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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재개발 지역에서 버티는 철거민은 여전히 사설업체 용역들의 각종 폭력과 협박에 시달린다. 철거민들은 공권력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유엔은 최근 이같은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특별 보고관을 파견했다. <오마이뉴스>가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말]
길음1구역 재개발 예정지에 남은 붉은 양옥집, 남상혁씨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다.
 길음1구역 재개발 예정지에 남은 붉은 양옥집, 남상혁씨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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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집이 아닌 게 되어 버린 거예요."

서울 성북구 길음역에서 도보로 3분을 올라가면 2층짜리 붉은 벽돌로 된 양옥집이 보인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랜드마크' 같은 집이다. 하지만 이 집은 길음 1구역 재개발 사업 구역에 속하게 되면서 곧 철거될 운명이다.

주변 지역에서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집은 아직도 한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다. 남상혁(52)씨와 진지원(49)씨, 그리고 대학생 자녀 두 명이 산다. 모두가 떠난 길음 1구역에 마지막 남은 한 가족이다.

마지막 한 가구

남씨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1일 <오마이뉴스>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과 함께 이 집을 찾았다. 집 앞에는 '8억에 성북구 초역세권 이런 집 찾아주시는 분께 사례금 전 재산 8억을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흰색 셔츠에 회색 체크무늬 바지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씨가 일행을 맞았다. 남씨는 사업을 하고, 진씨는 성북구청의 도시농업강사로 활동한다.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삶을 살았던 이들은 길음 1구역 사업이 진행되면서 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됐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재개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기존 재개발 추진 지역과 통합해 뉴타운 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3년 뒤 2009년 재개발 구역으로 고시가 되면서 남씨의 집도 재개발 대상지로 확정됐다.

남씨 등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비대위를 꾸려 대응했지만 결정 난 사안을 뒤바꿀 수는 없었다. 남씨는 "예전에 이 일대는 재개발 안된다고 동네 잔치도 했었다"면서 "그때 이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고 말했다.

"책정된 보상금도 턱없이 적어... 이만한 집 구할 수 있나"

길음1구역 재개발 예정지에 남은 붉은 양옥집, 남상혁씨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다.
 길음1구역 재개발 예정지에 남은 붉은 양옥집, 남상혁씨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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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집이 내 집이 아닌 게 돼 버린 상황"이라며 "이 집에 그냥 살고 싶은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밝혔다. 남씨 부부의 집 면적은 총 70여평. 조합은 보상금으로 8억 원을 책정했다. 등 떠밀리듯 떠나야 하는 남씨 부부가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남씨는 "인근 아파트 26평짜리가 8억을 하는데, 70평 되는 주택 가격이 8억인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서울 지역 어디를 가도 8억에 이정도 면적 주택은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폭리를 취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최소한 내 재산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씨가 조합과 합의를 보지 못하자 구청에서 협의체를 마련했다. 지난해 말부터 총 5차례 협의체 회의에서 조합 측에서는 보상금을 받고 나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현장에 온 구청 직원들은 중재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지켜보기만 했다는 게 남씨의 주장이다.

남씨는 "용산 참사를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그 분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면서 "용산 참사 이후 정부나 지자체에서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말로만 그랬지 정작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강제집행 들어온 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남상혁씨(왼쪽)와 진지원씨(오른쪽)는 "그냥 이 집에서 사는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남상혁씨(왼쪽)와 진지원씨(오른쪽)는 "그냥 이 집에서 사는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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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합의를 보지 못하고, 남씨의 집은 이제 강제집행 대상이 됐다. 진씨 혼자 집에 머무르던 지난 5월 23일 오후 1차 강제집행이 들어왔다. 진씨는 "수 십명의 사람들이 집 앞에 왔고, 소방차와 경찰차, 사다리차까지 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진저리를 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남씨가 완강한 반대 의사를 보여 1차 강제집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언제 또다시 강제집행이 들어올지 몰라 남씨 부부는 항상 불안하다. 이제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진씨는 "강제집행 해봐라, 나는 내 권리 주장할거다, 했는데 막상 느닷없이 들이닥치니까 이제는 조그만 소리가 나도 내다보게 된다"며 "엊그제는 쾅쾅 큰소리가 나서 놀라 나가보니까 옆 집 부수고 있는 소리"라고 말했다. 

남씨는 멀쩡한 집을 부수고 거주민을 내보내는 재개발 방식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재개발 사업은 원래 공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피해자가 생긴다면 과연 그 사업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라면서 "법이 이렇게 돼 있다면, 정말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개발조합장 "법대로 하겠다"

한편 이일준 길음1구역 재개발조합장은 "조합 입장은 법대로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남씨의 요구에 따라) 배임을 하면서까지 돈을 더 줄 이유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조합장은 이어 "사실 1년동안 철거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가라고 설득했지만 나가지 않는데, 향후 강제철거에 들이는 비용도 추후 보상 청구를 할 것"이라며 "(남씨는) 조합원 분양 신청을 하고 웃돈(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용산 참사 10년, 다시 철거민]
① 쌍욕과 쓰레기... 항우울제 먹으며 버티는 아현동 사람들
② "기억이... 안나요" 평택 세교동 30년 원주민 김씨의 악몽



태그:#철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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