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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만난 캘리그래피 작가 진성영 씨. 재능기부로 만든 서각 문패를 들고 지난 7일 죽항도로 가고 있다.
 선상에서 만난 캘리그래피 작가 진성영 씨. 재능기부로 만든 서각 문패를 들고 지난 7일 죽항도로 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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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글씨로 이름을 썼고, 서각으로 문패를 만들었습니다. 이 문패를 달아주러 갑니다."

지난 6월 7일 전라남도 진도의 조도 신전항에서 만난 캘리그래피 작가 진성영(47)씨의 말이다. 그의 손은 예쁜 보자기 하나를 다소곳이 보듬고 있다. 진 작가는 이날 작은 배를 타고 신전항에서 가까운 죽항도로 갔다. 죽항도 포구에는 송천식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작가님,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씨의 집이었다. 진 작가가 손에 들고 온 보자기를 풀자, 단아한 서각 문패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패에는 '함께라서 행복합니다 송천식·박흔영'이라고 씌어 있다.

죽항도 포구에서 만난 진성영 작가와 송천식 씨. 서각 문패를 들고 자세를 한 번 취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주 섰다.
 죽항도 포구에서 만난 진성영 작가와 송천식 씨. 서각 문패를 들고 자세를 한 번 취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주 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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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영 작가와 죽항도 주민 송천식 씨가 서각 문패를 함께 걸고 있다. 지난 6월 7일 진도군 조도면 죽항도의 송 씨 집에서다.
 진성영 작가와 죽항도 주민 송천식 씨가 서각 문패를 함께 걸고 있다. 지난 6월 7일 진도군 조도면 죽항도의 송 씨 집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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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작가가 서각 문패와 현판을 달아주기 시작한 건 올 초부터다.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해 고향으로 내려온 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찾은 일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닳고 헤진 문패를 보게 됐고, 캘리그래피로 쓴 문패가 섬마을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손으로 쓴 글씨를 가리킨다. 밋밋한 글자를 손글씨로 독특하면서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자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진 작가의 재능기부 계획을 전해들은 광주 어울공방 최선동 작가가 선뜻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의 재능기부는 진 작가가 캘리그래피로 글씨를 쓰면, 최 작가가 편백나무에 새겨서 보내오고, 진 작가가 마을이나 집에 직접 달아주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지난 7일 작업실에서 만난 진성영 캘리그래피 작가. 언제라도 손글씨를 쓸 수 있는 작업 도국 비치돼 있다.
 지난 7일 작업실에서 만난 진성영 캘리그래피 작가. 언제라도 손글씨를 쓸 수 있는 작업 도국 비치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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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로 돌아온 박진우·김현숙씨 집에 지난 1월 서각 문패를 달아주면서 시작된 진 작가의 재능기부는 매달 한두 군데씩 이어지고 있다. 닳고 헤져 잘 보이지 않던 진도군 조도면 명지마을의 복지회관 현판도 바꿔줬다.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한데 살고 있는 진도군 군내면 안농마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서각 현판을 기증했다. 안농마을에는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초도에서 내려온 피난민 10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진 작가가 지금까지 서각 문패와 현판을 달아준 곳은 진도군 관내 20여 군데에 이른다. '사랑이 꽃피는 집 박종영·김점단' '자연산 복탕집 김옥진·이정애' '신나게 행복하게 강경오·김양숙'... 문패와 현판을 전달받은 주민들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글씨와 현판이 집과 회관의 분위기까지 밝혀준다'며 반기고 있다.

진 작가도 "작지만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마음 뿌듯하고, 보람도 있다"면서 "앞으로도 진솔한 마음과 섬마을의 정취, 바다내음 물씬 묻어나는 글씨로 문패와 현판을 달아주면서 캘리그래피의 매력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는 진성영 작가가 지난 7일 그의 작업실에서 손글씨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를 써보이고 있다.
 고향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는 진성영 작가가 지난 7일 그의 작업실에서 손글씨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를 써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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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진성영 작가가 쓴 텔레비전 드라마 제목 등을 새긴 머그컵. 그의 작업실에서 볼 수 있다.
 그 동안 진성영 작가가 쓴 텔레비전 드라마 제목 등을 새긴 머그컵. 그의 작업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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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작가는 지난해 8월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서울에서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SBS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KBS 대기획 <의궤, 8일간의 축제>, MBC 다큐멘터리 <바다愛 물들다>... 우리에게 익숙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서체도 그의 작품이다.

가수들의 음반 표지 제목과 각종 포스터, 책 표지 글씨도 많이 썼다. 전남도청 소식지 <전남새뜸> 등 신문과 사보, 잡지의 제호도 헤아릴 수 없이 썼다. 그의 글씨는 하나같이 생동감 있고 맛깔스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가독성이 높아야 합니다. 글자가 정확히 보이고, 내용이 쉽게 전달되어야죠. 시선을 붙잡을 수 있도록 차별성도 갖춰야 하고요. 물 흐르듯 유연함과 리듬감도 살아있어야 하고요. 선의 움직임과 형태를 통한 조형미에다 나만의 개성도 담고 있어야죠."

진 작가가 들려주는 좋은 캘리그래피의 조건이다. 전라남도 진도에 딸린 작은 섬, 조도에서 나고 자란 진 작가는 전라남도에서 대학을 다니고, 한때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영상 촬영 일을 했다.

캘리그래피를 접한 건 10년 전, 서울의 한 회사방송국에 프로듀서로 근무할 때였다. 서예가 초정 권창륜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캘리그래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동안 캘리그래피의 모든 것을 담은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등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진성영 작가가 펴낸 캘리그래피 관련 책들. 그동안 서울에서 활동했던 진 작가는 지난해 고향 진도로 돌아와 살고 있다.
 진성영 작가가 펴낸 캘리그래피 관련 책들. 그동안 서울에서 활동했던 진 작가는 지난해 고향 진도로 돌아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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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성영, #캘리그래피, #재능기부, #신전마을, #진도 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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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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