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래 된 나무는 언제라도 힘이 들 때 찾아가면 위로를 해준다. 향나무 두 그루가 함께 비스듬히 옆으로 자라고 있는 순천 천자암의 쌍향수 곱향나무다.
 오래 된 나무는 언제라도 힘이 들 때 찾아가면 위로를 해준다. 향나무 두 그루가 함께 비스듬히 옆으로 자라고 있는 순천 천자암의 쌍향수 곱향나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긴장감 속에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이었다. 모든 생각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날이다. 어디로 갈까? 호젓한 숲길이 떠오른다. 한적한 숲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나무를 찾아간다. 언제라도 힘이 들 때 찾아가면 위로해 주는 나무다. 조계산 자락 천자암(天子庵)으로 간다. 순천시 송광사에 딸린 암자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에 속한다.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의 천수답 풍경. 천자암으로 가는 길목, 이읍마을에서 만난다.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의 천수답 풍경. 천자암으로 가는 길목, 이읍마을에서 만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으로 가는 길. 차도, 사람도 만나기 어렵다. 산길을 혼자서 차지하는 호사를 누린다.
 천자암으로 가는 길. 차도, 사람도 만나기 어렵다. 산길을 혼자서 차지하는 호사를 누린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으로 가는 길은 순천시 송광면 이읍마을에서 시작된다. 고풍스런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 계단식 논을 지난다. 돌담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모내기를 끝낸 산골 천수답도 그림 같은 풍경이다. 마을을 지나 암자로 가는 길이 비좁다. 걱정은 안 된다.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다. 암자로 가는 산길을 혼자서 차지하는 호사를 누린다.

마을 뒤 산중턱에 차를 두고 산길을 걷는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 가파르다. 발걸음을 싱그러운 초록이 위무해준다. 길가에 감나무와 밤나무 쥐똥나무가 자라고 있다. 엉겅퀴 씀바귀 달래꽃도 환한 미소로 반긴다. 때늦은 피나물도 진노랑 꽃으로 인사를 건넨다. 발걸음이 가볍다.

천자암 주차장에 이르니 급경사의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거의 45도 각도로 이어진다. 숨이 턱밑까지 찬다. 금세 이마에 땀이 맺힌다. 발걸음도 팍팍해 힘에 겨워한다. 숲에서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결이 땀방울을 식혀준다. 암자에서 만날 쌍향수(곱향나무) 생각에 마음이 발걸음을 앞서 간다.

요사채와 어우러진 쌍향수 곱향나무. 천자암의 뒤뜰 성산각 옆에서 자라고 있다.
 요사채와 어우러진 쌍향수 곱향나무. 천자암의 뒤뜰 성산각 옆에서 자라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이다. 나의 눈은 요사채가 아닌, 뒤뜰 성산각(星山閣) 옆에서 자라고 있는 쌍향수를 먼저 찾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쌍향수가 장대하다. 볼 때마다 예사롭지 않는 나무다. 쌍향수 덕에 암자가 선경처럼 느껴진다.

쌍향수는 두 그루의 곱향나무로 이뤄져 있다.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가 같은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언뜻 커다란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넝쿨처럼 보인다. 흡사 실타래나 엿가락처럼 꼬인 것 같다. 아이스크림 '스크류바' 같기도 하다. 두 마리의 용이 한데 승천이라도 하는 형상이다. 모양새가 신묘하다. 조형미 빼어난 조각작품 같다.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니 나무가 더 크고 우람하게 보인다. 별스런 생김새에 반해 한참 이리저리 뜯어본다. 나무의 키가 12.5m에 이른다. 눈높이 둥치의 둘레는 3.98m, 3.24m에 이른다.

가지도 멋스럽게 퍼져 있다. 요사채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향기도 진하고 그윽하다. 수령이 800여 년으로 알려져 있다. 향나무 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으로 문화적·생물학적 가치도 높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됐다.

천자암의 쌍향수 곱향나무.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가 같은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모양새가 신묘하다.
 천자암의 쌍향수 곱향나무.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가 같은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모양새가 신묘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의 쌍향수는 두 그루의 곱향나무로 이뤄져 있다.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의 모양새가 신묘하다.
 천자암의 쌍향수는 두 그루의 곱향나무로 이뤄져 있다.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의 모양새가 신묘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곱향나무는 본디 백두산에서 자라는 귀한 나무다. 잎이 바늘처럼 뾰족하다. 침엽수다. 잎의 길이는 아주 짧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딘다. 이 나무가 천자암에 서 있는 연유를 전설에서 엿볼 수 있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1158-1210)과 관련된다. 지눌은 송광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던 승려다. 지눌이 중국 금나라에 건너갔을 때다. 왕비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제자가 된 금의 왕자 담당국사와 함께 지팡이 하나씩 짚고 돌아왔다.

두 스님은 지금의 천자암 자리에 암자를 짓기로 마음먹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렸다. 가지를 뻗더니 잎이 나며 무럭무럭 자랐다는 이야기다.

쌍향수 곱향나무는 실타래나 엿가락처럼 꼬여 있다. 아이스크림 ‘스크류바’ 같기도 하다. 조형미 빼어난 조각작품 같다.
 쌍향수 곱향나무는 실타래나 엿가락처럼 꼬여 있다. 아이스크림 ‘스크류바’ 같기도 하다. 조형미 빼어난 조각작품 같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두 나무는 나란히 사이좋게 자라 800년을 살았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닮은꼴로 함께 살아 '쌍향수(雙香樹)'로 이름 붙었다.

호사가들은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보조국사와 담당국사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88호가 된 것도 꼬임이 많은 아라비아숫자 '88'의 모양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문화재청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선정됐다.

쌍향수는 한 사람이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밀거나 한결같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전해진다. 한손을 나무에 대고 흔들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내려온다. 하지만 나무의 훼손을 우려해 '나무 밀기'를 금지하고 있다. 몇 해 전 울타리를 쳐놓은 이유다.

두 그루의 곱향나무로 이뤄진 쌍향수.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가 같은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며 전각과 어우러진다.
 두 그루의 곱향나무로 이뤄진 쌍향수. 나란히 다정하게 선 나무가 같은 기울기로 비스듬히 자라며 전각과 어우러진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의 뒤뜰 성산각 옆에서 자라고 있는 쌍향수. 절집의 요사채보다도 먼저 눈길을 끈다.
 천자암의 뒤뜰 성산각 옆에서 자라고 있는 쌍향수. 절집의 요사채보다도 먼저 눈길을 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천자암의 요사채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스러졌다. 지금의 전각은 1974년 이곳에 들어온 활안스님의 공력으로 하나씩 복원됐다. 법당을 올리고 법왕루 종각 나한전 산신각을 갖췄다. 주변에 채마밭과 감자밭이 있고, 야생의 차나무도 자라고 있다.

쌍향수의 뿌리를 휘감고 흐르는 천자암의 약수 한 모금도 정갈하다. 약수에서 곱향나무 특유의 향이 묻어나는 것 같다. 암자는 사철 언제라도 호젓하다. 산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산새소리도 잦아든다. 암자가 더욱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선방에 불을 지피던 작은 스님이 저녁공양을 권한다.

천자암 풍경. 요사채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스러졌다. 지금의 전각은 1974년 이곳에 들어온 활안스님의 공력으로 하나씩 복원됐다.
 천자암 풍경. 요사채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스러졌다. 지금의 전각은 1974년 이곳에 들어온 활안스님의 공력으로 하나씩 복원됐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자암, #쌍향수, #곱향나무, #이읍리, #활안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