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 포스터.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 포스터. ⓒ 더블앤조이 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한 갈리시아인(루이스 토사 분)와 우루과이인(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분) 등 6명의 강도가 발렌시아의 메디테라네오 은행을 습격한다. 재빨리 돈을 훔친 후에 미리 파두었던 지하 터널로 도망가려던 그들의 계획은 폭우로 인해 탈출 경로가 물에 잠기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인질을 두고 경찰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이던 은행 강도단은 우연히 은행의 314번 개인 비밀금고에 유명 정치인 소리아노의 비밀이 담긴 하드디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사 탈출을 꿈꾸는 은행 강도단, 일망타진을 노리는 경찰들, 하드디스크를 손에 넣으려는 정치인들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서서히 막을 연다.

인질 강도단들의 이야기가 정치 스릴러로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의 한 장면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의 한 장면 ⓒ 더블앤조이 픽쳐스


스페인에서 만든 스릴러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는 은행 습격 후 인질을 잡은 강도단이 유력 정치인의 비밀이 담긴 금고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경찰, 정치 세력과의 숨 막히는 싸움을 펼친다는 내용을 그린다. 영화의 초반부는 은행 강도를 소재로 삼은 보통의 강탈 영화가 보여주는 뻔한 공식에 충실한다. 전형적인 전개로 흐르던 영화는 터널이 물에 잠기고 비밀금고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정치 스릴러로 색조가 바뀐다.

영화는 하드디스크를 둘러싼 '의심'으로 이야기의 힘을 얻는다. 갈리시아인과 우루과이인은 서로 언제, 누구에게 비밀금고의 정보를 얻었는지 캐묻고 의심한다. 정치 권력은 은행 강도단이 가지고 있는 하드디스크에 진짜로 총리가 연루된 동영상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는다. 인물과 세력 사이의 의심은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이어진다. 강탈에서 정치 스릴러로 장르를 바꾸며 긴장감도 팽팽하게 유지한다.

영화엔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가장 눈여겨볼 배우는 '갈리시아인'역을 맡은 루이스 토사다. 그는 <셀 211> <슬립타이트>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 <플랜비> 등 굵직한 장르 영화에서 열연하며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에서 루이스 토사는 치밀함과 의심, 여유와 카리스마 등 다채로운 연기색깔을 선보이며 극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는 정치 스릴러의 배경에 스페인의 사회 문제를 녹였다. 각본을 쓴 호르헤 게리카에체베리아는 <야수의 날><커먼웰스><마녀사냥꾼>과 근작 <더 바>까지 스페인이 배출한 세계적인 거장인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대부분 작품의 시나리오를 맡으며 명성을 떨친 바 있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호르헤 게리카에체베리아는 스페인의 경제 위기와 부패한 정치인을 강탈 영화의 틀에 끌어들여 '도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의 스페인 원제는 < Cien anos de perdon >으로 "도둑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는 100년을 용서 받는다"는 스페인의 속담을 그대로 가져왔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인사이드 맨>의 영향도 감지된다.

부패한 정치세력과 경제체제야말로 진짜 도둑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의 한 장면.

영화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의 한 장면. ⓒ 더블앤조이 픽쳐스


연출을 맡은 다니엘 칼파소로 감독은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에 "스페인의 현재를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처럼 장르 안에서 2012년 스페인의 금융 위기 여파를 조명을 시도한다. 은행 강도단의 어떤 하루에 스페인의 현주소를 반영하여 다른 스페인산 강탈 영화인 <터널>과 <플랜비>와 차별을 이룬다.

영화의 첫 장면엔 매달 대출금을 꾸준히 상환했지만, 몇 번 연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집을 빼앗기거나 계좌가 동결되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는 비정한 금융 시스템과 현대판 '로빈 후드'로 변하는 은행 강도단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부패한 정치 세력과 결탁한 경제체제야말로 진정한 '도둑'이라고 외친다.

영화의 시각은 "은행은 효과적으로 도적질하는 도둑"이라는 브레히트의 마르크시즘적 견해와 일치한다. 다니엘 칼파소로 감독은 "우리는 오늘날 정글에 살고 있다. 나는 더 나아지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그는 로빈 후드의 얼굴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를 긍정한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는 스페인에서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 같다. 그만큼 장르 영화의 재미를 영리하게 포착한다. 한편으로는 가장 스페인다운 장르 영화로 느껴진다. 스페인 사회를 반영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스틸 더 머니: 314 비밀금고>는 스페인 장르 영화의 저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다. 또한, <더 바디>나 <인비저블 게스트>처럼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한다면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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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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