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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뛰어난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해 왔다. 지난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5cm 남짓한 콘크리트 장벽을 넘어 깜짝 방북한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다.

그러나 노동으로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우선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환경미화원 강아무개씨 등 37명이 경기도 성남시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옛 근로기준법상 휴일 근로는 연장 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원고인 강씨 등은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4시간씩 근무했다. 그러나 성남시는 휴일근로수당만 주고 연장근로수당은 주지 않았고, 이에 강씨 등은 2008년 소송을 냈다. 강씨 등은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반면 대법원은 1, 2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쟁점은 1주일에 휴일이 포함되는지의 여부다. 옛 근로기준법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휴일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노동계는 휴일 근로이자 연장 근로라고 맞섰다. 만약 정부 입장대로라면 휴일근로에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의 해석에 따른다면 지급액은 200%로 늘어난다.

이런 논란을 줄이기 위해 지난 2월 통과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주일을 5일이 아니라 7일'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노동자가 임금 채권 소멸 시효(3년)가 지나기 전 미지급 가산 수당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휴일 근로에 따른 가산임금과 연장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은 중복해 지급받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단은 노동계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대법원 판단이 있기 하루 전인 21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의 시행은 오는 7월 1일 시행하되 단속과 처벌은 6개월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근로시간 단축제 시행을 앞두고 줄곧 단속과 처벌을 유예해줄 것을 촉구했고, 당·정·청은 경총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경총 입장에서는 당·정·청의 결정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에 경총은 즉각 "근로시간 단축의 성공적이고 조속한 안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온 보수 언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법 개정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1일 자 사설에 이렇게 적었다.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상태에서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 제도에 대해 정부가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 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고용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반발이 잇따르자 일부 후퇴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온갖 혼선에도 불구하고 '7월 1일 강행' 방침을 고수해 결국 총리가 나서야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부작용을 보완할 6개월의 시간을 번 셈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 300인 이상 작업장에서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지키도록 하고 있고 이를 어긴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법이지만 법 시행 직전까지 어떤 행위가 법 위반인지를 정부 담당 부처도 잘 모른다고 했다. 법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권 바뀌었어도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는 28일 오후 천안시 신부동 광장에서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세종충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세종충남본부는 결의대회에 앞서 천안역을 출발해 집회 장소인 광장까지 행진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는 28일 오후 천안시 신부동 광장에서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세종충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세종충남본부는 결의대회에 앞서 천안역을 출발해 집회 장소인 광장까지 행진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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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싸운다. 지난달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러자 노동계는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어 민주노총은 7일 최저임금 개정안 폐기를 위한 100만 인 서명운동에 돌입해 각 지역단위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한편 사측의 노조탄압을 겪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지난 20일 오후 유시영 회장의 재구속을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오체투지에 앞서 "유 회장이 또 다시 대화와 타협보다는 교섭거부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택하고 말았다"라면서 "노조파괴의 야망을 멈추지 않은 유 회장에 대해 우리는 또 다시 엄정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오체투지를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유성기업과 함께 노조탄압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갑을오토텍 노동자들도 검찰에 맞서 투쟁 중이다. 쟁의행위 당시 갑을오토텍 사측은 노조의 공장출입저지 및 점거 행위가 회사업무방해라며 아산경찰서에 고소했다. 이러자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아래 지회)는 쟁의 행위 기간 사측이 불법대체근로자들의 공장 투입을 시도해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했다고 맞섰다.

사측의 노조파괴를 겪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20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일대에서 유시영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사측의 노조파괴를 겪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20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일대에서 유시영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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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지회의 행위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달아 천안지검에 송치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지회에 따르면 천안지검 담당검사가 '조사결과에 대해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을 달지 말고 사안을 송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지회는 이런 지시를 " 노조의 정당한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 사측의 직장폐쇄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갑을오토텍 지회 노동자들은 천안지원 앞에서 수시로 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업적 평가(?)는 의제에 따라 상이하게 나올 수 있다. 앞서도 적었지만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척척 해냈다. 이 흐름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면 종전선언과 북미 수교까지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그러나 노동문제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공권력이 캡사이신을 뿌리지 않을 뿐,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은 과거 보수 정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끌던 참여정부는 종종 노동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태그:#옛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개정안, #민주노총, #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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