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직장인 17년차, 엄마경력 8년차. 워킹맘 K에게 쓰는 편지는 아이와 일을 사랑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 워킹맘의 이야기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려 합니다. [편집자말]
 엄마가 되고 난 후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으로 변했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으로 변했다
ⓒ ⓒ andrewtneel,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인생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워킹맘의 인생을 나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생각나는 일화 하나가 있어. 과장 진급 시험을 볼 때였어. 우리 회사는 당시에 진급시험을 1박2일 동안 진행했었지. 필기 시험, 토론 시험, 프레젠테이션 같은 과정을 거쳐서 평가와 함께 진행됐어.

난 그때 미혼이었고, 1박 2일 진급시험을 철저하게 준비해 갔어. 승진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진급이 누락되어 이 어려운 시험을 2번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때 숙소에 같이 머물던 직원은 갓 돌 지난 아이를 맡기고 와서 진급시험을 보는 사람이었어. 그녀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지. 그녀는 나의 준비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하는 눈치였어. 그리고 말하더라.

"나도 예전엔 준비가 철저한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어. 그녀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멀뚱멀뚱 바라보는 내게 그녀는 또 말했어.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생활이, 내 시간이 어디로 가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생활의 중심이 모두 아이니까.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 말대로 나는 몰랐어. 알 수가 없었지. 내가 경험한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녀의 말은 핑계처럼 보이기도 했어.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가끔 그녀 생각이 나더라.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방안의 공기, 방안의 어두운 불빛, 늦은 밤 다음날 해야 할 발표 자료를 보고 있던 나,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 그때의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녀가 말했던 의미를 이제는 알았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핑계가 아닐까 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럽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아. 엄마가 된 지금이 좋고, 일을 계속하고 있는 내가 좋아. 분명 육아는 힘들지만, 아이로 인해 얻는 행복은 그 이상이야. 사실, 회사에서 많이 뒤처지는 것도 있고, 예전만큼 회사 일에 열정적이지 않지만,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야. 내가 나이 들어가면서 식어지는 열정일 뿐이더라고. 

워킹맘이 되고 나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들

 아이와 함께 하는 찰나는 기적이고 행복이다(사진은 MBC 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
 아이와 함께 하는 찰나는 기적이고 행복이다(사진은 MBC 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
ⓒ MBC

관련사진보기


첫째, 시간을 깨닫기 시작했어.

누가 시간은 공평하다고 했을까? 공평하지 않아. 워킹맘의 시간은 늘 부족해. 워킹맘이 되고 나서 알겠더라. 시간이 많아야 진짜 부자라는 사실을 말이야. 워킹맘을 타임 푸어라고 하지? 우리말로 하면 '시간 거지'.

나는, 워킹맘이 되고 나서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돈으로 시간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돈을 주고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도 있고, 돈을 주고 반찬을 사면서 요리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만약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면 돈을 낭비하는 것이겠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시간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늘 깨어있게 되더라고. 지금 알고 있는 걸 20대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낫겠지? 

둘째. 기록을 하기 시작했어.

내 기록의 첫 시작은 산후우울증이었어.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기도 했는데, 아이를 낳고 다가오는 호르몬의 변화, 생활의 변화, 생체리듬의 변화가 참 적응하기 어렵더라고.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하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졌어.

기억은 추억이라는 곳에 저장되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날아가 버리더라고. 아이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들, 고통스럽지만 내가 성장했던 기억, 내가 읽었던 책과 감상 등… 나의 일상의 기록은 추억을 저장할 뿐만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어.

글을 쓰는 효과는 그런 것이더라고. 일상을 정리하고, 성찰하고, 내가 성장하는 것. 기록을 하지 않으면 개선점을 찾지 못하거든. 회사 출근하기 전, 회사에서 잠시 쉬는 시간 틈틈이 나는 기록을 하고 있어.

셋째,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지금의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왜냐하면 엄마니까. 아이는 백지상태에서 스펀지처럼 세상을 받아들여. 그런데 나를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이더라.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기 시작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최초의 눈은 엄마의 눈이더라고.

그걸 보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물론 크면서 친구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부모의 영향도 많이 받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각자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엄마, 타인을 배려하는 엄마이고 싶어. 그래서 노력하는 중이야. 

넷째, 세상 모든 아이들이 예뻐 보여.

사실,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어. 내가 4형제 중 맏이거든. 자라면서 동생들 돌보라는 이야기를 지긋지긋하게 들어서 아이들이라면 좀 멀리하고 싶었거든. 먼저 결혼한 친구가 아이를 안고 나오면, 영혼 없는 말투로 아이에게 건네는 "안녕~"인사가 전부였어. 먼저 아이를 안아주는 법이 없었지. 좀 냉랭한 여자였어.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지하철에서 귀여운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져. 정말 귀엽고 예쁘거든. 과장하자면 가슴에서 우러나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 엄마가 되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야.

다섯째,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

세상 일이라는 것이 참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공부나 회사 일 같은 경우 사력을 다해 노력하면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이잖아. 육아는 참 안 되더라고. 아이를 낳기 전엔 내가 에디슨 엄마나 신사임당쯤 될 줄 알았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지. 육아로 정신없을 즈음, 회사에서 프로젝트 실패, 승진 누락 등 실패를 맛보게 됐지.

그때 알았어.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야. 세상 일이 노력한다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 나는 그때 겸손을 배운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었던 것은 노력에 운이 따라주었다는 것을 말이야. 

가끔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봐. 아마 좀 더 많이 여행을 다니고, 더 많이 일을 했겠지. 저축도 더 많이 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난 지금이 좋아. 아이들과 같이 여행하는 것이 더 좋아. 추억은 함께할수록 더 풍성해지니까.

회사와 가정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지금이 좋아. 혼자라서 저축은 많이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누는 것은 몰랐을 거야. 혹은 나누었더라도 내가 이만큼 베풀었다는 오만함을 쌓았을지도 몰라.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노력을 즐기는 중이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생에서 내가 다음엔 또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기대돼. 우리, 내일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도록, 오늘을 즐겁게 살자.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