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4팀(한국, 일본, 이란, 호주)의 성적은 최악이었다.

동아시아 숙명의 라이벌인 한국과 일본은 각각 1무 2패를 기록한 데 이어 이란과 호주 역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등 아시아 4팀은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3무 9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아시아 5팀(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호주)은 이번 대회에서 명예회복을 해야 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도 경쟁력을 선보이지 못할 경우 아시아 축구는 세계축구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나는 시점에서만 놓고 봤을 때 아시아는 지난 대회와는 달리 벌써 2승을 거두며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5팀의 온도차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케이로스 감독과 7년의 결실을 맺은 이란

'이렇게 극적일수가' 15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B조 예선 모로코 대 이란의 경기. 모로코의 아지즈 부아두즈의 자책골이 터지자, 이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이렇게 극적일수가' 15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B조 예선 모로코 대 이란의 경기. 모로코의 아지즈 부아두즈의 자책골이 터지자, 이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2011년 이란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란은 케이로스 감독의 축구색깔이 입히고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한 2016년부터 서서히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래의 튼튼한 수비는 여전한 데다 창이 더욱 날카로워진 이란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만 9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벌이는 등 수월하게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케이로스 감독의 축구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 이란은 이제 명실상부한 아시아 1강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활약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대회 준우승팀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까지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괴롭혔던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조별리그에서 막강한 포르투갈, 스페인을 비롯해 다크호스 모로코가 엮이며 불안한 그림자가 엄습했다.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 아닌 평가전 취소 사태까지 겹치면서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다소 차질이 생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로코와 치른 월드컵 본선 1차전에선 이란의 탄탄함이 돋보였다.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아즈문을 비롯해 자한바크쉬 등을 이용한 역습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이란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 끝까지 버티다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 자책골로 승리를 거두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를 맛봤다. 이란은 전형적인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패턴인 '선 수비 후 역습'에 세트피스까지 발휘하며 승리를 챙긴 것이었다.

케이로스 감독과 함께한 지난 7년의 시간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승리였다. 그리고 이란의 승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개막전 0-5 완패 이후 나온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본선 앞두고 감독 교체한 4팀, 희비 엇갈렸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4팀은 감독을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가장 먼저 감독을 바꾼 한국은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힘겹게 마치며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본선을 준비하기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전술을 테스트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주축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계획했던 플랜A가 꼬이는 등 전력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본선에 나선 한국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VAR을 통해 판정이 번복돼 페널티킥을 내준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결과부터 시작해 경기내용 면에서도 강하다고 볼 수 없었던 스웨덴에게 경기 주도권을 내준 채 끌려다녔고 90분 내내 유효슈팅이 단 1개도 없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남은 상대가 멕시코와 독일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한 상황이다.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사우디 역시 감독 교체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본선에 올려놓은 베른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에서 결렬되며 결별한 사우디는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이 평가전에서 부진하자 2달 만에 경질했다. 결국 지난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칠레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호세 안토니오 피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슛하는 살렘 알다와사리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사우디 살렘 알다와사리가 슛을 하고 있다.

▲ 슛하는 살렘 알다와사리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사우디 살렘 알다와사리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평가전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을 상대로 패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러시아와의 개막전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지만 사우디는 한계를 드러냈다. 피지컬을 시작으로 조직력, 개인기량 모든 면에서 밀린 사우디는 러시아와의 개막전에서 0-5의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사우디의 개막전 0-5 패배는 1934년 이탈리아와 미국의 개막전에서 나온 7-1 스코어 이후 2번째 최다점수차 경기였다.

전력이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A조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우루과이를 상대하는 사우디로선 사실상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사우디를 떠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호주를 탄탄한 팀으로 바꾸고 있다. 가장 전대륙 통틀어 가장 힘겹게 본선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호주는 월드컵 본선 진출과 동시에 4년간 팀을 이끌던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사임했다. 그러면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게 주어진 평가전 기회는 단 4차례에 불과했다.

결과는 좋았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호주 감독 데뷔전이었던 노르웨이전에서 1-4로 패했지만 이후 콜롬비아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어 본선을 앞두고 치른 체코, 헝가리와의 평가전에서 각각 4-0, 2-1의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올렸다.

그리고 프랑스와 조별리그 1차전. 호주는 탄탄한 두 줄 수비를 바탕으로 프랑스를 괴롭혔고 아쉽게 1-2로 패했다. 비록 패했지만 호주는 프랑스를 상대로 노련한 경기를 펼쳤고 골을 허용한 것도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한 골은 VAR을 통해 판정이 수정되면서 내준 페널티킥을 통한 득점이었고 한 골은 비록 수비가 프랑스의 부분 전술에 흔들린 면도 있었지만 골라인 판독기 도움으로 내준 실점이었다. 그렇기에 호주에겐 아쉬움이 남는 패배였다.

본선을 2달 앞두고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한 일본 역시 콜롬비아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 웃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한국과의 동아시아 선수권대회 1-4 패배를 시작으로 말리와 무승부, 우크라이나에게 1-2로 패하는 등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일본은 가나와의 월드컵 출정식에서 0-2 패배,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도 0-2 패배를 기록하며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다가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른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4-2로 승리하며 체면을 세웠다.

 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장면. 이날 일본은 2-1로 콜롬비아를 꺾고 1승을 올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H조 일본과 콜롬비아의 경기 장면. 이날 일본은 2-1로 콜롬비아를 꺾고 1승을 올렸다. ⓒ AP/연합뉴스


매 경기 2골 이상 실점을 허용하는 수비가 골머리였던 일본은 콜롬비아를 상대로는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며 콜롬비아의 공격을 잘 막았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산체스의 퇴장까지 나오며 행운까지 얻은 일본은 콜롬비아를 2-1로 물리쳤다. 이로써 폴란드, 세네갈이 함께 속한 H조에서 또 다른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마련했다.

아시아 5팀이 본선 첫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2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살렸는데 조별리그 2라운드서부터는 각 팀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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