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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서울 한복판에 80년 넘은 한옥을 사서, 내가 바라던 대로 고쳐서 살겠다는 계획은 현실이 되어 눈앞에서 착착 진행이 되어갔다. 하지만, 착착? 모든 일이 순조롭게,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게 어디 쉬운가?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그렇게 맘을 그렇게 먹어야 사는 게 덜 고단하다.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한옥 대수선을 둘러싸고, 여지없이! 뜻밖의 복병이 엉뚱한 곳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시의 한옥지원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나는 한옥대수선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했다. 이 말은 곧, 한옥지원 프로그램이 나의 한옥대수선 프로젝트에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한옥지원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에 문제가 생기면 한옥대수선 프로젝트 진행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 모든 노력이란, 거듭되는 확인에서 출발한다.

매매계약서를 쓰기 전, 이 프로그램과 관련한 관공서와 기관의 거의 모든 유관 부서에 전화를 했고, 매우 집요한 상담을 통해 모든 절차와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들은 말을 또 들으며 교차 점검을 했고, 확인했다. 

그렇게 준비를 한 연후에 이를 위해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다. 건축설계를 맡아준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은 물론 시공을 해주시는 목수님과 모든 관계자들의 모든 작업의 전제는 바로 서울시 한옥지원프로그램 심사의 무사통과, 한도 안에서 최대의 지원금을 받는 것에 맞춰졌다. 

약 8개월여에 걸쳐 준비를 마쳤고, 지난 3월 나는 드디어 '심사 결과 원하는 금액의 지원과 융자를 받게 되었다'는 엄현정 소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시에서 보내준 최종 공문에는 내게 지원해줄 지원금과 융자금의 액수가 적혀 있었고, 지정 은행의 모든 지점에 가서 신청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는 이제 모든 난코스를 통과하여, 남은 일은 착착 진행될 공사현장만 간혹 들여다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서울시 한옥지원 프로그램, 최종 공문까지 받았는데


서울시에서 지원해주는 융자금액이 명시된 공문을 들고, 동네 가까이에 있는 해당 은행의 지점을 찾았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은행에서 간단히 일을 본 뒤 자축의 의미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날 하루종일 쫄쫄 굶었다.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내가 사는 신도시 해당 은행 지점 대출 관련 업무 담당자는 한옥지원프로그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해당 은행 본점 담당자의 연락처를 안내해줬다. 나는 호기롭게 그분의 연락처를 건넸고, 나와 마주 앉은 창구의 담당자는 그분과 통화를 마친 뒤 내게 필요한 서류를 안내해줬다. 

거기서부터 나의 '멘붕'은 시작되었다. 서류 목록에는 '재직증명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옥 매매계약서를 쓰기 전 나는 유관 기관과 부서에 모든 확인을 거쳤노라 말했다. 가장 중요하게 체크한 것은 서울시 지원금과 융자금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될 소지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었다. 

당시 내게 안내해준 분들은 개인의 신용에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해당 건물을 담보로 타 금융기관에 대출을 받은 내역이 있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어디에서도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떤 금융기관에도 연체나 미납의 전력이 거의 없고, 오래 거래해온 은행에서는 분기마다 VIP회원으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즉, 금융권에서 나의 신용을 의심할 만한 전력이 없었다.

타 금융기관에 대출을 받은 내역이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해서, 내가 매매한 한옥에 집주인 어르신이 받아놓은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 말소하는 것을 매매의 조건으로 제시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기존의 대출 조건이 좋아서 이왕이면 승계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지만, 단 1초의 고려도 하지 않았다. 행여나 그것 때문에 서울시 지원프로그램을 받는 데 문제가 된다면 아니 되옵니다,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결국 부질없었다. 내가 서울시 한옥지원프로그램을 알아보고, 한옥을 매매할 때로부터, 모든 심사를 받고 최종 결과 통보를 받을 때까지는 약 8개월여의 시간차가 있었다. 8개월 전까지 갖춰야 할 서류 목록에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재직증명서가 8개월 후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필요한 필수불가결의 요건으로 제시되었다. 

내가 대출을 처음 받아보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아파트 매매의 전제는 은행의 도움이다. 그것 없이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상환능력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담보로 설정할 아파트 매매 계약서, 신용카드 사용내역, 건강보험 납부 사실의 확인 등으로 별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했다.

게다가 서울시의 지원 프로그램은 서울시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이지만, 대출의 절차와 상환 업무의 편의성을 위해 은행이 그 업무를 대신 해주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바도 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갭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한옥을 매입해서 큰 돈을 들여 수리를 하겠다는 서민들을 돕기 위해 이 프로그램이 운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시의 예산인 데다, 상환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시작할 엄두를 안 냈을 테니, 나는 은행의 절차는 그저 업무상의 편의를 위한 절차일 뿐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도 했다.    

은행은 '없는' 재직증명서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창구 건너편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으나,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은행이 재직증명서를 요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융자금 상환 능력의 검증. 그렇다면 약 10년 동안 매우 낮은 금리로 지원해주는 그 융자금을 상환할 능력이 내게 있음을 증명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것도 그렇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과거에 얼마를 벌었던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은행은 마치 녹음기처럼 한 달에 단돈 100만 원이라도 꾸준히 벌고 있다는, 재직증명서만을 요구했다.

애초에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한옥 매매계약을 할 때, 내가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볼 때 재직증명서가 필수조건이었다면, 이런 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어쩌면 시작조차 안했을지도 모른다. 서울시 지원을 받지 않고, 한옥 대수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건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에 맞춰 나는 나대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준비고 뭐고 간에 남편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한옥은 나의 오랜 로망이니, 이 집의 계약은 나의 이름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20여 년 동안 손쉽게 제출할 수 있던 재직증명서를, 이제는 손에 쥘 수 없는 재직증명서를, 8개월 전에는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느닷없이 내놓으라니, 우리로서는 멘붕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보름 후에 설계와 공사비의 중간 정산을 해야 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금은 초반 비용으로 모두 나간 상태였다. 당장 서울시 융자금을 받아 치를 예정이었던 중간 정산을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그게 없으면 당장 공사를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로 인해 대출 조건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폭등하는 집값을 바로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긴 했겠지만, 투기와는 관계 없는 내가 겪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심사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와 정작 지원을 받을 때 규정이 달라질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렇다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원망과 탄식은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어디선가 급전을 만들어놓아야 했다. 그날 점심이고 뭐고 간에, 나는 한옥 관련 대출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서울 모 지점 담당자를 무작정 찾아갔다. 

"제가 서울시 한옥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융자금을 받는 것으로 심사 결과를 받았는데, 8개월여 전에는 따로 안내를 받지 못했던 재직증명서가 필수조건이라고 하네요. 대출 상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걸로 제시하면 안 될까요? 저는 얼마 후에 개인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인데요. 그건 고려가 안 될까요? 개인사업을 시작해서 한두 달 후에 몇백 만 원의 매출이 발생하면 그걸로 제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은행에서는 재직증명서가 없으면 대출 심사 자체가 안 된다고 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다른 대출 상품을 알아보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개인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아무리 매출이 크게 발생해도 내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이후에야 나의 소득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은행에서 원하는 게 나의 상환능력 유무의 확인인지, 재직증명서 문서 그 자체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보시라고, 나의 건강보험료 납입 사실을 확인해보라고 해도, 창구에서 돌아오는 답은 재직증명서, 재직증명서, 재직증명서를 내라는 것이었다. 회사 그만둔 지 몇 달이 지난 내가 무슨 수로 재직증명서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이제 알아볼 수 있는 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진정한 멘붕과 혼란은 이제부터였다. 

1. 그동안 아파트만 사고 팔아온 나는 단독주택이 담보대출의 현실에서 얼마나 불리한가에 대해 처음 실감했다.

단독주택은 일단 매매가 총액에서 담보로 인정 받는  비율이 아파트에 비해 현저히 낮다. 여기에 방의 개수에 따라 차감이 되는 금액을 빼고 나면 담보대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거의 제로였다.

나는 기존 대출을 승계하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 이 순간에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작은 아파트 한 채와 거의 비슷한 가격의 집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담보로 한 푼도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물었지만 창구 건너에서는 그저 대략 난감의 어정쩡한 미소만 내게 건넸다. 

2. 게다가 이미 철거를 한 나의 집은 주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은행의 입장이었다.  나는 기가 막히긴 했지만,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앙상한 목구조만 남아 있는 상태를 놓고 집이라고 우기는 게 나부터도 다소 억지 같았다. 그런 내게 누군가 집을 지을 예정인 대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해줬다. 다시 희망을 품고, 은행에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땅 위에 기둥이 서 있으니 대지가 아니어서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 순간 폭발했다. 

"철거를 했으니 집이 아니고, 기둥이 서 있으니 땅이 아니면, 지금 이곳은 집인가요? 땅인가요?"

창구 직원은 답을 하지 못했다. 

3. 신용대출을 알아보려니, 더 기가 막혔다. 한마디로 은행에서는 나의 대출 상환 능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내가 상담을 했던 3개 은행의 약 5개 지점의 대출 상담 직원들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차이를 깨달았던 건 남편과 동행했을 때였다. 혼자 은행에 갔을 때, 내가 재직증명서를 낼 수 없다는 걸 입밖에 꺼내는 순간,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남편과 동행했을 때는 달랐다. 내게는 건네지도 않던 질문이 남편에게는 건네졌다. 이전 소득을 증명할 자료를 가져와달라, 신용카드 사용액을 증명할 자료 등을 가져와달라 등등이었다. 차이는 하나였다. 그들의 눈에 나는 무직의 나이 든 여성, 또는 현금 수입 제로인 가정주부였다.

내가 불과 8개월여 전에 얼마를 벌었던 사람이고, 앞으로 개인사업을 시작할 거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개인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단 한 사람이 나에게 되물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느냐며, 학습지 교사 같은 거냐고 물었다.  

나와 남편이 함께 가면 창구 직원들은 내가 아닌 남편을 향해 말을 건넸다. 창구 직원의 성별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창구 건너편의 직원이 여자였음에도 여성인 나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애초에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매우 역력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물론, 그만둔 뒤에도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나의 직업이 가정주부로 전환된다는 것도 생각을 못했고, 조직 바깥에서 무직의 여성, 또는 가정주부가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바가 없었다. 이건 회사 다닐 때 쉬는 날, 헐렁한 옷차림으로 집 앞에 나갔다가 동네 아이로부터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있어도 대출은 안 되는 현실


나는 20여 년 넘게 직장을 다녔고, 직장의 직급이 내 이름 뒤에 붙는 일상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결혼은 했으나 가정주부로 살아본 적이 없고, 아이가 없으니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경험해볼 일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사는 것 또한 내게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남편과 나의 경제권의 분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이름으로 단돈 백 만 원도 대출을 받지 못했다. 내가 권유 받은 건 제2금융권, 그리고 저축은행 상품이었다. 내 명의로 되어 있는 한옥의 대수선을 위해 돈을 빌리는데, 2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통해 이미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살아온 나는 약 8개월여 직장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은행의 어떤 대출 프로그램도 활용할 수 없었다. 

나는 시시때때로 흘러나오는, 여성과 주부를 위해 빨리빨리 대출을 해드린다는 금융업 종사업체의 광고가 왜 그렇게 여성과 주부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남편 명의로 받은 대출금으로 공사비와 설계비의 중간 정산의 급한 불을 겨우겨우 끌 수 있었다. 당장 다음 중간 정산이 걱정이긴 했으나, 일단 급한 불을 끈 것에 안도해야 했다. 

나는 이번에 못 받은 서울시 지원 융자금을, 내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이후에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담당 공무원에게 요청했다. 이 융자금을 못 받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차피 서울시 예산에서 편성이 된 것이니 내년으로 집행을 유예해달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사업자등록을 하고, 거래처 등과 주고 받은 전자계산서를 정상적으로 국세청을 통해 처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에서는 그걸로 나의 소득을 확인할 수는 없노라고 했기 때문이다. 은행은 여전히 매우 친절했으나, 친절하지 않았다. 나는 이 절차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의 상환능력을 확인하는 게 목적인지, 정해진 양식의 서류를 채우는 게 목적인지. 창구 직원과 옥신각신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들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이 그렇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원하는 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도 원하는 내 대출금 상환능력의 증명은 내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급한 불은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하는 것으로 하고, 내년에라도 융자지원금을 받는 것이 그나마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치였다.  

서울시에서는 며칠 후 관련 확인서를 보내주었다.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달려 있었다. 지금은 가능하지만, 내년에 내가 신청할 무렵, 은행의 대출규정이나 조례 규정 등이 바뀌면 지원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금액의 조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단서였다.

이걸 또 담당 공무원과 옥신각신해봐야 소용이 없다. 역시 규정이 그렇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원하는 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누구도 나에게 무례하거나 불친절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멘붕에 빠진 채로 매우 견고한 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정책의 변화로 내 일상은 다시 한 번 요동을 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내년에 나는 과연 올해 못 받은 융자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저금리의 혜택을 눈앞에서 놓치고, 앞으로 한동안 비싼 이자를 내면서 치르고 있는 나의 이 격동의 날들은 언제 어떻게 해결이 될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복병의 출현, 극강의 멘붕을 통해 내가 딛고 선 땅이 어떤 곳인지 자각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 건 별개로 하고 말이다. 

이 와중에도 매우 성실한 목수님과 매우 치밀한 소장님 덕분에 공사는, 착착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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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