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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하우스 개관음악회" 베를린 '윤이상하우스' 개관 기념으로 20일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 "윤이상하우스 개관음악회" 베를린 '윤이상하우스' 개관 기념으로 20일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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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음악회 공간 윤이상하우스에는 작은 음악회를 여는 공간이 있다.
▲ 작은 음악회 공간 윤이상하우스에는 작은 음악회를 여는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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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尹伊桑, 1917~1995)의 예술혼이 담긴 독일 베를린의 자택이 현대문화예술의 창작공간으로 거듭난다. 또한 남북 화해 분위기와 맞물려 남북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 및 교류 장소로도 활용된다.

(재)윤이상평화재단은 20일 독일 베를린 클라도우(Sakrower Kirchweg 47, Berlin Kladow)에 있는 윤 선생의 자택을 '윤이상하우스'로 개관한다. '윤이상하우스'에서는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을 비롯하여 ▲ 작은 음악회▲ 학술행사(인문과학, 사회과학, 예술) ▲ 남북 예술가 및 학자 교류 ▲ 평화 및 예술 단체의 협력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저녁 7시(현지시간)에는 교포 2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정일련 선생이 주도하여 개관 음악회를 연다.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 방안은 작곡 및 음악이론 전공 대학원생(석사) 이상의 젊은 예술인들이 '윤이상하우스'에 주거하며 학업과 예술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와 함께 윤이상 선생의 예술 창작 정신을 이어갈 문학, 미술, 사진 등의 젊은 예술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

탁무권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교육복지재단 교육과미래 이사장, 성공회대 이사)은 "베를린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며 "'윤이상하우스'가 한국 학생들이 세계적인 음악 예술인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측 유학생들도 '윤이상하우스'를 활용하게 할 생각"이라며 "남북 음악 예술인들의 교류와 화합, 소통,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이상하우스'는 이미 1기 '장기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 대상자' 선정을 마쳤다. 3개월 이내 체류하는 단기 대상자들도 선발했다. 윤이상평화재단의 베를린 지부장 겸 '윤이상하우스' 운영관장인 정진헌 베를린자유대학교 연구교수는 "1~2주 정도의 단기체류도 가능하다"면서 "한국이나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정 관장은 "윤이상 선생의 작품은 동양의 소리를 서양 악기로 표현했다"며 "가야금 풍경소리를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것처럼 동양악기의 특성을 서양에 덧씌운 것이 윤 선생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이상 선생은 이념 갈등을 초월하여 민족애를 표현하고 동서양의 철학 및 사상을 융합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동서양 철학을 주제로 학술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영 동백나무 경남 통영에서 옮겨 심은 동백나무.
▲ 통영 동백나무 경남 통영에서 옮겨 심은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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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윤이상 선생은 1967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동백림(東伯林, East Berlin)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윤 선생은 '유럽의 현존 5대 작곡가',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한 세계적 현대 음악가' 등으로 평가 받았다. 그는 1995년 11월 베를린에서 폐렴으로 타계해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혔으나, 그의 유해는 지난 3월 고향인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묘역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지난 4월 2일, 탁무권 이사장의 1차 인터뷰를 서울에서 전화로 진행했으며, 4월 20일엔 베를린 '윤이상하우스' 현장 취재 및 정진헌 운영관장 인터뷰를 실시했다. 20일 '윤이상하우스' 개관식 참석을 위해 베를린으로 이동 중 환승지인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있던 탁 이사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하여 2차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탁무권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윤이상하우스, 한국 학생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거장 될 것"

 윤이상평화재단 탁무권 이사장
 윤이상평화재단 탁무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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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이상하우스'의 의의를 설명해 주시지요.
"우리는 해외에 자산이 없습니다. 자산이 있다는 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정도지요.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빈곤함이 드러나는 겁니다. 남북 이념 갈등이 빚은 천박한 현주소입니다. 그 과정에서 '윤이상하우스' 같은 민족적 자산이 이념적으로 덧칠되고 방치되고 소수에게만 관심을 받는다면 안타까운 일이지요. 윤이상 선생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피해를 입을까봐 눈치를 보고 뒤로 빠진 사례가 많았지 않습니까?"

- '윤이상하우스'를 소개해 주시지요.
"작은 음악당(콘서트홀)이 있습니다. 공연도 하고 작품도 발표하게 하려고 합니다. 예술활동의 정거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직접 주거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했어요. 베를린은 이미 예술의 중심지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적인 예술인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거장이 될 수 있습니다."

- 음악에 국한한 공간인가요?
"단순히 음악 분야만으로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윤 선생은 음악의 세계적 거장이지만 범민련 의장 등 민족통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존경 받는 겁니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통일, 민족, 평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데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요. 작게는 베를린 넓게는 독일,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현대 예술문화 창작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유학을 오기 전의 젊은 예술인들과 청소년들이 단기로 이곳에 방문하여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도 접하고 민족통일을 비롯한 윤 선생의 철학세계를 공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적 없는 음악이 아니라 국적 있는 음악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유럽에서 한민족 청소년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는 본부의 역할을 해 주고자 합니다."

- '윤이상하우스'를 개관한 사연이 궁금합니다.
"노무현 정부 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윤이상 선생에게 빨간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윤이상평화재단의 활동은 한계가 있었고 '윤이상하우스'도 덩달아 방치되었습니다. 정식 개관도 못한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든 '윤이상하우스'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재단장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촛불집회로 정국이 변화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힘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부 도움을 실질적으로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재단 자체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지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에 전할 이야기는 많습니다."

- '윤이상하우스'의 취지를 설명해 주시지요.
"윤이상 선생의 음악과 철학을 이어받을 세대를 길러내려고 합니다. 보통 저명한 분들은 기념관 형태로 운영합니다. 그런데 윤이상 선생은 '기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기념하는 일보다 미래를 향한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어떤 과제가 있을까요.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있습니다. 남북 문제도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념' 부분은 '윤이상하우스'의 한 부분으로 하고, 이 공간을 미래 지향적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북한 유학생들도 윤이상하우스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

윤이상 선생 생전 자택 윤이상 선생의 예술혼이 서려 있는 생전의 베를린 자택.
▲ 윤이상 선생 생전 자택 윤이상 선생의 예술혼이 서려 있는 생전의 베를린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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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이 평화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한 유학생들도 '윤이상하우스'를 활용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남북 음악 예술인들의 교류와 화합, 소통,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북측도 참여하게 한다면 '하우스'란 명칭이 마음에 걸립니다.
"'윤이상하우스'에서 '하우스'가 영어 명칭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을 의논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명칭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영어가 공통어다보니까 일단 '하우스'란 명칭을 붙인 측면이 있습니다."

- 한글식 표현도 괜찮지 않을까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문제제기가 나오면 적극 검토해 보겠습니다. '윤이상의 집'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측 학생들도 받으려면 '윤이상하우스'보다는 한글 이름이 좋겠지요. 명칭 공모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남북 관계가 개선되겠지요?
"남북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남북 관계 개선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한발짝씩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빨리 기차를 타고 북측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유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남측의 너무 치열한 생존경쟁과 양극화 현상도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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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기사를 써옴.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백석대, 인덕대 등서 강의함.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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