바른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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