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극인 16인의 릴레이 토크 콘서트는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의 중점 행사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배우 이순재가 초청되었다. 사회는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유명 연극인 16인의 릴레이 토크 콘서트는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의 중점 행사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배우 이순재가 초청되었다. 사회는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 조우성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가 15일 개막했다. 오는 7월 2일까지 전국 16개 시·도의 대표 연극들이 대전 예술의 전당 앙상블 홀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에서 경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또한 연극제 기간 동안 매일 저녁 9시 30분에 '내게 연극이란...'을 주제로 유명 연극인들의 토크콘서트도 열린다.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토크 콘서트 행사에는 배우 이순재, 윤문식, 최종원, 민경진, 성지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인 16명이 출연해 자신들의 연기 인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이렇게 많은 연극인들이 16일 동안 매일 번갈아 가면서 시민들 앞에 서는 것은 흔치 않다. 이들의 솔직담백한 연기인생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한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 무대잖아"

 이순재와 김상열 교수가 시민들이 질문한 쪽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순재와 김상열 교수가 시민들이 질문한 쪽지를 살펴보고 있다. ⓒ 조우성


16일 밤 9시 30분 진행된 첫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사람은 배우 이순재였다. 아래 내용은 토크 콘서트에서 언급한 이순재의 말을 토대로 이야기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순재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의 두만강변이다.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서 4살 때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살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연변에 있었어. 내가 서울고등학교 1학년 때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특별히 충청도를 좋아해서 피난을 충청도 쪽으로 내려갔어. 할아버지가 '옥천에 아무개의 후예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라며 옥천으로 갔지. 그러다 부모님들도 다 국내로 들어오시고, 나중에 대전에서 자리를 잡고 비누공장을 시작했어. 나는 대전고등학교에서 청강생으로 2년 동안 공부를 했지. 그때 연극을 처음 시작했어."

당시 우리나라 연극계는 정해진 출연료가 없었다. 각자 돈 내서 공연하면 끝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대박 나는 그런 일도 없었다. 때로는 관객들 숫자가 무대 위 배우들보다 적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연극을 하면서 처음으로 돈을 받아본 게 1978년 '세일즈맨의 죽음'을 했을 때야. 그게 대박이 났어. 그때 봉투 하나 주더라고. 그래서 지금도 연극할 때는 상대방이랑 돈 이야기는 안 해. 거기서 주는 대로 돈 받아. 왜냐고? 돈 계산하면 이 일 못하기 때문이지. 몇 달 연습해서 공연 올리는데, 몇 달 동안 공연하려면 몇억 받아야 되잖아.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내가 연극으로 시작했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 무대잖아."

김상열 교수가 드라마 쪽대본 문제에 관해 질문하자 이순재는 조금 흥분한 듯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전 세계에서 그렇게 드라마를 만드는 나라가 없다"라며 현 한국 드라마의 제작환경을 거세게 질타했다.

"일본은 (전체 드라마의) 90%가 사전 제작이야. 3개월, 6개월, 1년 후에 나올 걸 미리 만들어. 일본은 쉽게 말하면 대하드라마 내년 방송분을 미리 지금부터 찍고 있는 거지. 한국 드라마는 완성도가 최고 70% 정도야. 한 20% 정도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채 방송이 나가고 있어.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아주 좋은 배우들이지만 대사에 치여 표정에 변화가 없어. 어느 젊은 유명 배우랑 같이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프롬프터에 대사를 막 띄우더라고. 내게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기에 '괜찮다, 보고해라'고 했어. 이건 이렇게 만든 제작 풍토가 잘못된 거지."

지금은 개성시대, 이순재가 배우지망생들에게 강조한 것

 성장순 기획실장, 이순재, 김상렬 교수가 함께 사진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장순 기획실장, 이순재, 김상렬 교수가 함께 사진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조우성


정치가와 연예인은 닮은 점이 많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표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고, 연예인들은 팬의 사랑을 받아 스타가 된다. 그는 정치에 몸담은 적이 있다. 1992년 민주자유당 중랑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며 민자당 부대변인 활동도 했다. 그가 정치를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정치를 하면서 뭘 배웠냐면, 정치인들이 사진 잘 찍고 악수 잘하잖아. 그걸 배웠어. 한 명 한 명이 나한테 다 소중한 사람들인 거지. 가끔 연예인들이 팬을 귀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잖아. 나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네가 인기 없으면 사인 해준다고 해도 안 받아간다. 해달라고 매달릴 때 감사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국민이 매달려서 환호할 때가 제일 행복한 거지." 

그는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배우의 연기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라며 발음과 올바른 표준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10년 후면 새로운 게 또 생겨. 변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 지켜야 할 건 표준어다. 배우는 지역 사투리를 구사해야 하는 설정이 아니면 표준어를 구사해야 돼.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에 상관없이, 교육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어야 한다고. 그러려면 정확한 우리말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왜 영어는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하면서 우리말은 왜 대충하려고 하는 거냐고.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게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야. 이건 배우의 기본적인 조건이야. 언어가 가장 중요한 거야."

연극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 "배우 지망생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라는 부탁에 그는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다. 스타, 이건 나중의 단계야. 내가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 이게 발전이 되어서 나중에 직업이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회 성장순 기획실장이 연극협회에 보관할 이순재의 사진에 사인을 받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회 성장순 기획실장이 연극협회에 보관할 이순재의 사진에 사인을 받고 있는 모습. ⓒ 조우성


"두 가지 조건이 있어. 부모님 덕에 예쁘게 태어난 거. 이건 어쩔 수 없어. 이건 부모님 덕을 좀 봐야 해. 요즘은 모델부터 시작했다가 배우가 되는 사람도 있다. 다른 길은 무엇이냐. 실력을 쌓아 연기력을 향상시켜서 평생 배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요즘 텔레비전 배우들 보라고. 잘생기지 않은 배우들도 많이 나와. 그래서 내가 요즘은 '못난이 전성시대다'라고 말해. 개성시대라 이거야. 연기만 잘하면 자기 분야가 있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기본기를 다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지.

정말 뛰어나게 운이 좋아서 스타가 되기 전에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해. 극단에 들어가서 심부름하고 청소하고, 그런 의지를 가지고 덤벼야 배우가 되는 거야. 하나하나 기본기를 다져 올라가서 자리 잡았을 때 빛이 나기 시작하면 쭉 올라가는 거야. 연극판에서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공연 때마다 영화나 텔레비전 관계자들이 와서 다 본다고. 가능성 있으면 스카우트 되는 거야. 좀 힘들더라도, 좀 어렵더라도 한번 해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덤벼야 돼. 본인이 끝을 봐야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뛰어들어. 그 방법밖에 없어."

그는 또 "미국의 아카데미 상은 인기 있으면 타는 우리나라 방송국 연말대상과는 전혀 다르다"며 후배들에게 연기 실력을 엄격히 키우고, 좋은 연기를 많이 보라고 조언했다.

"문제는 자기가 한 역할에, 자기가 표현한 능력에 자기 판단이 있어야 돼. 내가 정말 잘했나 못했나를. 옆에서 아무리 박수 치고 환호해도, 어디가 잘못됐고 어디가 부족한지 보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또 하나는 남의 좋은 연기, 선배들의 좋은 연기를 빼놓지 말고 봐서 수많은 좋은 연기들을 머리에 담아 넣어야 돼."

노장의 나이에도 정정한 이순재, 그의 비결은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이순재가 사회를 맡은 대전대 김상열 교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이순재가 사회를 맡은 대전대 김상열 교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조우성


그는 1935년생으로, 올해 여든넷이다. 촬영차 외국에도 자주 나가고, 활동도 여전히 왕성하다. 평소 그의 건강관리법이 궁금했다. 그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젊었을 때부터 술을 안 먹었다는 거야. 담배는 1982년도에 끊었어. 그리고 특별한 조건은 우리 어머님이 좀 오래 사셨다는 거지. 그래서 원래 체질이 좋게 타고난 것 같아. 조부님과 선친, 내 아우들은 60세 전후로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96세까지 사셨어. 어머님을 따라가면 96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어."

그는 젊을 때 햄릿 배역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는 리어왕이나 한번 해보고 싶다고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최불암이는 햄릿을 했더라고. 이게 다 타이밍이야. 평생 연기를 하면서 아무리 하고 싶어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물론 내가 주도해서 연출, 배우를 다 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시킴을 받아서 연기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게 안 돼. 기회가 된다면 리어왕이나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

이순재 김상열 교수 대한민국연극제 토크 콘서트 우금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