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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고려대 SSK사업단(단장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주최로  '제2회 한반도 통일과 북한 행태 예측' 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고려대 SSK사업단(단장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주최로 '제2회 한반도 통일과 북한 행태 예측' 세미나가 열렸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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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남한 문화와 가요 등을 상부에서 주도해 '해금(解禁)'시켰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다.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당 차원에서의 변화라는 것이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는 지난 15일 고려대 SSK사업단(단장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주최로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제2회 한반도 통일과 북한 행태 예측'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참여한 학자들은 김정은 시대의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 다양한 관찰과 분석을 내놨다. 

전영선 연구교수는 "삼지연관현악단이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강릉·서울에서 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 귀환 공연을 했다"며 "그때 당 간부들을 앞에 놓고 다 그냥 남한 노래를 불렀다. 일종의 해금조치"라고 언급했다.

김정일 시대엔 미국이나 남한의 문화를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 '퇴폐적인 풍조' 등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배격, 단속했다. 

전 교수는 또 "최근엔 북한의 애국가('아침은 빛나라')를 알앤비(R&B)로 부른다"며 "엄청난 변화다. 흑백 티비(TV)에서 칼라 티비로 변하는 것에 비할 만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봄이 온다' 공연에서 가수 최진희가 <사랑의 미로> <뒤늦은 후회>를 부른 것은 '이제 이 정도는 불러도 된다'는 암묵적인 승인이라고 한다. 북측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좋아했던 해당 노래들을 최진희씨를 지목하며 남측에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공연 말미에 깜짝 등장해 객석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남한 노래를 공개적으로 듣게 해준 김 위원장에 대한 인민의 지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 교수는 또 "북한의 티비(TV) 상영시간도 조금씩 당겨지고 있다. 확장 속도가 매우 느리지만 그래도 변화는 분명하다"면서 "조금 과도하게 해석하면 '인민이 원하니까'가 아니라 당 사상사업, 기풍으로 붙어 나가는 거다.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때도 그렇고, 보천보전자악단 공연을 보면 민망한 복장을 입고 탭댄스를 추는데 그 자체가 정책"이라고 피력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에 대해 전 교수는 "(당에서 먼저 풀어줬는데도) 겁이 나서 인민들이 못 따라한다. 문화는 경제와 달리 민영화가 될 수 없는 구조"라며 "북한의 경우 문화는 전부 당에 의해 만들어진다. 민간에서 만들어서 돌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남한에서 국방부 제작 영화를 만들 때 반전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북한의 문화정책을 설명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현선 이화여대 교수도 "국가가 문화를 유통시키는 공식채널에선 민영화가 어렵다"면서 "시장에선 인민들이 남한의 문화, 노래를 거의 생활화했다. 이것을 어떻게 인정하고 오픈할 것인지가 앞으로 북한의 과제"라고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2012년은 김 위원장이 집권한 첫 해인 동시에 북한에선 '주체 101년'이 되는 해다. 북한은 이때를 또 다른 세기의 등장, 지도자의 재림이라고 선전했다. 김일성의 한 세기를 마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일례로 김 위원장은 경제 발전의 핵심이 되는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핵·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주고, 과학자 거리(은하과학자 거리, 미래과학자 거리, 려명 거리 등)의 고층 아파트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미래, 려명 등의 명명은 새 지도자가 열어갈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 교수는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그의 지시로 2012년 창단된 '모란봉악단'의 등장에 대해서도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 부문의 수많은 변화를 '음악정치' 즉 악단의 행보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2012년 7월에 있었던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에서 영화 <록키> 주제가와 <마이웨이>가 연주됐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미키마우스도 무대에 등장했다.

전 교수는 "북한 최고 권위를 가진 문화예술단 중에 4.15문학창작단이 있다. 2014년에 이들이 모란봉악단을 따라 배우는 걸로 소개를 했다. 모란봉악단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원로 작가들이 젊은 걸그룹의 창작방법을 따라간다는 것은 엄청난 이변이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따라가줘야 하는 걸로 상황이 역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반적 패턴과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며 "북 주민도 김정은의 방향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강동완 동아대 교수 겸 부산하나센터장도 소위 '음악정치'를 통해 당군정의 관계, 김정은의 의도 등 정치 부문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동완 교수는 "북한의 변화는 핵 진정성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이어 "음악정치 관점에서 보면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라며 "화성-14형 발사 축하공연은 북의 모든 악단을 동원해서 펼쳤다. 핵·미사일 발사 성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 그 공연이었다. 제7차 당대회 공연의 경우 모란봉악단을 포함해 3개 악단이 연합한 형태였다. 그 전에 모란봉악단은 단독공연을 주로 했다. 당 중심의 국가체제를 운영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지순 서울대 교수는 "실리주의가 기존엔 부정적 용어였다면 최근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기술혁명, 편의봉사시설 확충이 실리주의 요소"라고 변화상을 지적했다. 이지순 교수는 또 "작년에 나왔던 강원도 정신, 만리마 속도전이 중요하다"고 사회주의 특유의 생산력 증대운동을 언급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평양시 창광원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 목욕탕·수영장·미용실·청량음료점·의무실 등이 갖춰진 종합 위락시설이 건설됐다. 북한에선 이것을 편의봉사시설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이들 시설을 확대하면서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강원도 정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설명이 나왔다.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고영희)가 생전에 '원산댁'으로 불렸으며, 김 위원장이 강원도 원산초대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북한이 최근에 '강원도'라는 기존의 소외된 지역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께부터 북한은 강원도 인민의 혁명정신을 본받자고 선전해왔다. 

이 교수는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평양시간이 30분 앞당겨져 우리와 같은 동경시간에 맞춰졌다는 것"이라며 "또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체연호를 안 쓰고 서기로 쓰여져 있었다. 스스로 세계화, 세계적 기준에 맞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태그:#김정은, #모란봉악단, #속도전, #음악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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