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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고등학교 학생들이 임시보호중인 길고양이 호식이를 살펴 보고 있다.
 삽교고등학교 학생들이 임시보호중인 길고양이 호식이를 살펴 보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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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입시지옥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윤회' 중이다. 이런 가운데 충남 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잠시 여유를 갖고 다른 생명에게도 눈을 돌려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삽교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달 30일. 교내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기 위해 찬반 투표까지 벌이며 선생님들을 설득했다. 투표결과도 '급식소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길고양이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다. 결국 지난 14일 삽교고에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됐다.  

임자영 삽교고 교사는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훼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생존을 위해 그렇게 한다"며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면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들이 적극 나서 선생님들을 설득했고 결국 학교에 급식소가 설치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삽교고등학교 방송실에서 생명사랑 동아리 학생들을 만났다. 동아리 학생들의 상당수는 수의학과나 간호학과 등을 지망한다고 했다. 동아리 학생들은 틈틈이 유기견 보호소와 인근 대학에서 운영 중인 야생동물 구조센터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다리를 다치거나, 아픈 고양이들이 꾸준히 학교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손지혜(3학년) 학생은 "2년 전부터 상처를 입은 고양이들이 학교를 찾아오기 시작했다"며 "그때마다 고양이들을 돌봤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요즘은 학생들끼리 순번을 정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사료 값을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 현재는 학생들이 내는 회비와 선생님들의 후원금으로 급식소를 운영 중이다. 운도 따랐다. 지난달에는 한 동물보호단체에서 주최한 콘테스트에 사연을 올려 당첨이 되기도 했다. 물론 당첨금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쓰였다.    

학교 한쪽에는 길고양이 임시보호소가 마련되어 있다.
 학교 한쪽에는 길고양이 임시보호소가 마련되어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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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 외에도 다친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임시보호하고 있다. 홍성길고양이보호협회(대표 임소영)에서 보호하고 있던 호식이를 임시로 맡아서 키우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임보'하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은 호식이 이다. 뒷다리 부근에 깊은 상처를 입은 호식이는 현재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고양이와 생활하면서 학생들은 한 뼘 더 자라고 있는 듯 보였다. 양희진(3학년) 학생은 "고양이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양이들은 대부분 착해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고양이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많은데, 캠페인을 통해 그런 인식을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서진(2학년) 학생도 "고양이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며 "그런 인식을 바꾸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고양이,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

삽교고등학교 인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이다.
 삽교고등학교 인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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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동물 학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학생들은 다시금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김재진(1학년) 학생은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면서 "길고양이 중에는 누군가 키우다 버린 아이들도 많다. 인간에게는 길고양이의 삶을 보살피고 챙길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집안으로 들였던 고양이들이 길에 버려지고 사지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다.  

손지혜 학생이 거들고 나섰다. 손 학생은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귀엽다는 이유로 새끼 너구리와 같은 야생동물을 집으로 데려가 키우는 사례를 접하게 된다"며 "인간이 키운 동물들은 결국 야생성을 잃게 되고, 밖에 버려지면 죽게 된다.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동물 사랑은 길고양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손지혜 학생은 "요즘 학교의 투명 유리창에 새들이 날아 와서 부딪치는 일이 잦아 졌다. 이따금 죽은 새가 목격되기도 한다"며 "새가 유리창에 부딪치지 않도록 창문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수의사를 꿈꾸고 있는 제자들에게 스승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임자영(생명과학) 교사는 "교사도 그렇지만 의사나 수의사 등의 직업은 경제적인 목적 보다는 사명감이 우선시 되는 직업이다"라며 "수의사를 꿈꾸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동물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의사가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인간미 넘치는 수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그:#길고양이 , #급식소 , #삽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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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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