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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4가지 언어 활동을 한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 이 중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쓰기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치르게 되는 받아쓰기부터 일기 쓰기, 글짓기, 논술까지 쓰기는 대부분 특정한 목적 아래 이루어진다.

평소 글을 쓰지 않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써야하니 글쓰기가 더 싫어지고, 교육 과정이 끝나고 나면 글을 쓰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글쓰기를 중요하다고 말할까? 우리는 왜 꼭 글쓰기를 해야 할까? 교육자이자 아동 문학가, 우리말 연구가였던 이오덕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을 쓸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워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p.55).


아이들의 삶을 참되게 가꾸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글쓰기라면 정직하고 솔직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부끄러워 감추고 싶어지기도 하는 내 이야기를 꺼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대개의 글쓰기는 '대회'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졌기에 상을 받기 위해 그럴 듯한 말로 써내기 일쑤다.

<이오덕의 글쓰기>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교육을 다룬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오덕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꾸준히 학급문집을 발간하셨단다. 잘 쓴 글만 실리는 것이 아니니 아이들은 부담 없이 글을 쓴다.

<괜찮아, 나도 그래>
 <괜찮아, 나도 그래>
ⓒ 학교도서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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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뭣 하나 물어보면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거기다 맑고 깨끗한 순수함이 더해지니 어른들의 글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답은 중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사서 선생님과 함께 수업하며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은 책 <괜찮아, 나도 그래> 머리말에 나와 있었다.

감정 글쓰기 수업은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경험과 사건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쓰고, 내가 쓴 글과 친구들이 쓴 글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는 시간입니다. (중략) 이 책을 보는 독자들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토대가 된 수업 1부는 교사가 특정한 감정 키워드(하루가 길다, 개의치 않다 등)를 제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러한 감정이 일어났던 순간을 떠올려 글을 쓴다. 글의 길이나 매끄러움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정직하게 육하원칙을 밝히면 된다. 서로가 공유하려는 것은 잘 쓴 글이 아니라 각자가 경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함께 읽으며 아이들은 함께 위로하고 공감한다.

어제 저녁에 학교 숙제를 하느라 늦게 잠든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세수를 하니 잠이 깼다. 친구와 함께 등교해 수업을 듣고, 방과 후 친구들과 춤 연습을 했다. 그리고 학원에 갔다. 수업을 듣는 내내 졸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와서도 학원 숙제를 하느라 바로 잠들지 못했다. 겨우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이 하루가 똑같을 것 같다. 하루하루가 참 길다(p.26).


'하루가 길다'라는 키워드로 작성한 어느 학생의 글이다.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는 요즘 아이들의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모두가 이렇다며 합리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나만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받을 수 있다. 아이들의 생각은 제각각이기도 하다. 다른 학생은 '오늘 담임 선생님께서 성적표를 주셨다'라는 한마디로 하루가 길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두려움도 여러 가지가 있다. 공포영화를 볼 때, 혼자 어두운 길을 갈 때, 놀이기구를 탈 때, 혼자 남겨질 때 느끼는 공포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움을 느낄 때는 학교에서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서 짝 활동을 할 때 제일 무섭다. 만약 혼자가 되어 난처해지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이 생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적응해서 요령도 생기고 면역력이 생기는 듯 하지만 내 소심함은 어쩔 수 없다(p.42).


나의 은밀한 내면이 드러나지만 사실 많은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이고 이를 누군가에게 공감 받으면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나를 위한 일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아이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읽기로 이어진다. 자신이 읽어 본 책 중에서 그 감정 키워드와 연관된 책을 소개하여 친숙하지 않은 책을 삶으로 끌어들이고 사고를 확장하게 한다.

이 수업의 진면목은 2부에 있다. 1부에서는 교사에 의해 감정을 제시되고 아이들이 각자의 상황을 떠올렸다면 이번엔 그림책의 상황을 보고 주된 감정을 유추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교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독서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느낀 바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주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회성 글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에 감정, 책, 글쓰기라는 요소를 불어넣어 준 것이라 하겠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문학 작품을 생산해 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삶을 가꾸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함이라면 이 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삶의 지도서이다. 어쩌면 문학의 본질도 이것이리라. 함께 공감하고 치유하는 것. 기분이 자꾸 우울해지는 중학생에게, 마음이 딱딱해진 청소년에게,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고픈 어른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괜찮아, 나도 그래 - 지금 여기, 10대들의 속마음

순천신흥중학교 북적북적동아리 지음, 황왕용 엮음, (주)학교도서관저널(2017)


태그:#감정, #글쓰기, #공감, #신흥중,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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