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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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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의 행보가 이상하다. 증선위는 비밀엄수를 기본으로 하는 운영원리와 배치되게, 두 차례나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특히, 6월 21일 나온 보도자료에는 금융감독원에 "지배력 판단 변경에 대한 지적내용과 연도별 재무제표 시정방향"을 구체화하는 내용으로 원 조치내용을 보완 요청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증선위는 2015년 이전의 수정 회계처리 방향이 잡히지 않으면 최종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2015년 이전 회계처리의 방향에 따라서는 최종결론이 과실 또는 중과실로 나올 수 있는 후속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분식회계 핵심은 4.54조 원의 이익이 적정하느냐의 문제

과연 그럴까? 2015년 이전의 회계처리 방향이 잡혀야만 2015년 회계처리의 부당함을 논할 수 있을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핵심으로 돌아가보자. 핵심은 2015년 장부에 반영된 4.54조 원의 종속회사주식처분이익이 올바른 회계처리인가 여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계열사로부터 1.17조 원의 출자를 받아 2015년까지 0.53조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여 0.64조 원의 순자산이 남아 있는 회사였다. 그 회사가 순자산의 7배가 넘는 거액의 이익을 장부에 반영했는데, 그것이 적정한지 여부가 이번 분식회계 논란의 핵심이다.

2015년에 4.54조 원의 거액을 인식하려면, 1)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이 2014년말까지 유지되다가 2015년에 갑자기 상실되었고, 2) 2015년 말 시점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평가액도 5조 원이 넘었다는, 현실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두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의 감리위원회와 증선위 심의 과정을 통해 이 부분은 결론이 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5년 이전의 상황이 무엇이었든 간에, 즉 지배력이 2012년 설립시점부터 없었든 아니면 2013년이나 2014년쯤에 잃어버렸든, 2015년에 4.54조 원의 이익을 반영한 것은 잘못된 회계처리라고 결론이 나 있는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종속회사주식처분이익 4.54조 원을 방어하지 못했다면 경기는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골은 들어가고 경기종료 휘슬을 불었는데, 마치 승부가 아직 나지 않은 것처럼 우기는 형국이다.

공시누락도 중대한 문제일 수 있어

게다가 감리위위회 단계에서 공시누락은 압도적으로 표 차이로 인정된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장부가 바뀌는 것에 비해 공시누락은 가벼운 것으로 취급된다. 통상적으로 장부가 바뀌어야 상대적으로 중대한 위반이고, 장부가 바뀌지 않고 공시만 누락한 것이라면 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 대한 영향이 작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시누락은 다르다. 공시누락이 미친 영향이 광범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과 2013년 감사보고서에서 아예 콜옵션 존재여부를 알리지 않았고, 2014년에는 "바이오젠은 지배기업과의 주주간 약정에 따라 종속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49.9%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만 공시했다.

바이오젠이 49.9%의 지분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하기로 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서 큰 손해는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것처럼 당초 투자단가에 약간의 이자만 더한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급증한 상황에서 헐값에 절반을 남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2014년 공시도 매우 불충분한 공시이다.

3개월 사이에 발생한 3배 차이의 평가결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5조 원이 넘게 평가된 것은 삼성물산이 자체 결산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2015년 8월 기준으로 이루어진 평가에서 안진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전체를 6.85조 원으로 평가했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5.27조 원(91.2% 지분가치는 4.81조 원)으로 평가했다.

이 평가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다른 기관의 평가와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기관이 비슷한 시기에 평가한 것이 있다면 검증이 더 쉬울 것이다. 좋은 비교 대상이 존재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주가에 따른 합병비율이 적정한지 여부를 따져 보기 위해서 두 회사가 각각 안진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한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5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평가에서 안진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전체가치를 각각 19.30조 원과 18.49조 원으로 평가했다. 안진회계법인을 기준으로 보면, 아래의 [표1]과 같이 동일한 기관이 3개월의 시차라는 아주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평가방법(DCF)으로 평가했는데 3배의 평가결과 차이가 나온 것이다.

[표1 : 안진회계법인의 두 번의 평가 비교]
안진회계법인의 두 번의 평가 비교
 안진회계법인의 두 번의 평가 비교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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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이러한 차이를 설명해 줄 수는 유력한 후보는 2015년 5월 평가 때는 콜옵션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서, 그것의 재무적인 영향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행사가격과 같은 콜옵션의 조건과 그것의 재무적인 영향이 알려진 것은 2015년 하반기이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안진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핵심가치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절반이 남의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18~19조 원으로 평가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에 근거하여 공시누락이 미친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외부에 공개된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1]이 나온다. 적정 합병비율이라는 작업은 여러 추정이 동원되기 때문에 단일한 값이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다. 일정 범위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 범위 안에 주가에 따라 산정된 실제 합병비율이 들어온다면, 그 합병비율이 경제적 실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림1 :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적정합병비율 평가]
삼성물산 적정합병비율
 삼성물산 적정합병비율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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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국민연금은 0.3420에서 0.6755의 범위로 적정합병비율을 계산했다. 안진회계법인(딜로이트)는 0.3139에서 0.4936으로, 삼정회계법인(KPMG)은 0.3193에서 0.5259의 범위로 적정합병비율을 계산했다. 모두, 0.3501이라는 실제 발표된 합병비율이 적정합병비율 추정 범위 내에 들어오는 결과였다.

2015년 8월 보고서를 반영하면, 합병 성사 어려웠을 수도

한발 더 들어가 보기 위해 그 추정범위가 계산된 세부내역을 따라가 보면 다음의 [표2]과 같다. 안진회계법인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 지분가치를 8.9조 원(전체로 환산하면 19.30조 원)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제일모직의 주당가치가 15만8090원으로 나왔고 결과적으로 적정 합병비율의 중간값이 0.3788로 나온 것이다. 삼정회계법인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다.

[표2 : 적정합병비율 계산근거]
적정합병비율 세부근거
 적정합병비율 세부근거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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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 [표2]의 삼성바이오 평가 자리에 6.85조 원을 기준으로 한 3.2조원(6.85조 원의 46.3%)을 넣어보자. 안진회계법인이 2015년 8월 평가를 할 때에는 콜옵션의 효과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수치는 그대로 두고, 삼성바이오 평가 수치만 안진회계법인은 8.9조 원에서 3.2조 원으로, 삼정회계법인은 8.6조 원에서 3.2조 원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래의 [표3]와 같다. 적정합병비율의 중간값이 안진회계법인 0.5189, 삼정회계법인 0.5600으로 수정된다.

[표3 : 적정합병비율 재계산 결과]
적정합병비율 재계산
 적정합병비율 재계산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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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봤던 [그림1]의 적정합병비율의 범위에서, 중간값과 최소값의 차이는 0.1 이하였다. 즉, 적정합병비율 중간값이 0.5를 넘어서면 적정합병비율의 최소값은 0.4 이상이 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추정이다.

이렇게 되면, 범위로 계산되는 적정합병비율 구간에 0.3501이라는 주가에 따른 실제 합병비율이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콜옵션 공시누락이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 매우 중대한 사안이 된다. 삼성물산 합병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공시누락을 누가 가볍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공시누락(불충분한 공시 포함)은 합병 성사 여부에까지 영향을 주는 중대한 공시누락이 될 수 있다. 공시누락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2015년 5월 안진과 삼정회계법인의 평가보고서는 공개될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이 자체 판단을 위해서 회계법인에 의뢰한 결과이니 공개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 적정합병비율 평가는 차원이 다르다.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듯이, 국민연금은 이러한 적정합병비율 평가를 처음해 본 상황이었다.

당연히, 공인된 평가기관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안진과 삼정회계법인과의 평가결과에 기대어 국민연금이 자체 평가결과를 산출했다고 봐야 한다. 즉, 안진과 삼정회계법인의 평가결과는 국민연금의 합병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 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보고서인 것이다.

안진과 삼정회계법인 평가보고서 공개로 합병과 연관성 밝혀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핵심적인 쟁점은 모두 밝혀졌다고 봐야한다. 4.54조 원의 이례적인 종속회사주식처분이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인정된 공시누락은 가벼운 사안이 아닌 합병성사를 가를 수 있는 중대한 공시누락일 수 있다.

2015년 이전에 대한 소모적인 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2015년 5월 안진과 삼정회계법인의 평가보고서 공개를 통해 합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태그:#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승계,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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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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