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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성당 (성삼위일체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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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민다 사메바 가는 길 

조지아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을 찾아 나섰다. 조지아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성당이다. 현지인들은 그냥 '사메바'라고 부른다. 사메바는 걸어서 가도 충분할 정도로 숙소에서 가까웠다. 날씨는 흐렸지만 공기는 깨끗하고 상큼했다. 기온은 얇은 겉옷이면 충분할 정도로 온화했다.

월요일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골목길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아블라바리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게스트하우스, 여행사, 식당, 빵가게, 야채가게, 와인판매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게문들이 하나 둘씩 열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사람냄새가 풍기는 소박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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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메바에 가는 길에 만난 성물 판매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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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성물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학교 앞 문방구만큼이나 성당 앞 성물점은 자연스럽다. 호기심이 발동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50대 중반의 중년여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열대에는 십자가와 이콘, 종교서적, 각종 묵주 이외에도 기념품이 될만한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십자가 모양이나 성화들이 로마 가톨릭의 그것들과 비슷한 듯 달랐다. 특히 동방정교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성화(이콘)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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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메바 가는길에 들른 성물판매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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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은 보통 예수나 마리아, 성서의 교리 뿐만 아니라 성인, 순교자, 성인으로 추대된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한다. 때문에 이콘을 통해 시대적/역사적 상황이나 예술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왕관을 쓰고 있는 여인을 그린 이콘은 매우 흥미로웠다. 일반적이지 않았다. 누구일까.

알고보니 이 여인이 바로 조지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시대를 이끈 '타마라'여왕이었다. 책이나 안내서적에 숱하게 등장하던 그 '타마라'여왕 말이다. 다양하게 표현된 타마라의 이콘은 조지아의 거의 모든 성당에 걸려 있다. 조지아 국민들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그 시대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이콘이지만 타마라 여왕을 직접 본 듯 감회가 새로웠다. 성물판매점에서 올린 개가(?)이다.
타마라 여왕의 성화, 조지아의 전성기를 이끈 타마라 여왕은 조지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 성당 타마라 여왕의 성화, 조지아의 전성기를 이끈 타마라 여왕은 조지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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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나와 5분 정도 언덕길을 오르니 성당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지아 정교 - '조지아인의 DNA' 

조지아 정교 독립 1,500주년과 조지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성당 (성삼위일체성당) 조지아 정교 독립 1,500주년과 조지아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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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엘리야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츠민다 사메바성당은 조지아 정교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조지아어로 '츠민다'는 '거룩한, 성스러운'이라는 뜻이고, '사메마'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즉 '츠민다 사메바'는 '성 삼위일체(트리니티) 성당'이다. 

2014년 기준 조지아국민의83.9%가 조지아정교 신자이다. 이 정도면 조지아 정교를 조지아의 국교라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조지아인은 자기들의 조상과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는 우리의 조상들이 자랑스러워요"
"어떤 점이요?"
"우리 조상들은 종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정교를 믿는 국가를 물려 준 점이 가장 자랑습니다. 우리는 이 종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지켜왔습니다." 

그의 말에는 단호함과 긍지가 가득했다. 사실 난 그의 말을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자기네 나라와 종교에 대해 이렇듯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던 것이다.

조지아인들의 신앙심은 남달라 보였다. 시골의 작은 성당에도 촛불이 꺼지는 적이 없었고, 성당 한 구석에는 기도를 드리는 '누군가'가 꼭 있었다. 그들은 운전 중에도 교회나 길가에 세운 십자가가 나오면 손을 들어 성호를 그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곧 생활이고 일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바로 정교였다.

조지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4세기 초이다. 비록 미리안 3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해도 오랜 세월 정교는 조지아인들에게 깊숙히 파고들어 '조지아인의 DNA'가 되었다.

츠민다 사메바성당- 조지아 정교의 자존심


일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사메바를 찾는 조지아사람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성당 (성삼위일체성당) 일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사메바를 찾는 조지아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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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바성당은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과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989년 성당 건립을 위한 국제공모전을 통해 조지아 건축가 아킬 마인디아스빌리의 설계안이 채택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독립 전쟁으로 인해 1995년에서야 첫 기초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04년 완공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성당건립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체류하는 조지아인들의 후원금과 성금이 잇달았다. 성당 건축의 의미나 건축 과정은 왜 사메바를 조지아 정교의 상징이며 자존심이라고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의 하나인 사메바는 본당 외에도 종탑, 대주교사택, 목회신학교, 수도원, 휴게실 등을 갖춘 복합 종교건축물이다. 본당 안에는 대천사, 성녀 니노, 성 게오르기우스, 성 니콜라스, 12사도 등 9개의 예배실이 있으며, 이 중 5개는 성당지하에 있다.

사메바성당은 본당 이외에도 종탑, 목회신학교, 수도원 및 9개의 예배실을 거느린 거대한종교건축물이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성당 (성삼위일체성당) 사메바성당은 본당 이외에도 종탑, 목회신학교, 수도원 및 9개의 예배실을 거느린 거대한종교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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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작은 성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사메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메바는 한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지 않을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사메바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이콘과 십자가 등으로 장식된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제단 쪽 정면 벽면에 그려진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었다. 의자가 없는 성당내부는 실제 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츠민다 사메바성당- 신과의 소통의 장소이자 영혼의 안식처  

미사가 없는 월요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성당 안에는 나같은 외국인 여행객뿐만 아니라 먼 지방에서 올라온 현지인들도 많았다. 그들은 아마 나와는 달리 성지 순례차원에서 방문하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과 소통한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 성당 내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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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은 촛불을 밝히고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이는 이콘 앞에 서서 수없이 성호를 긋거나 이콘화에 입을 맞추며 기도를 드렸다. 어떤 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어떤 이는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기도를 올렸다. 이콘 앞에서 서서 기도문을 암송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경책을 펼쳐놓고 읽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하나의 행동에 정성과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예복을 갖춰 입은 사제들이 나와 기도문을 암송하거나 촛불봉헌을 하였다.

"저런 의식은 매 시간마다 하나요?" 하고 옆에 서 있던 조지아인에게 물어 보았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멋적게 대답했다.

일반 신도들이 복잡한 종교의 예법을 잘 모르는 것은 조지아인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예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사제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의식을 행한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 성당 내부 예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사제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의식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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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수없이 성호를 긋고 머리를 조아리며 신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또 이 연약함을 깨달을때 비로소 겸손해 질 수 있다는 사실도.

'종교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 저마다의 답을 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답이 있다. 그리고 두 시간 이상 사메바에 머무는 동안 조지안들의 답도 들은 것 같다.

엘리야 언덕에 자리잡은 사메바 성당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이다.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 성당 엘리야 언덕에 자리잡은 사메바 성당은 트빌리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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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에서 나와 정문쪽을 보니 쿠라 강변 언덕 위에 서 있는 조지아 '어머니 상'이 보였다. 사메바를 엘리아 언덕에 세운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트빌리시가, 조지아가 신의 가호와 어머니의 품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태그:#조지아 여행, #트빌리시 사메바성당, #트빌리시 트리니티성당 , #트빌리시 성삼위일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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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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