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모하메드 살라의 이집트를 잡고 2연승을 내달렸다. 러시아는 20일 오전 3시(아래 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A조 2차전 이집트와 맞대결에서 3-1로 승리했다. 러시아는 조별리그 2연승을 질주하며 16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화끈했다. 러시아는 초반부터 이집트를 강하게 몰아쳤다. 전방에 포진한 장신(196cm) 스트라이커 주바를 비롯해 발 빠른 체리셰프, 사메도프, 골로빈 등 공격에 위치한 선수들이 쉴 새 없이 이집트 골문을 위협했다. 짧고 빠른 패스로 기회를 만들었고, 위협적인 슈팅으로 6만4468명의 홈 관중을 들끓게 했다.

러시아는 불과 15분 만에 3골을 몰아쳤다. 선제골은 행운이 따랐다. 후반 2분, 조브린의 빗맞은 슈팅이 이집트 우측 풀백 파티 무릎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세가 올랐다. 후반 14분, 페르난지스가 짧게 내준 볼을 체리셰프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3분 뒤에는 주바가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절묘하게 받아내 추가골을 터뜨렸다.

'3-0이야'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러시아의 아르템 주바가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3-0이야'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러시아의 아르템 주바가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는 후반 28분 살라에게 페널티킥 만회골을 내줬지만, 막판까지 공세를 이어가며 승리를 챙기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21일(0시) 치러지는 같은 조 우루과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이기거나 두 팀이 비기면 16강 진출을 확정 짓는다. 루이스 수아레스와 에디손 카바니가 버틴 우루과이가 패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개막전 러시아와 맞대결에서 0-5로 대패했을 정도로 전력이 약하다. 러시아의 16강 진출이 확정적이라 보는 이유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2010년 남아공 이후 두 번째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개최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변별력이 없다지만, FIFA 랭킹에서 이번 대회 참가한 32개국 중 가장 낮았다.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치러진 컨페더레이션스컵 성적(조별리그 탈락)도 신통찮았다.

평가전 성적은 더 처참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이후 월드컵 개막 전까지 6차례 평가전에서 2무 4패를 기록했다. 2018년 A매치 성적만 보면 1무 3패였다. '역대 최악의 대표팀'이란 비판이 쏟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2018년 첫 승리를 월드컵 개막전에서 이뤄냈고, 여세를 몰아 2연승을 질주했다.

체리셰프는 2경기 3골을 기록하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득점 공동 선두로 올라섰고, 골로빈과 사메도프, 주바의 활약도 눈부시다. 좌우측 풀백 지르코프와 페르난지스의 쉼 없는 오버래핑도 러시아의 화력을 끌어올린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공간과 기회를 만들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공격의 팀 러시아는 조별리그 2경기에서만 무려 8골을 몰아쳤다.

러시아, 유로 2008 돌풍 재연하나

유로 2008이 떠오른다. 당시 거스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러시아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변방 취급을 받았다. '디펜딩 챔피언' 그리스, 스웨덴, 스페인(유로 2008 우승팀)과 속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다수였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되자, 러시아는 무서웠다. 첫 경기 스페인과 맞대결에서 1-4로 대패했지만, 2차전(vs. 그리스)과 3차전(vs. 스웨덴)을 내리 잡아내며 조 2위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8강전에서 만난 상대는 히딩크의 조국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루마니아와 한 조에 속해 3연승(9득점·1실점)을 질주하며 조 1위 8강에 올랐다. 오렌지 군단은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디르크 카윗, 아르연 로번, 로빈 판 페르시, 베이슬러이 스네이더 등 초호화 멤버도 자랑했다. 맞붙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축구라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네덜란드의 대승을 예상했다.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러시아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네덜란드를 3-1로 완파했다. 이탈리아를 3-0, 프랑스를 4-1로 대파하며 승승장구했던 네덜란드는 러시아의 조직적인 수비와 빠른 역습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러시아는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에게 무너지며(0-3) 위대한 도전을 마무리했지만, 세계 축구팬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때 느낌이다. 빼어난 결정력을 자랑한 파블류첸코, '크랙'이었던 아르샤빈, 중원을 든든히 지킨 지랴노프 등 무명의 선수들이 이름을 알린 유로 2008이 떠오른다. 올 시즌 소속팀 비야레알(스페인)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리그 24경기(선발 9) 2골 1도움에 그친 체리셰프가 월드컵 득점 선두에 올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골로빈, 사메도프, 주바 등이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너와 나 한폭의 데칼코마니'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와 러시아의 로만 조브닌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 '너와 나 한폭의 데칼코마니'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러시아와 이집트의 경기.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흐와 러시아의 로만 조브닌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그들의 도전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16강 진출은 거의 확정 지은 상태지만, 그 이상을 확신하기는 쉽지가 않다. 16강에서 만나는 상대가 B조 1위나 2위이기 때문이다. B조에는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 명예회복에 나선 스페인, 늪 축구의 이란, 다크호스 모로코가 속해 있다. 누구와 맞붙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력이 워낙 떨어졌고, 이집트는 스스로 무너진 느낌이 있다. 이날 이집트는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받으며 전반전을 0-0으로 마쳤지만, 후반 초반 자책골 이후 급격하게 무너졌다.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살라가 선발로 복귀했지만, 그의 몸 상태는 정상과 거리가 있었다. 유로 2008의 향기를 내는 러시아지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변의 월드컵을 앞서서 만들어가고 있는 개최국 러시아. 그들이 유로 2008에 버금가는 돌풍의 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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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VS이집트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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