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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킴의 가족 아버지 김기철 장로와 김영란 사모는 재미교포로 한나를 포함, 모두 7명의 자녀를 입양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나 킴이다.
▲ 한나 킴의 가족 아버지 김기철 장로와 김영란 사모는 재미교포로 한나를 포함, 모두 7명의 자녀를 입양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나 킴이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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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나 킴, 나이 25세, 미혼, 캘리포니아주 UOP 약대 프로그램 과정 이수.

지난 6월 7일 받은 한나 킴의 이메일, 그의 프로필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나이였다. 그는 한국이 전쟁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때가 아닌, 국민소득이 만 달러를 돌파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뒤에 입양됐다. 그렇기에 태어난 나라나 부모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지 궁금했다.

낳은 부모를 찾으려 해보았는지 물었다

"아니요. 이 주제에 관한 제 생각은 다소 간단합니다. 생부모님들이 저를 고아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저는 가장 사랑이 많은 부모님을 만났고 정말 멋진 가족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낳은 부모님들이 저를 궁금해하고 찾는다면, 기쁘게 그들을 만날 생각은 있어요. 그렇지만 굳이 제가 그분들을 찾아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분들에게 악한 감정을 가진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 입양의 기회를 주시고,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한 결정을 내린 데 감사할 뿐이에요."

그의 대답은 혈연중심적 사고에 젖은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해외 입양인 단체에서 일하는 지인을 만나서 들은 얘기를 떠올리게 했다. 해외입양인 단체 모임에서 국내 유명 정치인이 연설하면서 "여러분에게 우리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입양인들이 굉장히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나에게 혹시라도 낳은 부모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묻자,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그분들께 매우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사랑받으면서 또 옳고 그름을 배우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낳은 부모님이 저에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지금의 결과는 매우 좋기 때문이에요."

7명의 형제 자매, 입양으로 맺어진 '최고의 인연'

한나는 5살 되던 무렵(한국나이 6세) 입양되었다. 그전까지는 김해에 있는 '방주원'이라는 작은 고아원에 머물렀다. 그는 4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을 만났다. 부모님은 한나를 입양하기 전 두세 번 이상 '방주원'으로 그를 찾아왔고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어린 아기 때 입양된 것이 아니어서 한나에게는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적인 과정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매일 밤 그에게 입양의 의미와 가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후 한나의 부모님은 6명의 아이들을 더 입양했다. 그래서 모두 7명의 남매가 함께 자라게 되었다. 혈연이 아닌 입양을 통해 맺어진 형제자매 사이는 어떨까? 남매들 사이에 갈등은 없는지 물었다.

"우리는 평범한 형제자매들처럼 싸우기도 하면서 함께 자랐어요. 정말 많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든 지금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관계가 되었어요."

한나의 남매들은 일반적인 혈연 가정보다 오히려 더 끈끈한 우애로 연결되어 있다.

"제게 형제자매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제가 하는 모든 일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특히 자매들끼리는 서로 정말 친해서 거의 매일 대화하고 소통합니다. 그건 가끔 떨어져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연락해서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 나누곤 하죠.

형제들 역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도와줍니다. 우리 모두 서로서로 매우 친해요. 물론 자주 말다툼이 있기도 했죠. 그렇지만 하루가 끝나갈 무렵에는 꼭 해결하곤 해요.

만약 우리가 각자 '서로 다른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자매들이고 형제들이었어요. 네, 그것이 바로 '우리'였습니다."

사랑으로 극복한  정체성의 혼란

그러나 '입양'이 '온전한 행복'이라고 힘주어 말하게 되기까지 그에게 온통 장밋빛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장'은 어김없이 '성장통'을 동반한다. 그 역시 그런 단련의 기간을 거쳐 빛나는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어릴 때 한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메시지는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는 혼란스럽고 대처하기 어려웠다. 한편 자라면서 점점 주변의 아이들이 자신과 달리 대부분 '입양아'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그를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10대 초반 청소년 시절에는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한 타인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그를 그냥 버려두지 않고, 한나의 의문들에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다. 이무렵 부모님이 들려준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나는 단 한 번도 '나는 우리 부모님의 자녀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부모님은 그를 배려했고, 그런 배려가 이 시기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 무렵 엄마는 내가 입양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자신들을 부모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주셨어요. 가만히 내 대답에 귀 기울이시고는 엄마는 내가 나의 탄생과 입양에 대해 의문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셨죠. 그리고 덧붙이셨어요.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입양되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부모님은 나를 자신들의 딸로서 사랑한다는 사실이라고요."
 
"입양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

한나의 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지금도 아빠가 그리운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는 아빠가 남긴 교훈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고 있다.

"너를 입양했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의 세상은 변한다."

한나의 아버지 김기철 장로의 말이다. 한나는 이 말에 대해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다.

"아마도 저를 입양하기로 결정하신 부모님과 다른 6명의 아이들의 존재 유무가 이 세상 전체에 어떤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저와 우리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끝없는 사랑과 많은 기회로 계속해서 새롭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한나의 부모님은 한인 재미교포였기 때문에, 그의 입양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해외 입양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느끼는 이러한 온도 차이와는 다르게 교포의 입양도 법적으로는 '해외 입양'에 해당되어 국내 입양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나 킴의 케이스는 우리에게 '해외 입양'에 대한 좀 더 새로운 시선을 요구한다. 해외 입양이긴 하지만, 부모는 한국인인 한나의 경우를 보며, '해외' 입양이 문제라면, 이민도 문제일 수 있지 않나? 라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가는 것과 교포 부모가 입양을 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발 더 나아가서 교포 부모가 입양하는 것과 해외의 다른 인종의 부모가 입양하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른 것일까?

해외 입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얘기할 때 흔히 '인종 간 입양'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차별이 존재하는 곳으로 아직 어리고 나약한 생명을 보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은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가 차별을 대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차별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부터 개인을 격리시킬 것인가, 그 속에 있는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해외 입양을 반대하는 이유 중 '인종 차별'만을 놓고 본다면,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상은 명확한 듯하다. 싸워야 할 대상은 '해외 입양'이 아닌, '인종 차별'일 것이다.

한나는 한국 내에 해외 입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입양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입양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으로 양육되고, 가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려 한다면 그건 분명 잘못이지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입양의 긍정적인 면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국가에 있는 아이들이 저처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양을 통해서 저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게 되었고, 입양을 통해서 저의 삶은 명백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입양되지 않은 자신의 삶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솔직히 입양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무언가를 할 만한 동기를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부모님은 자신들이 믿는 일에 헌신하셨죠. 저는 그분들의 '헌신'을 반만이라도 닮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저의 고아원 생활을 되돌아보면 학사학위, 나의 신념(신앙심), 그리고 아마도 많은 것들이 가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저의 부모님께 입양된 것에 늘 감사드립니다."

그는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다. 동생 중 한 명이 미국으로 오기 전에 그애를 만나러 간 것이 처음이었다. 자기가 지내던 고아원에 다시 가보는 것이 신이 났다고 했다. 여전히 그의 가족은 2~3년 마다 자원 봉사를 하며, 한나가 있었던 김해 방주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흔히 해외입양에 대해 얘기할 때 한국전쟁과 개발독재라는 역사적 특수성이 함께 거론된다. 그러나 한나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할 만큼 경제 규모가 커진 뒤인 90년대 말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 시기의 국내외 입양 통계를 보면, 정부가 국내 입양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폈음에도 해외입양이 줄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부끄러운 현실이라는 논의가 있다.

어쩌면 맞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단순히 우리나라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한다면 '해외 입양'을 금지하면 된다. 그러나 진짜 부끄러운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을 시설에서 홀로 크도록 방치하는 현실이다.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자랄 기회,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강고한 혈연주의 때문에 아직도 국내에서는 비밀 입양이 전체 입양의 70%에 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무조건 해외 입양을 막는 것이 정말 최선인가?

25세 한나 킴의 세상은 입양을 통해 변했다. 그는 말한다. 입양은 기회이고, 명백하게 '더 나은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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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