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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하지 마세요."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구체적 차별경험 앞에서는 고민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차별 경험 역시 그러합니다. 나이가 어려 아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능력에 따른 성적부여가 당연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 그러나 과연 이러한 사유가 정말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6월 평등UP은 이와 관련해 청소년 활동가들의 고민을 담은 두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시험
 시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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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정기 고사를 치르고 나서 며칠 뒤 반 게시판에는 성적 확인용 일람표가 붙곤 했다. 당연히 반 학생들 모두의 점수나 석차가 모두에게 드러났고, 우리는 자신의 성적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성적에도 관심을 가졌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우리는 반의 누구가 과목별로 전교 몇 등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보인권 차원에서도 말도 안 되는 관행이었지만, 이러한 성적 공개는 은연중에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에도 이렇게 성적을 공개하는 학교들이 있다는 사례를 듣고 변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에 혀를 차곤 한다.

하지만 꼭 성적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성적에 따른 차별은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그런 차별과 서열화가 곧 학교의 임무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성적에 따라 학교 시설 이용에 차등을 둔다는 사례들은 물론, 일상 속에서 깨알같은 모욕과 차별 대우를 겪어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수업 시간에 졸면 '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고, 성적이 나쁜 학생이 졸면 '잠도 안 자고 뭘 하고 놀았길래' 조냐고 타박과 폭력을 당하는 식이다.

2009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중·고등학생 인권 실태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가장 많이 꼽힌 학교 안 차별 사유가 학업 성적이었고 당시 중학생 59.3%, 고등학생 69.6%가 성적으로 인한 차별을 자신 또는 다른 학생이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성적에 따른 차별은 학교 밖으로 나와도 이어진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어떠했는지가 이야깃거리가 되고, 심지어 장관 청문회에서도 거론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적은 학교 서열화 속에서 출신 학교와 학력과 학벌이라는 형태로 바뀌어서 차별의 근거가 된다. 성적과 출신 학교 등은 곧 그 사람의 지능과 노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간주된다. 실제로 여러 사회 조사에서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느끼는 차별 사유 중 학력·학벌 차별은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랭크되곤 한다.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논리

학교의 이러한 작동 방식은 능력주의(meritocracy)로 정당화된다. 능력주의는 말하자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필요하고 공정하며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에 대해, '능력'이란 지능과 노력을 더한 것이며,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결과에 따라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다르게 부여하고, 종국에는 조기 지능 검사를 통해서 선별적으로 교육 기회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체제라고 묘사했다. 이처럼 학교교육은 능력주의의 핵심 장치이다.

"개인이 받는 교육의 양과 종류는 능력의 척도로 여겨지며 동시에 직업적 적격성 및 직업과 관련된 물질적인 보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사용된다. 교육은 능력주의의 핵심 동력이다."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2013), 김현정 옮김(2015), 《능력주의는 허구다》, 사이, 45쪽.

능력주의의 개념은 확장되어 지능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재능이나 아이디어, 실적과 성과 등이 '능력'에 포함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능력주의적 과정으로는 학교교육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능력주의가 학력·학벌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곤 한다. 특히 학교교육과 시험 결과가 실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커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언제나 능력을 측정하고 객관화하고 서열화할 수 있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력·학벌주의를 대신하는 능력주의란, 학력·학벌과 무관하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낸 소수를 위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는, 그 기준과 방식이 달라질지언정,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서열과 차별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학교교육은 물론 보편적으로 문해력과 지식과 교양 등을 익히고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교육은 공통의 교육과정과 계량화된 시험과 경쟁을 통해 서열과 차별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 현실이다. 또한 실제로 개인의 학업 능력이나 시험 성적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경과 계급적 차이,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차이, 운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학교교육과 일률적 시험 제도는 이러한 요인을 가리고 성적이 온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보여주는 것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시험지 앞에 오롯이 혼자서 마주하고 혼자서 답을 적어내고 채점을 받는 그 과정은 개인을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착각을 주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차별을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결과라고 정당화하는 데로 이어진다.

결국 차별을 정당화하는 체제인 능력주의가, 마치 평등과 공정의 대표인 것처럼 생각되기에 이른다. 많은 연구 결과가 고시 제도나 수능 시험 등이 가정의 경제적 여건 등에 좌우됨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일률적 시험 방식만이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공정한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능력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본래 능력주의는 평등을 위한 논리가 아니다. 인재를 등용하여 효율적으로 국가나 기관을 운영하기 위한, 선발의 효율성을 위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개인의 출세를 관리하는, 공정과 평등을 위한 것이라는 외피를 쓰면서, 경쟁과 서열에서 밀려난 이들에 대한 차별과 모욕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의 사례는, 개천에 남아 있는 수많은 미꾸라지와 송사리들의 힘든 삶을 그들의 탓인 것처럼 만드는 데 쓰인다.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가 발달하면 결국 '능력'을 상속, 세습하는 것으로 귀결되며,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념이 사라지고 차별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킨 운동의 중요한 계기는 대학교 부정 입학 의혹이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대해 공정성을 해친다거나 노력/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아니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례도 있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를 지탱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규범과 감정이 얼마나 능력주의적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내세웠던 "기회는 평등할 것,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 역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경쟁의 과정과 그 결과는 보지만 그 이전과 그 주변(사회적 배경과 불평등한 현실)은 보지 않는 것이 능력주의의 특징이다.

이러한 능력주의적 차별은, 다수의 사람들과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양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단,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서열화시키고 계층화시키는 양상을 띤다. 특히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여부, 인종 등 선천적이거나 선택 불가능한 정체성이나 특성에 따른 차별과 달리, 학업 성적이나 출신 학교 등은 후천적이고 각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모든 차별은 정당화 기제와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능력주의적 차별은 한층 더 쉽게 정당화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능력주의적 차별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대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 능력이 없는 자는 모욕당하고 차별받아도 된다고 하는 사회는 소수자에게도 불리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시정 조치나 우대 조치 역시 능력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인의 능력이 입증되는 방식이 아니라면 어떠한 혜택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차별에 맞서는 사회운동 자체가 능력주의, 공정한 경쟁을 회피하고 집단적으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고, 소수자들은 일종의 무임승차자로 비난을 받게 된다.

인권운동은 그동안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는 데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빈곤뿐만 아니라 '무능력' 역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능력주의가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두어서는 안 된다. 능력주의가 필요하거나 효율적인 순간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 전반을 조직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계속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이 능력주의적 차별을 해소하는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현재 추진하는 차별금지법안에서는 교육기관에 접근하는 것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시험 성적에 따라 입학 기회를 차등하는 현행 입시 제도를 금지하는 것으로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 아마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학교에서의 성적 차별이나 출신 학교에 따른 차별 등을 금지해야 하며 '능력에 따른 차별'이 결코 평등한 것이 아니라는 합의와 감각을 교육 영역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변화를 만들 사회적 기반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공현님은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입니다. 평등UP 기고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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