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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겪고 나면 심리에 변화가 생긴다. 대규모 인명사고나 자연재해도 그렇지만, 전쟁 같은 정치적 사건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매우 크다. 이런 심리구조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종교 교세의 변동이다.

순수한 교리와 인간적인 포교로 교세를 확장하는 종교도 적지 않지만, 상당수 종교들은 대중 심리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교세가 좌지우지된다. 종교는 인간 심리와 관련된 영역이므로, 심리에 작용을 미치는 정치적 사건에 따라 교세가 변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일례로,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열강의 시장개방(개항) 요구가 거세지고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서양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이 확산되던 19세기 중반에, 조선에서 동학이라는 신종교가 출현했다. 하지만, 조선·청나라·일본 3국이 모두 개항하여 동아시아에서 서양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뒤로는 조선에서 기독교 신자가 급속도 증가했다.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으로 한반도가 혼란스러웠던 1953년에는, 장로교가 진보적인 기독교 장로회(기장)와 보수적인 예수교 장로회(예장)로 갈라졌다. 대중 심리에 영향을 주는 정치변화가 교세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도 그랬다. 3년간의 동족상잔은 한국인들의 심리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전쟁.
 한국전쟁.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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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전도활동을 하자면, 전쟁을 경험한 대중의 심리구조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계기로 대중은 현실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욕구를 갖게 됐다. 이것은 상당수의 한국 목회자들이 기복신앙으로 기울게 된 원인 중 하나다. 목원대학교 신학과 김흥수 교수의 '기복신앙: 한국전쟁 이후의 기독교 변동'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신도들은 전쟁의 참상과 그 여파, 그리고 산업사회의 경쟁 가운데서 개인의 생존과 안정을 이유로 더 현실적인 위로와 축복의 복음을 선호했으며, 그런 심리를 파악한 교역자들은 기도원 집회나 부흥회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설교에서도 복(福)을 전하는 설교를 해왔다." - 2000년에 <한국교회사 학회지> 제9집에 실린 논문.

한국에서는 인간의 원죄나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는 목사보다, 인간 상처의 치유나 하나님의 축복을 설교하는 목사가 더 많은 신도들을 모은다. 전쟁의 상처를 겪은 지역에서 부득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종교 현상이다.

전쟁이 대중한테 남긴 또 다른 흔적은 반공 이념이다. 이전에 공산주의를 좋아했던 싫어했건 간에, 북한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가족과 재산과 직장과 고향을 잃었다면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반공 이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를 진전시키는 속에서도 전쟁세대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전쟁으로 인한 반공 논리의 확산 속에서, 이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려웠다. 신자들도 모이지 않고 정치 상황도 불리했다. 이런 환경에서 목회를 하자면, 반공이념에 대해 적어도 반대는 하지 말아야 했다. 양편승 선문대학교 교수의 '한국전쟁이 신종교 형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남한 지역에서는 소수의 개신교 사회주의자들이 월북하거나 폭력적으로 제거되거나 공개적으로 전향하면서, 남한의 개신교는 공격적인 반공주의자들의 집결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개신교의 신념체계가 사탄론과 종말론, 선민의식과 결합되면서, 반공담론 자체가 구원론의 일부로 발전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 2011년에 <신종교연구> 제25집에 실린 논문.

목사가 하나님에 대한 기도 시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벌해야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연설해도 신도들이 별로 이상해 하지 않을 정도이니, '반공담론 자체가 구원론의 일부로 발전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는 위 논문의 언급이 과장스럽다고 말하기도 힘들 것이다.

대동강철교 위의 피난민들.
 대동강철교 위의 피난민들.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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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쟁으로 확산된 게 기복신앙과 반공이념뿐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못지않은 선민의식도 포함된다. 대형 재난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들은 거의 다 재앙을 당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스스로를 특별히 여기는 선민의식으로 발전하기 쉽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선민의식을 무시하는 사람을 상대조차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선민의식은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일부 국민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줬다. 극심한 전쟁 고통 속에서 무신론자가 된 사람도 적지 않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무엇이 우리를 거기서 지켜주었는가?'를 사유하게 됐다. 자신들에 대한 신의 특별한 은총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대중 속에 적지 않게 유포된 이런 선민의식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한민족과 한반도를 신성시하도록 만드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양편승 교수의 논문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선민의식은 세계적 냉전체제에서 남한이 공산주의 세력과 대결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기독교인들은 한반도 중심의 세계 구원, 한반도에서의 재림주(메시야) 출현, 예수의 한반도 재림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은 성경 내용과 모순된다. 이스라엘이라면 몰라도 한반도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놓을 만한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한반도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목회자들은 기존 교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새로운 교파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신비주의적 신흥 기독교 분파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1951년 신동수의 신권도학연구소, 1953년 이경수의 계룡산 정심원과 현광수의 천마산 기도원, 1954년 문선명의 통일교와 노광공의 동방교, 1955년 박태선의 전도관과 김월성의 예수님개혁그리스도의교회, 1956년 박연용의 그리스도 구원선 신생원 등이 생겨난 것은, 기존 기독교의 틀로는 한민족 선민주의를 담을 수 없었던 현실을 반영한다.

통일교 설립자 문선명.
 통일교 설립자 문선명.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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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에서 가장 많이 두각을 보인 신흥 기독교가 바로 통일교다. 통일교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교세를 갖고 있는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바로 그 통일교가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은, 기복신앙과 반공이념에 더해 한민족 선민주의까지 골고루 갖춘 상태에서 한국전쟁 이후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일교가 한국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은 통일교 내부에서도 인정된다. 위의 양편승 교수도 통일교 학교인 선문대학교 교수다. 위 논문에 이런 대목도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수난을 통하여 통일교의 교리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메시아 대망 신앙과 천년왕국 신앙이 민족주의 정서와 결합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중략) 통일교가 전개하는 주요 활동들이 승공(반공)활동, 남북통일운동, 평화운동, 유엔갱신운동, 초종교 초국가운동 등이었음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통일교의 반공주의는 반공의 본고장인 미국인들까지 당황케 할 정도다. 미국의 반공주의를 나약하다며 꾸짖을 정도로 통일교는 반공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통일교의 한민족 중심주의에도 혀를 내두르지만, 자기네보다 더한 통일교 반공주의에도 혀를 내두른다. 도널드 프레이저가 위원장인 미국 하원 국제기구소위원회가 1978년 발간한 <한미관계 보고서>, 일명 <프레이저 보고서>에도 통일교 반공주의가 거론됐을 정도다.

"반공주의는 문선명이 전 세계적 신정국가를 지지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신조 중 몇몇을 거부하는 핵심 원인이다. 문선명은 미국 스타일의 민주주의는 공산주의 성장에 좋은 터전이 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는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김일성을 패배시켜야 하고, 마오쩌둥을 쳐야 하며, 소련을 부숴야만 합니다.'"

미국식 반공주의까지 폄하하며 반공의 극을 달리는 통일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한국 정권이 있다. 바로 박정희 정권이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이 정권의 브레인인 김종필이 통일교 박보희가 관리하는 한국문화자유재단을 통해 반공이념 전파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조달했다고 말한다.

일부 보수파 기독교인들은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지금도 열렬히 지지하지만, 정작 박정희는 주류 기독교와 거리를 둔 통일교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 기독교 내에는, 한국전쟁 이후 확산된 기복신앙·선민의식·반공이념에 편승해 교세를 넓힌 세력이 적지 않다. '한국전쟁 특수'가 신흥 기독교 확산에 도움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북한과 미국의 대화 국면이 깊어지면, 한반도 냉전구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국 기독교가 의존했던 반공이념도 덩달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도 새로운 상황에 대비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처럼 통일 운동권이 냉전구도를 약화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 세계 최강인 미국 정부가 나서서 이 구도를 약화시킨다면, 한국 보수세력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냉전에 의존했던 일부 기독교 세력이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인한 대중의 심리변동에 적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이상 친박집회 참여로 에너지를 허비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증명된 것처럼, 평화에 대한 한국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 내 보수세력이 의존했던 냉전 구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0년간 의존했던 '한국전쟁 특수' 기대감을 이제는 과감히 버릴 때가 된 것이다.


태그:#한국전쟁, #6.25 전쟁, #기독교, #통일교, #문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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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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