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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고용노동부(노동부) 장관과 전교조 위원장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공식적으로 만났다. 노동부 장관은 이전 입장보다 진일보한 안을 내놓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를 뒤집는 발언이 나왔다.

청와대와 노동부의 엇박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과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김영주 장관,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면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과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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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을 비롯한 대표단을 만난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직권취소' 요구에 "법률자문단 소속 변호사들의 법률 자문을 통하여 직권 취소 여부를 검토한 후 청와대와 상의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대법원 판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한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2013년 법 밖으로 내몰린지 5년 만에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하루만에 이 기대를 허무는 청와대 입장이 나왔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20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정부가 직권취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을 바꾸려면 대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하는 방법과 관련 노동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의겸 대변인의 이 브리핑은 여러 가지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현재 상태로 재심 대상이 아니다.

재심이란 이미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것을 이후 특별한 사정 변경에 의하여 다시 재판을 하여 기존 판결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지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이 아니다. 김의겸 대변인이 왜 그렇게 발언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대법원 판결까지 받고 재심을 받으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2년 5개월 동안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지 않고 뭉개고 있는 사건에 대해 대법 판결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심을 신청한다? 그렇게 되면 과연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까지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국제 노동기준에 맞게 노동법을 고치겠다고 공약했고, 이 내용은 당선 후 ILO(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도 다시 확인한 바 있다. 즉,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국내 노동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ILO 협약 87·98호를 비준하면 자동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설명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약속이 진심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맞다.

현재 정부 입법안은 없지만,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와 직접 관련된 법률인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민주당 홍영표,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에 의해서 대표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17개 시도 중 14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으며, 특히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해 전교조 출신 교육감 10명을 포함해 친전교조 성향 교육감이 14명이나 당선된 표심을 천심으로 알고 한국당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국회에서 교원노조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없다. 그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런 정치적인 현실을 모르지 않는 청와대 대변인이 법률 개정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의도적 무지이거나 책임 회피일 수밖에 없다. 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잘못된 두 번째 이유이다.

세 번째, 정치적으로 김 대변인의 브리핑은 문제가 있다. 주무부서인 노동부 수장이 노동조합 대표들을 만나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을 하루도 되지 않아 뒤집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식일까? 대통령 공약 사항에 대해 노동부 장관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소송 진행 중이라 안 된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자료 사진)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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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은 또 있다. 그렇다면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나 기존의 청와대 입장,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밝힌 바 있는 "현재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니 법원 판결 결과를 존중하여 조치하겠다"는 입장은 어떤가?

이 역시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문제가 이렇게 장기화된 1차적인 책임은 2심 결정이 난지 2년 5개월이 되도록 판결을 미루고 있는 대법원의 직무 태만에 있지만, 행정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행정부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즉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임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바꾼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부가 기간제교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인 기간제 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한 사례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12명의 교사들이 304명의 희생자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인사혁신처)는 학생을 구조하다가 희생된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이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 대상에서 제외했고, 공무원연금공단 역시 순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초원 선생님의 유족과 시민단체는 2016년 정부의 순직 불인정 조치에 대해서 공무원연금공단과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순직 인정 소송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즉, 기간제교사의 순직 인정 여부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박근혜가 탄핵으로 물러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었음에도 (기존 정부 입장을 변경하여) 세월호 희생 기간제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실제로 2017년 8월 국무회의에서 기간제교사의 순직인정 근거를 마련한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 의결한 후 인사혁신처 위험직무 순직 보상심사위원회에서 기존 입장을 변경하여 두 분의 기간제교사의 죽음을 순직으로 최종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순직을 인정하기로 결정하니 2017년 10월, 법원은 순직 인정에 대한 소송(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유족보상금청구서 반려처분취소 사건')을 각하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거의 대부분의 국민에게 박수를 받았던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결정을 두고 어느 누구도 소송이 진행 중인 사법부 사건에 대해서 문 대통령과 행정부가 3권분립을 위배하는 월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도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는 기간제교사의 성과급 지급 대상 제외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원 성과급이 도입된 한참 뒤인 2011년까지도 기간제교사들은 정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어 성과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일부 기간제교사들이 2011년,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기간제교사를 제외시킨 것은 위법한 차별이므로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이 소송이 제기된 후 기간제교사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여론이 일었고 정부(교육부)는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2013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을 마련하면서 기존 지침을 폐기하고 기간제교사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2017년 2월 대법원에서 기간제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정부의 방침이 합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이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부는 기간제교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새로운 지침을 변경하지 않았고, 2018년 현재에도 기간제교사들은 성과급을 지급받고 있다.

즉, 교육부는 기간제교사의 성과급 지급 대상 제외 지침이 위법한지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기존 행정 지침을 폐기하고 기간제교사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하였고,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였음에도 법원 결정과 다른 기간제교사 성과급 지급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과 위의 사례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 행정부가 입장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즉 직권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반증하는 사례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결단까지 갈 것도 없이, 노동부 장관의 결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법외노조를 통보할 때는 노동부 장관이 팩스 한 장으로 하더니 왜 취소는 안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철학과 입장이 달라서 못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이, 김영주 노동부 장관의 노동관이,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관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부당하다는 것이라면, 그 일이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적폐가 맞다면 지금이라도 입장을 바꾸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다.


태그:#전교조 , #문재인, #김영주, #법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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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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