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작품 포스터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작품 포스터 ⓒ 쇼치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사람을 위로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곡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이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곡의 이름은 바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 곡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사실 노래와 영화 내용을 따로 놓고 보면 선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나름 잘 어울린다.

한국어로 <전장의 크리스마스>라고 소개된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 줄거리에서 전우애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퀴어 영화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게, 이 영화에서 동성애는 케이크 위에 올려진 체리처럼 본편에 살짝 덧붙여진 정도다. 그래서 이 영화가 동성애 영화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찌 됐든, 그런 모호함을 잘 표현하는 게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이다.

이 영화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범작으로 평가받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없었다면 그보다 아래였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영화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다. 그 외에도 동성애라는 소재가 당시 관객들에게 그다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82년에 남자 두 명이서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는 영화가 이만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음악으로 감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 쇼치쿠


영화의 줄거리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말, 인도네시아 자바 섬 언저리에 일본군 포로 수용소가 있다. 주인공 이름은 '로렌스(톰 콘티)'다. 로렌스는 영국 육군 중령이고 처세술의 달인인데, 그는 영어와 일어를 모두 할 줄 알기에 포로와 일본군 사이의 통역을 담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로렌스를 부른다.

로렌스가 밖으로 나가보니 네덜란드 군 포로와 일본군 휘하 조선인 병사가 바닥에 묶여 있다. 로렌스는 그곳에 서서 상황 설명을 듣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조선인 병사가 네덜란드군 포로의 독방에 숨어들어 포로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문책이 진행되던 중 조선인 병사가 할복을 시도한다. 이에, 옆에서 지켜보던 하라 중사 (기타노 다케시)가 자결을 도와주겠다며 말을 붙인다. 그때, 포로 수용소 총책임자 '요노이 대위(류이치 사카모토)'가 달려온다. 대위를 본 병사들이 그의 할복을 저지하고, 요노이 대위는 하라 중사에게 이유를 묻는다. 하라 중사는 그에게 할복을 허락하면 자살이 아니라 전사자로 처리되어 유족들에게 사망 연금이 나간다고 말한다. 이후 요노이 대위는 갈 곳이 있다며 결과를 따로 보고하라고 명령한 후 어딘가로 사라진다.

요노이 대위가 간 곳은 군사 재판장이었다. 그곳에서 요노이는 영국 육군 소령 셀리어스(데이비드 보위)를 심문한다. 결과는 사형, 그러나 요노이는 당당하게 발언하는 셀리어스에게 반해서 그를 총살하지 않고 공포탄으로 겁만 준다. 그렇게 셀리어스는 포로수용소의 일원이 되어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포로들과는 대우가 다르다. 요노이는 일본군 병사가 셀리어스를 때리고 있으면 귀신같이 찾아와 저지한다. 매질로 앓아 누운 셀리어스를 의무실로 옮겨 극진히 간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셀리어스는 당당한 성격이라 요노이는 안중에도 없다. 그쯤해서 다른 이들도 대략 요노이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어떤 병사는 셀리어스를 향해 칼을 겨누기도 한다. 대위님을 홀리는 악마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다음 장면이다. 요노이가 연병장에 모든 포로를 모아 문책하던 중, 반발이 거세 본보기로 누군가를 즉결 처분하려던 장면이다. 요노이가 묘한 감정을 품던 셀리어스가 다가와 양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칼을 높게 들어 내리치려던 요노이는 그 자리에서 졸도해버린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 쇼치쿠


영화의 세 배우

여기까지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세 배우의 조합이다. 데이비드 보위, 류이치 사카모토, 기타노 다케시. 데이비드 보위야 말할 것도 없고, 류이치 사카모토는 작곡가이자 주연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는데, 훗날 <하나비>, <소나티네> 등으로 유명 감독 반열에 오른다. 여기에 오시마 나기사 감독 자체도 무척 유명하니,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음악이나 내용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병사와 포로 간의 동성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영화 개봉 당시에는 조선인 병사를 동성애자로 묘사했다며 한국 쪽에서 거센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선 사랑을 지키려 할복을 선택한 그의 마음이 무척 애달프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가 흘러나온다. 이후로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몇 번 더 나온다. 그 장면에서 공통으로 묘사하는 건 애틋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므로 이 곡이 어떤 감정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군인으로서 나라에 보내는 사랑, 사람으로서 사람에 보내는 사랑. 두 가지가 합쳐진 감정일 것이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 쇼치쿠


애국심의 두 가지 종류

여기서, 군인으로서 나라에 보내는 사랑은 여러 방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두 집단의 대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품에서 연합군과 일본군은 군에 복무하는 이유가 다르다. 일본군이 천황으로 대변되는 의무감으로 복무한다면, 연합군은 하느님의 자비에 따라 자유를 되찾아주려 한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히면 할복하겠다고 말하지만 연합군은 입을 닫고 고문을 받겠다고 말한다. 둘다 종교적이지만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요노이는 일본군의 방식대로 포로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포로들에게 금식을 명령할 땐 자신도 같이 금식한다. 그나마도 멍하니 있지 않고 무술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말하자면, 전쟁만 아니면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요노이는 전쟁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다. 사랑까지는 몰라도 나름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적군이어서 몸도 마음도 같이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두 가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라에 충성해야 하기도 하지만, 셀리어스에게도 충성하고 싶어한다.

요노이가 셀리어스에게 호감을 품은 것은 그의 당당함이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어서다. 셀리어스가 떠올리는 과거 회상에서 그것을 엿볼 수가 있다. 셀리어스는 학창시절에 나름 잘나가는 학생이었고, 알량한 자존심으로 따돌림당하는 동생을 모른 체했다. 그 후로 동생은 평소에 부르던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셀리어스는 자책감에 빠져 이후로 동생을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동생은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군대 또한 개인의 목소리가 묻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셀리어스는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독단에 가까운 행동이고, 그만큼 일본군에게 두들겨 맞는다. 그러나 죽음조차 그를 막을 수는 없다. 요노이와 셀리어스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다. 그 차이가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겠지만, 그곳이 전장이기에 두 사람은 어울릴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건 '어울릴 수 있다'는 쪽인 듯하다. 영화에서 하라 중사가 갑작스레 셀리어스를 독방에서 풀어주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와보라고 말한다. 셀리어스는 로렌스를 통역으로 대동하고 방에 들어선다. 셀리어스가 어리둥절하여 하라 중사에게 묻자, 하라 중사는 술에 취한 채로 이렇게 답한다.

"자네. 크리스마스 아버지를 알아? 오늘 밤은 내가 크리스마스 아버지야."

그리고 자유로워진 셀리어스가 방에 나가기 전, 하라 중사가 그들을 불러 세우며 이 영화의 제목을 말한다. "메리크리스마스 로렌스, 메리크리스마스."

종교라는 게 믿음이자 사랑이라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마음껏 베푸는 게 미덕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나보다 당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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