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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라, 감성 톡톡 글쓰기 수업' 첫날인 지난 4월 24일
 '펼쳐라, 감성 톡톡 글쓰기 수업' 첫날인 지난 4월 24일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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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에 소재한 옥과고등학교를 찾았다. 곡성교육문화회관에서 시행하는 찾아가는 인문학 프로그램인 '펼쳐라, 감성 톡톡 글쓰기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 24일부터 수업은 시작했다. 10차시 수업 중 이날 12일은 여섯 번째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옥과고등학교 2층에 있는 국어과 교실에서 21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글이란 '여러 사람들의 느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느낌이다'는 2학년 2반 김나연이부터 지각비를 내는 것이 아깝다는 김현주, 장난기 가득한 서민철, 취직하면 자그마한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는 이태연 등 보기만 해도 아까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글 한편 쓰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실 수다 시간이 더 많은 수업이었다. 12일 날은 북미정상회담이 있던 날이고 다음날인 13일은 6.13동시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진도 수업이 아니고, 특별한 날, 특별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수업에 재미를 더할 것 같았다.

더욱이,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했던 말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경험도 알려주고 싶었다. 통일이란 뭘까, 선거란 뭘까. 교과서 적인 답이 아니라, 아이들 느낌대로 생각을 두서없이 들었다.

유영준은 '통일은 희망이다'고 썼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제균은 '통일은 지하자원이다'고 썼다. 북한 땅은 넓고 인력도 많고 지하자원도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꼭 통일이 필요하단다. 그 외 명절이라고 쓴 변은선, 돼지저금통이라고 쓴 이산, 밀당이라고 쓴 기가현이 있었다. 덧붙여 작곡가가 꿈인 이대환은, '통일은 나의 무대 확장이다'고 썼다. 자신의 음악을 북쪽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 1953년에 휴전됐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 할 것이다. 그저 모바일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에서 총을 쏘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었다. 피부로 와 닿는 전쟁, 적과 아군만이 있고, 인간 존재 자체가 말살당하는 전쟁, 공터에 부모를 잃고 엉엉 우는 아이,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한반도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라는 것을 한반도 남쪽 아이들이 이해할까.

"지금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대륙일까, 섬일까?"

의외로 '섬'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분단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판문점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물었다. 보통 상업영화 한편이 시작하고 결말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지척'이라는 낱말을 국어시간 뜻풀이 용어가 아닌 삶으로서 이해했을까.

통일은 '지척'이 나누어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광주에서 KTX를 타고 평양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 해남 땅끝에서 온성까지 그리고 유라시아까지 우리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아이들이 집중을 해주면 언제나 수업시간은 짧았다. 통일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내친김에 두 번째 시간에는 '선거'로 화제를 전환했다.

선거란 뭘까? 최유정은 '끝이자 시작'이라고 썼다. 박희연은 자신의 권리다라고 썼다. 강송이는 뽑고 싶어도 나이가 안 되기 때문에 뽑지 못하는 것이라고 썼다. 김예빈은 선거운동기간 시끄러웠는지, 아침마다 나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고 썼다. 그 외, 우리들의 권리라고 쓴 김성모, 누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도박이라고 쓴 이민호가 있었다.

한가지를 더 물었다. 선거 연령은 낮춰야 할까? 아이들은 편이 갈렸다. 시기상조라는 측과 자신들에게도 선거권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기상조라고 주장한 아이는 청소년은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럼, 어른은 판단력이 모두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모두'에 악센트를 주면서, 일반화 덫을 깔아놓은 질문을 했다. 당연한 답은 '아니다'였다. 판단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는 객관화된 지표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8일날 사전투표소를 간 경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글씨를 모르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무조건 일번만 찍은 다고 했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지역마다 순번이 바뀐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고령층의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 경우 일번만 찍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선거는 이성에 의해 움직일까, 감성에 지배를 받을까.

지난 5월 8일 수업 현장
 지난 5월 8일 수업 현장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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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아이들 표정이 나는 재밌다. 이설(異說)이 오가는 것에 마땅히 답은 있을 수 없다. 결과치인 '감성이다, 혹은 이성이다'고 하기 위해 전제될 근거 상황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질문 자체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물음의 오류 속에서 빛나는 생각을 품은 아이도 있었다. 교육감 선거만큼은 부분적으로 저희들에게도 선거권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학교에서 생활하는 우리와 관계된 것이잖아요. 톡톡 튀는 생각과 반짝이는 눈빛이 보였다.

"그래 좋아 그러면 내게도 선거권을 달라는 말로 글을 한번 써보자."

교실이 너무 답답해 자신이 교육감이 된다면 야외 수업을 할것이다고 쓴 기가현은 학생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며 선거권을 달라고 문장의 말미에 느낌표를 달았다. 김성모는 '우리는 선거권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이며 국민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학생입니다. 만 18세라면 사실상 교육은 거의 끝날 시기이며 나이입니다. 인생의 시간만 보낸다고 좀 더 현명하거나 더 나은 지식이 들어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동시에 이 교육의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일과 선거 이야기로도 시간이 부족한 수업이었다. 생각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의 즐거움을 아이들은 느꼈을까. 바라건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을 다듬는 시간을 아이들이 좀 더 많이 보냈으면 좋겠다.  


태그:#옥과고등학교, #곡성교육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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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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