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 포스터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 포스터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단편 <프랑스 중위의 여자>(2007), <장례식의 멤버>(2008)로 주목받은 백승빈 감독의 신작 <나와 봄날의 약속>(2018)은 지구 멸망 하루 전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미스터리 판타지 영화다. 지구 종말이라는 다소 끔찍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절망적인 분위기보다 유쾌한 독특한 기운이 감지된다.

지구 종말을 다룬 4개의 에피소드 중 포문을 여는 이는 지구 멸망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감독 지망생(강하늘)이다. 삼년째 기약없이 시나리오만 쓰고 있는 그의 앞에 팬을 자처하는 요구르트 아줌마(이혜영)이 나타나고, "어차피 망할 거, 다 같이 잘 망하자! 아름답게"라는 괴상한 말을 남긴다.

모든 게 다 망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면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의문의 요구르트 아줌마와 함께 나타난 3명의 정체도 수상해보인다. 외톨이 여중생 이한나(김소희) 앞에 나타나 집적거리는 괴상한 남자(김성균)와 한때 열혈 페미니스트 운동가였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독박육아에 지친 고수민(장영남)의 후배를 자처하며 그녀를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미션(이주영), 낭만주의 영시를 가르치지만, 사랑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대학교수 전의무(김학선)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는 미모의 여성(송예은)까지.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은 외로운 생일을 맞게된 사람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건넨다.

10대 시절 즐겨보던 영화 잡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홍콩영화에서 제목을 차용한 백승빈 감독은 현재의 모든 것이 다 망하고 난 후, 새롭게 시작해 본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구 멸망을 서프라이즈한 생일 선물로 풀어낸 시도도 참신하다. 지구 종말보다 더 무서운 공포는 자신의 내면에 잠식되어 있는 두려움과 마주한다는 것. 모두가 아름답게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봄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궁극적인 삶의 태도'다.

참신한 설정,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하지만 좋은 의도와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거슬리는 몇몇 상황 설정이 영화의 완성도를 아쉽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 있다. 30-40대로 추정되는 외계인 남자가 외톨이 여중생과 친밀감을 조성하기 위해 그녀에게 과격한 행동을 일삼고 성적인 농담을 건네는 설정도 놀랍지만, 평생 연애 한번 해본 적 없는 50대 모태솔로 남성이 얼굴에 큰 흉터가 있긴 하지만 아름다운 20대 여성과 그토록 바라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키스까지 나누는 스토리는 보고 있는 낸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전업 주부를 다룬 에피소드 또한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오해가 섞여있는 것 같아 더욱 아쉬움을 자아낸다. 여성 히어로의 활약이 돋보이는 장르적 쾌감을 통해 가부장제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긴 하지만, 특정 대학을 떠올리게 하는 급진적 여성 운동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2018)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우울하고 비관적으로 다가오는 지구 종말을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나와 봄날의 약속>은 흥미롭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허나, 극중 남성 등장인물들이 여중생, 20대 여성으로 설정된 여성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고 대한다는 설정에서 보이는 아쉬움까지는 쉬이 가려지지 않는다.

사회전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기존 한국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는 요즘이다. 여성 캐릭터를 접근하는 방식에 아쉬운 점이 곳곳에 보이는 <나와 봄날의 약속>은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지구 종말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는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나와 봄날의 약속>은 오는 28일 극장에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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